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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전 인천을 만나다

  • 2018.07.13(금) 11:29

[페북 사람들]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역사학자 E.H.카는 이렇게 정의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인천은 130년 전 역사와
가장 가까이서 대화할 수 있는 장소다.


인천은 1876년 강화도 조약에 따라
부산과 원산 등과 함께 개항했는데
지금도 개항장과 차이나타운이 남아 있다.

 


인천역은 우리나라 최초 철도역사다.


1899년 9월 제물포역과 노량진을 연결하는
38.8km의 경인선을 개통하면서 생겼다.


도보로 12시간이나 걸리던 거리를
1시간 30분으로 확 줄이면서
서울과 인천을 1일 생활권으로 바꿔놨다.

 


130년 전엔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지만
1883년 개항과 함께 일본과 청나라는 물론


서구 각국 상사들이 줄지어 진출하고

그 나라를 대표하는 영사관도 생겼다.


외국인이 자유롭게 거주하면서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정한
조계지도 당시에 만들어졌다. 


인천의 조계지에선 개항기 당시
역사와 문화를 잘 엿볼 수 있다.

 


조계지 바로 아래쪽 거리는 
19세기 개항장 창고건물이 줄지어 있다.


지금은 리모델링을 거쳐
창작 스튜디오와 공방, 자료관, 전시관 등
13개 동의 문화공간으로 재활용하고 있다.

 


유인모 씨는 인천시 중구투어 코디네이터다.


"일본 조계지는 시대적 아픔이 있긴 하지만
100년 전 도시계획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100년 전엔 조선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였죠.
금융가로 보시면 돼요.


지금은 은행이 3개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는 바로 이곳에서 
인천의 자금을 움직였다고 보면 됩니다."

 


"이 거리는 개항시대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조계지로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근대건축물과
최근 꾸며진 현대식 건물 안에
카페와 음식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1930년대 이후 세워진 주택도
관동과 신흥동 일대 여러 채 남아있죠."

 


"옛 대화조사무소는

개항 당시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인천항에서 배로 물건을 실어 나르던
하역회사의 건물입니다.


근대 일본의 점포 겸용 공동주택으로
주상복합건물로 생각하면 됩니다.


3층 건물로 1890년 초에 지어졌고
1층은 사무소, 2~3층은 주거공간이었죠.


초기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건축사적 가치도 큽니다."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엔 탐방을 마친
선인고 이혜린 선생님과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어제 시험이 끝나고

직업탐구를 위해 왔습니다.

 

중국문화부 탐구부 동아리인데

직접 와보니 우리 근대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어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인천역 건너편으론
차이나타운을 알리는 패루가 서 있다.


패루는 붉은 기둥 위에 지붕을 얹은 
중국식 대문이다.


차이나타운 거리에는 4개의 패루가 있다.

 


차이나타운 거리는 한국 속 작은 중국이다.


중국 전통의상인 치파오를 입은
화교 상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짜장면과 공갈빵, 옹기병(화덕만두) 등은
차이나타운에서 먹어야
제대로 그 맛을 알 수 있다.


삼국지 벽화거리도 볼 수 있다.
삼국지 소설 속 대표적인 장면들을 그린


150m 길이의 대형 벽화거리는
차이나타운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물이다.

 


"그냥 지나치면서 보는 것과
역사를 알고 보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우리나라의 아픔이 담겨있긴 하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역사이기도 하죠.


그동안 몰랐던 역사를
보고 듣고 새롭게 알고 가는 분들을 보며
보람을 느낍니다."

 


"현재 인천역 부근은 잘 정비된 도로지만
개항 당시만 해도 제물포였습니다.


제물포는 조선시대 포구 이름입니다.
여기까지 바다였던 거지요.


느낌이 새롭지 않나요?


130년 전 과거와 만나고 싶다면
언제든  인천 중구 관광실로 연락주세요.


역사는 지금도 우리와
대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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