
한진택배가 택배노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 27일부터 '주 7일 배송'을 강행하면서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택배노조는 인력 충원과 과로방지 대책,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 등의 사전 협의를 원청인 한진에 요구했지만,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제도가 시행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 "강제 시행은 계약 위반"
지난 29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한진 본사 앞에서 한진택배노동조합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진택배노조는 "한진은 노동조합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주 7일 배송을 강행했다"며 "택배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침해하는 제도 시행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한진이 대리점들에 '자율 시행'을 주문했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계약 해지나 구역 조정, 금전적 불이익 등을 거론하며 사실상 휴일배송을 강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택배노조가 운영하는 '주 7일 배송 신고센터'에는 일주일 동안 총 196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이 중 77%가 "강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 응답자의 약 60%는 "참여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압력을 받았다"고 답했다.

노조는 한진택배의 이번 조치가 '영업점-택배기사 표준계약서'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표준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타구역 배송을 강요하는 것은 사전 합의 없는 불리한 거래조건 변경이며, 이를 거부한다고 해서 계약 위반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오히려 거부를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이 계약 위반이라는 것이 노조의 입장이다.
한선범 전국택배노조 정책국장은 "주 7일 배송을 위해서는 교대근무와 타 구역 배송이 필수적"이라며 "타 구역 배송은 계약서에 명시돼 있지 않은 구역의 배송을 의미하고, 노동시간과 강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조가 추가 수수료, 인력 충원 등을 요구하는 이유다.
한진 "주 7일제는 생존방안"
한진택배는 지난 27일 주 7일 배송제를 시작했다. 주요 고객사를 대상으로 기존 수도권에서 제공하던 휴일배송 서비스를 주요 도시로 확대해 시범운영하기로 했다. 한진은 "고객 서비스를 제고하고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에서 집배점, 택배기사, 회사가 모두 생존하기 위한 방안으로 휴일배송을 검토해왔다"고 밝혔다.
노조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휴일배송이 첫 시행된 지난 27일 일요일 전체 250명 택배노동자가 근무하는 지역에 대다수 택배노동자가 출근을 했다. 1인당 택배물량은 10개 미만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일 하루 평균 배송물량(200건)에 비하면 5% 수준에 불과한 물량이다. 택배노동자의 하루 수입은 1만원 남짓에 그쳤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기름값도 나오지 않는데 단 하루 쉬는 일요일마저 반납해야 하느냐"고 꼬집었다.
주 7일 배송은 지난 1월 CJ대한통운이 가장 먼저 도입한 서비스다. 365일 쉬는 날 없이 배송하는 쿠팡과 택배업체의 물류 경쟁이 심화하자,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이다. 이어 한진택배도 주 7일 배송제를 도입했다. 롯데택배도 뛰어들었다.
소통의 부재
문제는 '소통의 부재'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진의 주 7일 배송제 도입 방식이 타사들과 달랐던 탓이다. CJ대한통운은 주 7일 배송제를 시행하기 약 1년 전부터 대리점연합회와의 협의를 거쳤다. 대리점연합회 역시 택배노조와 교섭을 진행했다. 대한통운은 주 7일 배송제를 진행하면서 조 편성을 통한 교대근무, 타 구역 배송 시 최대 25%의 추가 수수료를 받는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롯데택배 역시 최근 택배노조가 롯데대리점협의회와 상생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한진은 이런 과정이 없었다. 노조에 따르면 택배노동자들은 3월 말 대리점을 통해 한진이 주 7일 배송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또 주 7일 배송제가 시행되기 일주일 전에서야 시행을 통보받았다는 전언이다.
다만 한진의 입장은 노조의 주장과 다르다. 한진 관계자는 "그간 한진택배대리점협회와 휴일배송 관련 협의를 지속해왔으며, 같은 기간 택배노조와도 대리점협회를 통해 소통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집배점과 택배기사와 충분한 논의를 통해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점유율 차이
한진이 주 7일 배송제를 서두른 이유는 명확하다. 한진택배는 국내 택배시장에서 점유율 9.7%를 차지하고 있다. 쿠팡,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뒤를 잇는 4위 사업자다. 이렇다보니 한진은 타사에 비해 택배기사 수가 적고, 택배기사당 담당 권역이 더 넓다. 배송 경쟁력을 높여 점유율을 키우려는 계산이었지만 오히려 택배기사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셈이다.

한진은 노조의 협의 요청에 답변하지 않은 채, 화물운송자격증을 소유하지 않은 이들과 계약하거나 타 택배사 기사를 동원해 대체배송을 강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 측은 인력 충원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노조는 주 7일 배송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인력 충원, 과로 방지 대책, 건강권 보장 등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국장은 "이대로 한진 택배에서 주 7일 배송이 강행된다면 수많은 한진 택배노동자들이 주 7일 근무, '휴일 없는 근무'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며 "이는 또 다른 집단 과로사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