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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보영의 페북사람들]레이저로 자유를 찍다

  • 2021.01.22(금) 11:50

"저에게 사진이란

시대별로 좀 달라져요.

학창시절에는 성적표였고

사진기자 시절에는 밥줄

지금은 저의 일탈입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진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변성진 사진작가가

'hide&seek or YOU'란 제목으로

인사동 아지트갤러리에서

1월 22일까지 사진전을 연다.

변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기준선이라는 주제를 통해

숨바꼭질하듯 아슬아슬한

자유와 욕망을 표현했어요.

누군가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가진

그 기준의 모순을

얘기하고 싶었어요"라고.

"이번 전시 제목을 보면

hide&seek or까지는

항상 소문자로 써요.

YOU는 대문자로 쓰죠.

hide&seek는 저에요.

작가가 사진 이곳저곳

심어놓은 많은 이야기를

숨바꼭질처럼 화두로 던지면

대문자 YOU가 관람하는 거죠.

내 이야기를 토대로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

그대로 생각해도 좋지만

덧붙이거나 빼면서

더 생각해도 된다는 뜻이죠.

아무런 화두를 제시하지 않고

관람객에게 모든 걸 던지는 건

사실 방종에 가까워요.

작가가 기본 화두를 던지고

그다음 생각을 유도하는 건

생각 안에 자유를 줍니다.

제 사진을 쓰레기로 보든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든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 둡니다.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작가의 몫인 거죠."

변 작가는 '레이저 라인'을 이용

'자르기와 연결하기'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표현한다.

"규칙과 불규칙을 의미하는

기준선은 무조건 지켜야 하죠.

예를 들면 육상선수는

출발선을 넘으면 반칙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요.

제가 그어 놓은 선들은

기준과 잣대 관념 속박 번뇌

그리고 규칙과 욕망의 선이자

또한 자유의 선입니다.

사진은 빛이 없으면 못 찍어요.

저는 이런 특성을 이용해

빛으로 사진을 난도질합니다.

점이 하나씩 모이면 선이 되고

그 선이 더 모이면 면이 됩니다.

그런 이미지를 표현한 겁니다.

규칙적인 선이자 규제의 선이죠.

잣대와 선입견을 다 갖고 있어요."

"남자에게 들어가는 선과

여자에게 들어가는 선은

사실 조금씩 달라요.

여자는 직선을 많이 사용해요.

사회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자에겐 규제가 더 많아요.

남자들에 대한 사진을 보면

흔들리는 선이 많아요.

곡선과 불규칙적인 선이죠.

남자도 자유롭다고는 하지만

삶의 무게에 짓눌리면서

큰 압박 속에 살아갑니다.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어요.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거죠.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지킬 건 지키며 살아갑니다.

우리 사회에서 존재하려면

어떤 식이든 지켜야 해요.

제가 그리는 자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건데

그래서 저도 자유롭지 못해요.

사진을 찍으면서도

이런저런 압박을 받습니다.

특히 사진가는 네모의 틀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어요.

사진을 찍으면서조차

감도와 노출 셔터스피드까지

다양한 선에 들어가야 하죠.

그러면서도 자유를 표현한다고

저는 말하고 있어요."

"제 작가노트를 보면

모순이란 단어가 있어요.

제 자체가 모순입니다.

모순 안에서 작업을 해요.

아무것도 없으면 행복해요.

행복에 대해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큼 더 행복하다는 거죠.

행복지수가 높다는 건

걱정이 없다는 겁니다.

자유도 똑같아요.

자유를 생각하지 않으면

더 자유로울 수 있는데

자유를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사실 없어요.

뭔가를 하고픈 욕망이

그 안에 다 들어 있어요.

내 맘대로 하는 게 자유인데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어요.

자유엔 늘 대가가 따르거든요.

저도 현실에선 가질 수 없는

갈망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거죠.

자유를 표현하고 싶긴 하지만

표현한 그 자유가 모순인 거죠.

사실 말이 안 될 수도 있는데

이게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그걸 예술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누드 사진이 많아

누드를 메인으로 생각하는데

진짜 메인은 이 사진입니다.

제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만든 사진입니다.

그냥 손 사진이긴 한데

가만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손은 언제나 누드잖아요.

제 누드 사진을 보면서

19금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손은 아무리 노출해도

그런 말을 하진 않잖아요.

손은 아무리 찍어도

누구를 찍어도 자유로워요.

특히 깍지를 낀 손은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누군가에겐 기도하는 손인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수갑을 찬 손이기도 하죠.

깍지는 연인만이 끼잖아요.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서로에 대한 구속을

의미할 수도 있거든요.

레이저 선이 기준선도 되지만

저마다 개개인들이 가진

시선이라는 의미도 있어요."

"레이저는 제 사진의

선 하나를 여러 개로 나누는

도구 역할을 합니다.

원리는 아주 간단하죠.

초등학교 때 배웠던

곤충의 눈과 비슷해요.

레이저 발광부에

어떤 식으로 장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선들이 연출됩니다.

납땜하고 스크래치를 만들고

또 덧붙이고 자르기도 합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도

모델이 먼저 포즈를 취하고

레이저를 넣는 게 아니라

레이저로 먼저 자리를 잡고

모델이 포즈를 잡아줍니다.

그래서 똑같은 사진을

여러 장 찍을 순 없어요.

모델이 그대로 있을 수 없거든요.

각도가 달라집니다.

그럼 다른 사진이 되어버리죠."

"지금은 레이저로 작업하지만

처음에는 모델 몸에

일일이 실을 붙여야 했죠.

실은 빛 번짐이 없어요.

제가 원하는 빛 번짐이 없어

그동안 많이 고민했어요.

그래서 6년 전 찾아낸 방식이

바로 레이저입니다.

레이저는 제가 자유롭게

굴곡과 움직임을 줄 수 있죠.

초창기에는 모델의 몸을

직접 터치할 수가 없어서

와이프와 처제가 도와줬어요."

"관람객들의 후기를 보면

SNS에 제 사진을 선뜻

올리기 어렵다고 말하는

분들이 가끔 계세요.

예술과 외설의 차이점은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떳떳하냐 아니냐의 차이죠.

제가 만약 더 큰 관심을 위해

포르노를 찍었다면

제 9살 아들을 전시장에

데려올 순 없었겠죠.

가족에게 공개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참고로 아들을 포함해

모든 가족이 전시를 보고 갔어요."

"저는 사진 작업과 함께

비어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해

성북동에서 수제맥주 전문점인

'탭하우스F64'를 운영하고 있어요.

결혼을 하고 자녀도 있으니

전업작가로는 생계가 쉽지 않아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켜야 하는 선도

제겐 중요한 거죠.

만약 제가 100% 전업작가라면

조금이라도 더 잘 팔릴 수 있는

그런 작품활동이 필요하겠지만

상업적으로 다른 일을 하면서

대학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어

상대적으로 덜 타협하면서

사진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잘 팔리는 사진이 아니라

하고 싶은 작업을 하는 거죠.

완벽한 자유에는

책임이 분명히 따릅니다."

내가 만든 선은

우리 사회의 기준선이자

누군가를 향한 우리의 관점이다.

편견에서 벗어난 자유는

본질을 찾아가는 열쇠와 같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바라보며

가장 아쉬운 대목 중 하나다.

좀 더 가까이에서

서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면

내가 배타적으로 그어놓은

기준선들도 조금씩이나마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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