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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 울려 퍼진 대한 독립 만세!

  • 2019.02.28(목) 15:52

[페북사람들]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3.1운동 100주년을 앞둔

서울 광화문광장은

교통통제에다 행사준비로

하루종일 분주하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누군가는 나라를 통째로 내주고

또 누군가는 그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고 치열하게 싸웠던

대한민국 역사를 되돌아보게 된다.

중명전은 정동지역에 있던

서양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건물이다.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 대화재 이후

고종황제는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편전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체결하는 비운의 현장으로

역사에 기록된 장소다.

을사늑약은 외교권 포기와 함께

통감부 설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곧 국가의 주권 상실을 뜻한다.

나라를 내주는 조약에 서명한

다섯 대신은 을사오적으로 꼽힌다.

박제순 외부대신과 이지용 내부대신

이근택 군부대신과 이완용 학부대신

권중현 농상부대신 등이 그들이다.

1910년 국권을 상실한 이후

고종의 서거는 3.1운동의 기폭제가 된다.

이미 그 전부터 만세운동을 준비해왔던

민족대표와 종교계 인사들은

전국적인 시위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그 중심에서 전국적인 만세운동을

주도한 이들은 바로 어린 학생들이었다.

전문학교 학생대표들은

전문학교와 중등학교 학생들을 조직화해

독립선언서를 준비했다.

1919년 3월 1일

덕수궁 앞에서도 만세시위가 있었다.

조선독립 만세를 외치며

자주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린 이들은

그 누구도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어디서 인력거 한 대가

군중 앞에 나타나 턱 멈추더니

짙은 고동색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청년이 내리지를 않고 그 위에 올라서서

품속에서 커다랗게 '조선독립'이라고 쓴

기를 꺼내 높이 들면서  

'조선독립 만세'하고 고함을 쳤다.

군중은 그를 앞세우고 의기중천해

한꺼번에 만세를 불렀다.

여학생들은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너무나 감격스러운 울음이었다.

'만세 만세 대한 독립만세'

누군가 그날을 글로 남긴 기록이다.

3.1운동 이후 국내외서 동시다발적으로

다수의 정치조직체가 등장했는데

국내에선 한성정부가

연해주에선 대한국민 의회가

중국 상하이에선 임시정부가 세워졌다.

이후 하나의 통합된 임시정부를

세우려는 노력이 이어졌고

같은 해 9월 11일 상하이에 본부를 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했다.

일제는 집회단속법을 새로 제정하고

기존 신문지법 출판법을 확대 적용해

민족적인 학회와 청년회뿐만 아니라

언론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에서도 학생들은

대중과 더 소통하기 위해

지하신문을 발간하면서

계속된 체포와 구속의 와중에도

암흑의 시대에 등대가 되어

자유와 독립의 빛을 비췄다.

당시 투옥된 한 학생의

법원 속기록을 살펴보면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문: 무엇 때문에 만세를 불렀는가.

답: 독립이 되어 만세를 부른다고 하기에

너무 기뻐서 그 독립만세를 불렀다.

문: 독립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답: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떨어져

혼자 행세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문: 피고는 독립을 희망하는가.

답: 자유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 밑에서는 자유가 없다.

자유로이 정치를 집행하는 나라가 되고자

독립을 희망하는 것이다.'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고초를 당한 서대문형무소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자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독립운동가 이동녕의 말년 거주지다.

나라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했던 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과연 무엇인가.

죽어서도 조국의 해방을 외친

그들의 외침은공허한 메아리로

맴도는 듯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외치고 싶다.

서대문형무소 담벼락 한쪽엔

봄을 기다리는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심겨 있다.  

3.1운동 당시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태극기를 만들어

만세운동에 동참해 '만세'를 외쳤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100년이 지난 2019년  

대한민국엔 진정 봄이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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