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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보영의 페북사람들]레시피는 있어도 정량은 없어요

  • 2021.03.31(수) 09:17

출판사 궁편책 김주원 대표에게

밥은 나눔이다.

"저는 경북 안동 내륙

깊숙한 곳에서 유년을 보냈어요.

어렸을 때 세 끼를

다 먹어본 적이 없었어요.

두 끼는 제대로 밥을 먹고

한 끼는 구황작물을 먹었죠.

논이 거의 없는 곳이다 보니

밥은 거의 생명이었어요.

밥을 나눠 먹는다는 건

굉장히 큰 의미였죠.

이웃 집집 굴뚝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해질녘이면

괜히 솥뚜껑을 열어 보며

저녁밥을 확인하는 일이

그 무렵 제겐 주요 일과였죠.

우리가 한창 식사 중일 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신 조부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애미야 밥 남았느냐?'

밤중에 찾아올 수도 있는

길손까지 헤아리라는 뜻으로

그 때문에 우리 집 가마솥에는

늘 밥이 남아 있어야 했죠.

누군가와 나눔으로써

마음부터 온기가 차오르는 것

그게 밥이죠."

"지난해 궁편책을 창업했는데

그전까지 가장 사랑했던 직함은

바로 편집장이었어요.

대학 학보사 시절부터

30년 동안 늘 어김없이

제 이름 뒤를 따라다녔어요.

평생을 책과 함께 한 거죠.

EBS 관련 출판사에서

8년 정도 책을 만들었어요.

바쁠 땐 하루 22시간씩 일하며

한 달에 100권 넘게 내기도 했죠.

누적으로 600만 부 넘게

판매된 책도 있었어요.

세법 책은 4000페이지나 되는데

원고를 받으면 첫장부터 끝장까지

일일이 기획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바쁘게 일하던 제게

누군가 '밥은 먹었니?'라는

일상적인 인사말을 건네면

제 귀에는 '살아있니?'

'잘 살고 있는 거니?'로 들렸죠.

'밥'이라는 단음절 단어가

함의하는 바는 제겐 거룩했어요."

"창업 후 가장 먼저 만든 책이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입니다.

책을 만들기 7년 전부터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 셰프의

행보를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

어느 날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제 인생에 처음으로

원고를 요청한 분이기도 해요.

사람이 없으면 책도 필요 없죠.

그렇다면 이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의, 식, 주가 아닐까.

그렇게 계속 단음절로 된

명사를 찾아봤더니 밥이더라고요.

밥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분이

임지호 셰프셨던 거죠."

출처: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

"취재 첫날이었어요.

임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인

'산당' 앞마당에 심긴 고수를 보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참 맛있겠다'라고 중얼거렸는데

그걸 기억하시곤 취재가 끝나고

집에 갈 채비를 하던 중에

식사하고 가라며 권하셨어요.

급히 고수국수를 만들어 오셨어요.

그 한 그릇에 담긴 맛이

내내 잊히지 않았어요.

이번에 책을 기획하면서

선생님의 요리를 100가지 정도

맛볼 기회가 있었는데

먹을 때마다 눈물이 났어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죠.

'세상에 이런 맛이 있다니'

입안에 요리가 들어가는 순간

제 안 모든 것이 단순해지고

순수해지는 경험을 했어요.

'사랑의 최고 결정체는 요리'라고

선생님께 말할 정도였죠.

맛있게 먹는 저를 보면서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시고

서로가 행복하게 작업했던

그런 시간들이었어요."

출처: 궁편책

"임 선생님과 처음 미팅할 때

이런 이야기들을 했어요.

선생님이 가진 콘텐츠에

밥에 대한 제 의미를 담아

다시 한번 둘레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경험을 누릴 수 있는

책을 한 번 기획해보고 싶다고.

들풀로 만든 요리도

메인 요리가 될 수 있어요.

쌀로 만든 한 끼만 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내 배고픔을 채워준다면

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시대에 다시 한번

밥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다

이렇게 의도를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임 선생님께서

뜨겁게 반겨주시더라고요.

'내가 죽기 전에 당신을 만나

책으로 모든 것을 구현하고 싶다.

영혼을 바쳐 요리해드리죠'라고.

취재를 위해 선생님과 함께

3일 동안 들로 산으로 다니며

음식 재료들을 다 채집했어요.

재료들을 함께 다듬기도 했어요.

