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임대료를 깎아달라'는 조정을 낸 곳이 있습니다. 신라면세점을 운영하는 호텔신라와 신세계면세점을 운영하는 신세계디에프입니다.
신세계면세점은 지난달 29일에, 신라면세점은 이달 8일에 각각 인천지방법원에 인천국제공항 임대료 조정 신청을 냈습니다. 제1·2여객터미널(T1·T2) 면세점 중 화장품·향수·주류·담배 매장 임대료를 40% 내려달라는 내용입니다.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는 수년째 면세업계를 괴롭혀온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공항 임대료가 상당히 높다 보니 대부분의 면세기업들은 서울 시내면세점에서 돈을 벌어 인천공항 면세점의 적자를 메워왔습니다.
문제는 코로나19를 거친 이후 최근 시내면세점의 실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면세업체들은 매출 감소와 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인천공항공사에 여러 차례 임차료 인하를 요청했지만 공사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법원에 조정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들 면세업체들의 입장입니다.
'못 버틴다' 손 든 신라·신세계
인천공항 면세점과 임대료 구조를 이해하려면 지난 2022년 말부터 2023년 초까지 치러진 신규 사업자 입찰을 살펴봐야 합니다.
원래 인천공항 면세점은 업체별로 고정 임대료를 납부하는 '고정 최소보장액' 형태였습니다. 매년 계약상 보장된 금액을 임대료로 내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면세업체들이 면세점 사업자 선정 입찰 때 임대료를 써서 냈는데요. 가장 높은 임대료를 써낸 기업이 사업권을 낙찰 받았습니다.
사업 운영 능력도 중요했지만 임대료가 얼만지가 입찰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었죠. 당연히 면세기업들의 임대료 경쟁은 치열했습니다. 코로나19 이전까지 면세시장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보니 아무리 높은 임대료라도 감당할 수 있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방한 관광객 수가 뚝 떨어져 공항과 면세점의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인천공항공사는 2022년 말 신규 사업자 입찰 공고를 내면서 임대료 체계를 현재의 '여객당 임대료'로 바꿨습니다. 인천공항 이용객 수에 임대료가 연동되는 방식입니다. 면세업체들이 입찰 때 제시한 여객 1인당 수수료에 인천공항 여객 수를 곱해 임대료가 결정됩니다.
또 이때 인천공항공사는 면세점 사업권도 대폭 통합, 조정했습니다. 원래 인천공항 사업권은 T1 9개, T2 6개로 나눠져 별도로 입찰이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사업권이 터미널 구분 없이 DF1~DF5, DF8, DF9 등 7개로 통합, 입찰도 동시에 함께 진행하게 됐습니다. 다만 2020년 사업자를 선정한 T1의 DF7(현대면세점), DF10(경복궁면세점)은 그대로 운영을 지속했고 지난 13일 5년의 사업권 연장이 결정됐습니다.

이때 입찰에서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DF1~DF4 구역을 나눠 맡게 됐습니다. 이 중 DF1과 DF2는 화장품·향수·주류·담배 판매구역이고요, DF3과 DF4는 패션·부티크 판매구역입니다. 부티크 전문 구역인 DF5는 신라와 신세계, 현대백화점이 운영하는 현대면세점이 복수 사업자로 선정됐고요. DF8과 DF9는 중소중견기업인 경복궁면세점, 시티플러스의 몫이었습니다.
이번에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조정 신청을 한 구역은 바로 DF1~DF4 구역입니다. 입찰 당시 신라면세점은 DF1의 여객 1인당 수수료를 8987원, 신세계면세점은 DF3의 여객 1인당 수수료를 9020원을 써냈다고 합니다.
매달 인천공항 이용객 수가 300만명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각각 부담하는 월 임대료는 270억원에 달합니다. 연간으로는 3000억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죠. 신라면세점의 연 매출(3조3029억원)의 10%, 신세계면세점의 연 매출(2조2694억원)의 14%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두 회사가 지난해 각각 758억원, 197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데에는 인천공항 임대료 부담 영향이 컸을 겁니다.
판단 패착? 승자의 저주?
하지만 일각에서는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의 '경영 판단 실수'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2023년 입찰 당시 지나치게 높은 수수료를 제시하면서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는 겁니다.
