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 낙원동하면
대표적인 상징이 여럿 있다.
음악 좀 한다는 사람들은
먼저 악기상가를 떠올린다.
또 하나가 있는데 바로 떡집이다.
1950년대 낙원상가 아파트 자리에
낙원시장이 들어선 이후
평양떡집을 시작으로
떡집들이 하나둘씩 생겼다.
조선시대 세도가들의 모여 살던
삼청동 일대 북촌마을과 가까운
낙원상가 근처에는 아직까지
떡집 10여 곳이 명맥을 잇고 있다.
이광순 사장님이 운영하는
낙원떡집도 그중 하나다.
무려 4대째 101년 동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작은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할머니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건
한일합방 이후였어요.
떡을 받아 팔기만 하다가
당시 출궁한 궁인 출신들이
떡을 빚어 생활했었는데
외할머니가 그 집 일을 거들면서
떡 솜씨를 익혔다고 합니다.
원래 음식 솜씨가 좋은 분이라
아마 금방 기술을 익히신 듯해요.
그렇게 4~5년 뒤 모은 돈으로
직접 조그만 가게를 차리고
떡을 빚어서 팔았는데
그게 낙원떡집의 시작입니다."
"어머님이 제게 이곳을 물려주고
미국 LA에서 낙원떡집을 차렸어요.
3년 전 93세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평생 떡을 만드셨으니
떡 사랑이 정말 존경스럽지요.
외할머니, 친정어머니와 저
그리고 지금은 아들에 이르기까지
어느덧 4대째 101년을 하고 있어요.
한국전쟁 당시 피난 갈 때도
우린 계속 떡을 만들어 팔았죠.
피난 당시 어머니와 할머니가
한밤중에 떡을 만드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재료들을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또 방앗간은 어떻게 찾았는지
모든 게 궁금해집니다."
"떡은 저에게 밥과 같아요.
매일 먹어야 하는 양식이죠.
낙원떡집은 예전부터 조금 달랐어요.
아마도 외할머니가 궁중 방식대로
떡을 배우셔서 그런듯해요.
일반 떡은 빻아서 그냥 찌면 되지만
궁중 떡은 임금님이 드시던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만드는 과정이 힘들어요.
가령 경단 하나를 만들더라도
꿀물에 건져서 고명을 묻혀요.
궁중 떡은 과정 하나하나
더 많은 노력이 정성이 들어가죠.
그 노하우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죠.
옷도 옷감이 좋아야 되듯
떡도 재료가 좋아야 맛이 좋아요.
콩가루 하나도 다르게 만들죠.
콩 껍질을 싹 벗겨버리고
그 내용물만 볶아 고물을 만들어야
더 부드럽고 감칠맛이 나요.
우린 옛 방식 그대로여서
인절미도 맛이 달라요.
고물 맛이 다르기 때문이죠."
"떡을 만드는 건 참 힘들어요.
일반 직장인처럼 할 순 없어요.
밤에 시작해 아침에 끝납니다.
떡이 필요한 시간이 아침이다 보니
일상생활과 반대로 돌아가는 거죠.
그럼에도 지치지 않는 이유는
떡을 찾는 손님들 때문입니다.
저도 나이가 꽤 들어서
오래된 단골손님이 많아요.
3대째 손자손녀들을 데리고 와요.
한 번은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는
가족이 찾아온 적이 있어요.
환자분이 죽기 전에
낙원떡집 떡 한 번만 먹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사러 오신 거죠.
제가 정성껏 떡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요."
"요즘은 쑥 인절미가 최고 별미에요.
제주도 바닷가 근처 쑥밭과 계약해
일주일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타고 와요.
세월이 많이 좋아졌지요.(웃음)
쑥가루를 사용하는 떡과
생쑥을 사용하는 떡은
그 맛 자체가 정말 다릅니다.
그런 정성을 손님들이 알아주셔서
과거 외환위기 당시에도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인 지금도
매출엔 큰 영향이 없습니다."
낙원떡집은 대통령 떡집으로 꼽힌다.
이승만 대통령을 시작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60년간
청와대에서 주문하는 떡은
대부분 낙원떡집이 도맡았다.
"대통령마다 입맛이 다르시잖아요.
어떤 대통령은 백설기를 좋아하고
어떤 대통령은 인절미를 좋아해요.
특히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인절미를 정말 좋아하셨어요.
다른 떡은 전혀 안 드셨죠.
옛날로 말하자면 궁중 떡인 거죠."
이 사장의 또 다른 보람은 자녀들이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12시 넘어서까지 일을 하면
집으로 돌아갈 땐 걷기조차 힘들다.
당연히 아이들을 돌볼 틈도 없었다.
그런데도 3남매가 모두
국내외 일류대학을 졸업했다.
"떡장사를 하면서 자식교육 잘했다고
남편이 한석봉 엄마라고 불러요."(웃음)
손님 한 분이 떡집 문을 열면서
사장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무려 45년 단골이라고 한다.
"진짜 오랜만이에요.
성북동으로 이사 가서 살다보니
그동안 자주 못 왔어요."
자녀가 세 명 있는데 모두
여기서 만든 떡으로 결혼을 시켰죠.
근처에 오면 서운해서 꼭 들러요."
그 손님이 인절미를 사면서
콩가루도 조금 팔라고 하자
그냥 한 주먹 퍼서 드린다.
그러자 김칫국 끓일 때
넣으면 맛나다고 귀띔한다.
맛난 떡과 함께 사장님 표
따뜻함까지 묻혀보내는 듯하다.
몇 십 년 쌓아온 그 정까지
낙원떡집의 미래유산으로
오래오래 남겨졌으면 싶다.
이광순 사장님이 지금까지
가장 맛있게 먹었던 떡은
배가 고팠을 때 먹은 떡이라고 한다.
또 그 마음으로 떡을 만든다고 한다.
좋은 재료에다 궁중의 정성
그리고 먹는 이에 대한 배려까지
낙원떡집이 101년이란 긴시간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유인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