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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면 더 커지는 한가위

  • 2017.09.29(금) 10:46

[페북 사람들]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유난히 더웠던 긴 여름이 끝나간다.
들판에 벼는 누렇게 변해가고
각종 과일도 탐스럽게 익어간다.


그리고 열흘이라는 역대 최장의
한가위 연휴가 기다리고 있다.


한가위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겸 
서울 근교 양평 5일장을 찾았다.


양평장은 매달 3일과 8일로
끝나는 날짜에 열린다.

 


입구에 들어서자 트로트 가락에 맞춰
신나는 가위소리와 걸쭉한 노래가 들린다.


5일장 특유의 떠들썩한 분위기와 맞물려
저절로 흥이 난다.


전국 5일장을 다니며 엿을 팔고 있는
색소폰 부는 왕진이·은진 부부다.

 


"10년째 5일장이 열리는 곳마다
찾아다니며 호박엿을 팔고 있어요.


고유 명절인 한가위만이라도
전통시장을 찾아주셔서


상인과 지역주민 모두 신명 나는
한가위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뻥이요~~
주변 사람들이 놀라지 않도록
먼저 호루라기를 길게 분다.


장흥근 씨는 30년째 양평장에서
뻥튀기를 튀기고 있다.


"흘러가는 세월이 묘해요.

 

할머니 손 잡고 시장에 오던 손자손녀들이
이제 자녀들의 손을 잡고 가끔 찾을 때면
기분이 참 묘합니다.


제 일은 뻥튀기를 맛있게 튀겨주는 거잖아요.
손님들이 이 맛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장터에 오면 꼭 맛봐야 할 음식이 있다.


여름과 가을이 손바꿈하면서
양평 장터 메뉴들도 새 옷을 입었다.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장터의 별미 국밥이 여름 메뉴를 밀어내고
사람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인근 초등학교 선후배인 어르신들이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고 계셨다.


"다들 양평 근처에 사는데도 자주 못 만나.
장에라도 오니 고향 사람들과 한잔하는 거지.


그래도 여긴 아직 고향의 정이 남아있어.
다들 70이 넘어가니까 선후배를 떠나
그냥 친구가 되는 것 같아."

 


원래는 5일장 자리가 여기가 아니야.
여기에서 조금 더 내려가야 하는데
그땐 발 디딜 틈이 없었어.


온 가족이 함께 장에 와서
국밥 한 그릇 먹고 씨름도 보고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많이 흘렀네.


이야기하다 보니 그 시절 추석이 생각나.
이럴 때 쓴 소주 한잔해야지."

 


옆 테이블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한 외국인이 막걸리와 함께 파전을
맛있게 먹으면서 한창 얘기 중이었다.

  
스위스서 온 휴기(Andreas Hugi) 씨는

자전거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있다.


양평의 자전거 길이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여행하던 중 맞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이가람 씨를 만나 인사를 주고받다
장터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휴기 씨에게 5일장의 느낌은 어떨까.


"너무너무 좋아요.
모든 게 색다르게 다가옵니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특히 맘에 들어요.


이 술이 막걸리지요.
피자와 비슷한 음식과 너무 잘 어울려요.
너무 좋은 추억을 만들어갑니다."

 


고재길 씨는 양평장에서 강정을 팔고 있다.


양평 5일장 운영위원장으로 또 홍보 알리미로

열심히 시장을 알리는 역할도 한다.


"제 바람이요? 한가위를 맞아
전통시장에 사상 최대 인파가 몰렸다
이런 뉴스가 나오면 최고죠.(웃음)


양평장 외에 5일장을 두 군데 더 다니는데
한가위 대목은 옛말이 된 듯합니다."



"전통시장이 변화를 못 따라가는 부분도 많죠.
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든지 주차문제라든지
대형마트와 비교하면 불편한 점이 많아요. 


그래도 전통시장만이 가진 정서가 있잖아요.
상인들도 좋은 물건을 더 싸게 드리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어요.


올 한가위엔 전통시장에서
풍성한 정도 느끼고 물건도 많이 사주세요."

 


양평 5일장엔 양심저울이 있다.


시장에선 상인들의 손이 저울이고
덤으로 더 많이 주면 줬지 덜 주진 않는데


이런 믿음이 사라진 것 같아
왠지 모를 씁쓸함이 묻어나는 듯하다.


올해 추석은 보름달처럼 모든 게 꽉 차고 넘치는

말 그대로 한가위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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