당시 공사가 제시한 여객 1인당 최저수용액을 살펴보면 신라와 신세계가 얼마나 높은 임대료를 써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최저수용액은 이 이상의 여객당 수수료를 제시해야 한다는 의미로 공사가 제안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인데요. 대표적으로 DF1의 최저수용액은 5346원, DF3의 최저수용액은 5617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라와 신세계는 이 최저수용액보다 각각 68.1%, 60.6%나 높은 수수료를 제안한 겁니다.
입찰이 치러지던 시기는 2023년입니다. 코로나19 엔데믹에 접어든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면세업계 시장 회복이 불투명하던 때였는데요. 그런데도 입찰을 따내기 위해 지나치게 높은 수수료를 써낸 게 자충수가 된 거죠. 그래서 '승자의 저주'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합니다.

같은 시기에 DF5 사업권을 따낸 현대면세점 사례를 봐도 명확합니다. 현대면세점은 DF5 입찰에 최저수용액(1056원)보다 약 5% 높은 1109원의 여객당 수수료로 사업권을 낙찰 받았는데요. 그런데도 이 구역에서 현대면세점은 크게 이익을 내지 못한다고 하는데요. 최저수용액보다 60% 이상 비싼 값에 낙찰 받은 신라와 신세계의 손해가 얼마나 클지 가늠이 되죠.
게다가 신라와 신세계가 조정 신청을 한 구역은 수수료를 60% 높게 쓴 DF1~DF4뿐입니다. 신라와 신세계는 현대면세점과 함께 DF5 구역도 낙찰 받았지만 이곳의 수수료는 최저수용액보다 약 20%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싸다는 의미입니다. DF5는 조정 대상에서 제외하고 DF1~DF4만 임대료를 내려 달라는 게 오히려 스스로의 경영 판단 실수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우려가 있죠. 이들 면세점이 경영상 판단을 잘못한 것을 두고 공기업인 인천공항공사가 임대료를 내려주며 손실을 감당하는 게 옳지 않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만약 임대료 조정이 받아들여질 경우 발생할 또 다른 문제로는 '형평성'이 있습니다. 2023년 신라와 신세계보다 여객당 수수료를 낮게 써서 사업권을 따내지 못한 기업이 불만을 가질만 하죠. 다음 입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단 높은 임대료를 써서 낙찰을 받아놓고 추후 임대료를 조정해달라고 요구하는 식으로 입찰 과정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거죠. 또 면세점 외에 인천공항 내 다른 상업시설 역시 임대료 조정을 요구할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함께 넘어야 할 위기
물론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도 할말은 있습니다. 신라와 신세계가 2023년 써낸 여객당 수수료도 코로나19 이전의 임대료 총액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죠. 나름대로 경영상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지만 세계 경기 침체, 고환율 등의 영향을 받은 탓에 임대료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면세업계가 고사 직전의 위기에 처한 것도 사실입니다. 코로나19가 끝난 상황에서도 면세시장은 다른 업종과 달리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경기 침체 등 여전히 코로나19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면세시장 위기는 국내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세계 면세시장은 코로나19 이후 전반적인 침체기에 빠져있는데요. 이에 싱가포르의 창이공항 등 최근 해외 공항이 면세기업들에게 임대료 인하, 지원금 지급 등으로 '상생'에 나선 사례까지 있습니다.
여행객들의 소비 패턴의 변화도 국내 면세시장 회복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최근 방한 관광객 대다수는 개별 관광객인데요. 이들은 한국에 와 면세점에 가기보다는 올리브영, 다이소 같은 곳을 찾는 식으로 소비 패턴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공항을 찾는 내국인 이용객들도 고환율 부담 탓에 면세점 소비를 줄이는 추세입니다. 반면 인천공항을 찾는 여객 수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죠. 매출 회복은 더딘데 임대료는 계속 증가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여객 수를 기반으로 한 임대료 책정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여객'은 말 그래도 공항을 방문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센 숫자입니다. 어린이까지 모두 포함된 숫자죠. 하지만 가족끼리 여행을 떠나는 4인 가족이라면 실제로 면세점에 방문하는 사람은 1명으로 세는 게 맞을 수 있다는 의견입니다.
이번 조정 신청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계약대로 이행하라는 명령이 나올 수도 있고. 각자의 상황을 고려해 원만하게 합의점을 찾으라는 결정이 나올 수도 있겠죠. 공사와 면세업체들이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 면세시장 회복과 상생을 위해 손을 잡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