식당 직원들이 도와주겠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나물 다듬기부터 모든 작업을

선생님이 직접 다 하셨어요.

이 모습을 보고 저와 취재작가

둘 다 감동해서 울었어요.

저도 한때 하루 22시간씩 일했지만

선생님은 22시간 동안 선 채로

요리를 위해 일하시더라고요.

그렇게 같이 호흡하면서

바로 곁에서 취재하다 보니

10만 컷의 사진을 찍게 된 거죠.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닌데

선생님이 최선을 다해

요리하는 모습을 보니까

같은 마음이 된 것 같아요."

출처: 궁편책

"선생님이 계신 강화도의

여러 산 둘레를 따라 거닐면서

음식 재료로 쓸 이런저런

들풀과 들꽃을 채취하는 일이

책 작업의 시작이었어요.

시장에서 편하게 구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말씀하시며

길이 나지 않은 산속을 다니다

밤송이 가시에 발이 찔리고

가시넝쿨에 손이 긁히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다녔어요.

작업 첫날 취재작가가

발톱이 깨진 적이 있어요.

발목도 겹질려 부어 있었죠.

둘이 편집회의를 하다가

정말 농담처럼 말씀을 드렸는데

선생님이 진달래 뿌리를 구해

직접 다려주신 기억도 납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24시간 내내 다렸다고 하더라고요.

보온병에 약을 담아오셔서

계속 마시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랬더니 정말 붓기가 싹 빠졌어요.

그런 과정을 하나하나 거치다 보니

책 곳곳에서 사람 냄새가 나고

따뜻한 정이 듬뿍 담긴

날 것 같은 느낌이 묻어납니다."

출처: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

"임 선생님은 거칠고 투박하며

더러는 먹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하찮아 보이는 재료들까지

모두 귀하게 대우합니다.

지칭개 밀쌈부터 엉겅퀴 해장국까지

그저 제각각의 들풀들이 가진

성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그렇게 요리를 시작합니다.

별스러운 재료도 없고

별난 과정도 벗어버린

한 끼 식사가 완성되는 거죠.

매 끼니가 상에 오를 때까지

선생님의 손끝에서 벌어진

모든 과정을 지켜본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은 시간이었습니다."

출처: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

"요리는 내가 최선을 다했다면서

책 만드는 일은 제게 일임하셨어요.

제가 선생님을 믿는 것처럼

선생님도 저를 믿고 존중해준 거죠.

요리 하나하나마다 나름대로

다 스토리가 있습니다.

레시피는 있지만 정량은 없어요.

우리 요리는 원래 손맛이잖아요.

몇 그램 몇 그램 정량 방식은

다 서양요리에서 온 거예요.

언제부터인가 몇 그램을 넣고

얼마 동안 끓여야 한다는 게

요리의 기준이 되고 있는데

선생님과 저는 그렇게 하지 말자

이렇게 의기투합했어요."

"요리책을 보고 레시피를 보고

음식을 만들기는 하지만

집안마다 스타일이 있잖아요.

매운맛을 좋아하면 매운맛을

단맛을 좋아하면 단맛을 더 내죠.

각각의 다양한 입맛에 맞게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돕고

그래서 한 상에 둘러앉아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는 게

또 다른 의미이자 바람입니다.

레시피를 따라 만드세요가 아닌

요리에 이야기가 스며드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책을 보며 서로 얘기하는 거죠.

'이런 들풀로도 요리를 하나봐'

가족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매개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출처: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

"'요리는 확장성이 중요하다'

가령 10분을 끓이면 가장 맛있지만

치아가 약한 분들은 더 끓여야

요리의 맛을 느낄 수 있다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시곤 했어요.

요리책이 아니라

요리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책을 쭉 읽다 보면

왜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는지

충분히 공감하실 듯합니다.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는

시작과 끝이 모두 사람을 향해요."

출처: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

"선생님의 요리 중에서

목련 카나페라는 게 있어요.

목련의 꽃말은 고귀함입니다.

사람에게 독이 되는 책은

절대로 만들지 않겠다

그렇게 돈을 벌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타협하지 않고

지금까지 책을 만들어 왔어요."

김주원 대표는 말한다.

책은 출간이 아니라 출산이라고.

그 이유는 책이란 누군가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도 있어서다.

긴 겨울이 끝나고

나무엔 생명이 움트고

화사한 봄꽃들이

아름답게 세상을 바꾸어 간다.

곁에 있는 이에게 한 마디 건네보자.

밥은 먹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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