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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에 살고 싶나요

  • 2019.10.25(금) 10:59

[페북사람들] 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1994년 MBC 주말 연속극

'서울의 달'은 한 달동네를 배경으로

도시 서민의 애환을 그린 드라마다.

시골서 올라와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해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던 시대였다.

집은 가족이 모여 사는 공간이자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19년 집이란 공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아파트 평수에 따라 친구가 갈리고

아파트 안전진단에 따른 결과가

안전하다고 나오면 한숨을 쉬고

불합격 판정이 나오면 환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펼쳐진다.

집은 이미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투자와 투기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만든 결과다.

풀벌레가 가을밤을 노래하는 시간

남산골 한옥마을 민씨 가옥에서는

'네 가지 집 이야기'를 주제로

다음 달 7일까지 목요일마다

'남산골 야학당'이 열린다.

이날은 김창균 유타건축 대표가

우리는 어떤 집을 원하는가?

따뜻한 건축, 따뜻한 집 짓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일상을 살고

어떤 집에서 살고 있습니까?

평생 살 안식처를 원하나요?

아니면 언제 내 집이 오를까

그렇게 기대하며 살고 있나요?

내 집 근처에 요양원이 들어온다면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요?

우리 사회의 급격한 노령화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획일화된 공간에서

상상이 멈춘 시대를 살고 있어요.

부모는 회사, 자녀들은 학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대화가 단절된 공간에서

잠시 마주치고 헤어집니다.

우리 자녀들은 교과서 외에

인생에서 마주할 문제들에 대한

상상력을 만들 수 없어요."

"상상력이 자랄 수 있는 집이 필요해요.

저도 예전에 전세를 살았었는데

전셋값을 8000만원이나 올려달라고 해

세 집이 뭉쳐 작은 집을 지었어요.

집을 지으면 평당 공사비가 관심사인데

10년 전 500만원과 지금의 500만원은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특히 설계 전에 전문가를 많이 만나보고

또 구체적으로 상의하는 게 좋아요.

TV에 나오는 그림 같은 집이 아니라

본인의 형편에 맞는 집을 지어야 하죠.

미래를 미리 그려보는 것도 중요해요.

가령 아이가 태어난다든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면

그런 변화를 생각해서 집을 지어야 하죠."

"집 짓기 전 계약서를 쓸 때

모형을 만들어 보는 것도 중요해요.

하다못해 만원짜리 옷을 살 때도

나한테 맞는지 입어보고 삽니다.  

싸게 빨리 짓는 회사는 피해야 합니다.

건축가가 귀찮아할 정도로

만나고 또 만나야 합니다.

기후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입주 전에 태풍이나 큰 비를

한 번쯤 겪어보는 게 좋습니다.  

집을 점검할 시간이 되는 거죠.

집을 지을 때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넣을 수 있을까 한 번쯤 생각해본다면

행복이 가득한 집을 지을 수 있어요.

어떤 분이 부모님을 위해

아주 멋진 집을 지어 드렸어요.  

그 집은 많은 상을 받기도 했죠.

그런데 정작 부모님은 아니었어요.

그 집이 불편해 주변 전세로 옮겼어요.

아마도 부모님이 예전에 사셨던 집은

누구나 오가며 인사할 수 있고

또 비가 내리면 흙냄새가 나는

그런 집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과연 좋은 집은 어떤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사례였죠."

황효철 사진작가 제공

"집을 짓겠다고 의뢰하는 분들은

크게 세 부류 정도로 나뉩니다.

자녀가 부모님에게 지어드리거나

몇 가정이 함께 모여 살기 위한 집

평생 마지막으로 짓는 집 등이죠.

전라남도 보성 툇마루 주택은

제가 처음 설계한 집입니다.

의뢰인이 태어나 자란 집이었죠.

의뢰인은 서울 아파트에 살았는데

고향집 부모님이 늘 걱정이었어요.

외풍이 심한 시골집이다 보니

찬바람만 불면 걱정이 컸죠.

돈이 많지 않아 30평 정도로 지었는데

담장을 허물어 툇마루에 앉아

오가는 마을 주민들과 인사도 하고

25채의 다른 마을 집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지었어요.

원래 살던 집의 상량을 공존해

집은 새로 짓긴 했지만

100년 역사가 함께 숨 쉬도록 했죠.

부모님에게 따뜻한 집을 지어드리고

장작을 때며 감격스러워 울었다는

따뜻한 이야기가 숨 쉬는 집입니다."

김용순 사진작가 제공

"요즘 3대가 함께 사는 집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 가정이죠.

육아 고민을 함께 살면서 해결하는 거죠.

그런데 예전처럼 현관이 같지 않아요.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문은 다르지만

거실이나 식탁에서 만날 수 있는 구조죠.

내 인생의 마지막 집도 있어요.

퇴직 후 평생 모은 돈으로

건축을 의뢰한 분의 따님을 만났는데

아버지 말씀은 그냥 흘리더라도

어머니의 주문은 다 들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문득 느꼈죠.

아내에게 더 잘해야겠다.(웃음)"

김용순 사진작가 제공

"미혼으로 63세에 은퇴한

한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지은 집입니다.

당시 그 선생님은 95세 어머님을

모시고 함께 살고 있었어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가 꿈이었는데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계속 미루다가

은퇴 후에 그 꿈을 이루신 거죠.

20평 정도의 작은 집이었는데

자재비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

폐교의 자재를 가져다가 지었어요.

잡지책에 나오는 멋진 집은 아니지만

꿈을 그리는 행복한 집을 지은 거죠.

건축가는 돈을 좇으면 안 됩니다.

의뢰인의 꿈과 이야기를 담아드리는

그런 역할에 충실해야 하죠."

미국인인 오수잔나 씨는

39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한양도성 길라잡이 봉사도

매 주말마다 나간다.

오수잔나 씨는 한국이 너무 좋지만

의아한 점도 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아파트를 선호해요.

그러다 보니 이웃에 누가 사는지

전혀 모른 채 격리된 삶을 살죠.

제가 미국에 있을 때는 마당에서

이웃들과 많이 교류하곤 했어요.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건

지방엔 빈집들이 넘쳐나는데

왜 신도시를 짓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비싼 재료로 지은 큰집이 좋은 집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몸과 마음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우리 이야기가 담긴 집이 아닐까요.

이 집은 건축가의 몫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스스로의 몫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집을 짓고 싶으신가요."

건축가 김창균 대표는 이 질문을

화두로 던지면서 이야기를 끝냈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에 들어서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는 집

누구나 그런 집을 짓고 싶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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