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불황과 고물가가 맞물리며 여성 패션 시장에서도 소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은 품질이 다소 낮더라도 유행하는 아이템을 초저가로 구매하는 반면, 취향과 브랜드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자층은 과감한 지출을 하고 있다. 이에 국내 패션 플랫폼들은 양극단의 수요를 잡기 위한 전략 마련에 나섰다.
가파라진 성장세
데이터 플랫폼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1~4월 기간 중국 글로벌 SPA 패션 플랫폼 '쉬인'의 신용·체크카드 결제 추정액은 8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에 비해 (248%) 증가한 수치다. 특히 올 4월에만 32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진출 초기인 1년 전에 비해 4배 늘었다. 테무, 알리익스프레스 등 다른 중국계 플랫폼들도 국내에서 큰 폭의 성장을 보였다.
반면 국내 플랫폼들의 경우, 같은 기간 무신사(무신사·29CM)를 제외하곤 카카오스타일(지그재그), 에이블리, W컨셉코리아(W컨셉)의 결제추정액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C커머스와 결제 추정액 성장세가 엇갈린 셈이다.

플랫폼 이용자 수도 변화가 생겼다. 올해 4월 기준 쉬인의 월간활성사용자수(MAU)는 전년 대비 2배 증가한 120만명을 기록했다.또 올 4월 업종별 월간 앱 신규 설치 순위를 보면, 패션업종에서 쉬인이 신규 설치 건수 33만건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공격적인 프로모션과 저렴한 가격대를 앞세운 결과다. 그 다음으로 무신사(25만건), 에이블리(23만건), 지그재그(19만건) 순이었다.
"너무 비슷한데 가격 차가..."
월간활성사용자 수나 추정 결제금액은 여전히 국내 플랫폼이 더 많지만, 엇갈린 성장세를 보면 국내 플랫폼의 시장에서의 입지가 작아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아울러 C커머스의 부상이 에이블리, 지그재그 등 동대문 기반 보세 플랫폼에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동안 에이블리·지그재그는 가성비를 앞세워 10~20대 여성을 주요 타깃으로 의류 시장을 선점해왔다. 하지만 중국계 플랫폼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소비자 이탈이나 매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로 최근 온라인 상에는 "에이블리에서 구매한 상품과 똑같은 옷이 테무에서는 2만~3만원 이상 저렴하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게재되고 있다. 동일한 디자인의 상품을 더 비싸게 구매한 것에 대한 불만이 발생하면서 국내 플랫폼 이탈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층은 쉬인이나 테무처럼 더 저렴한 경로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고, 반면 브랜드 가치나 디자인 철학에 집중하는 소비자들은 아예 취향 중심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결국 중간 가격대 보세 의류 플랫폼은 소비자 이탈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가격 이상의 브랜드 가치를 보여줘야
상황이 이렇자 국내 패션플랫폼들은 정체성 있는 브랜드 셀렉션과 큐레이션 전략으로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취향이나 기호에 맞는 패션 아이템을 과감히 소비하는 이들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한 벌을 사더라도 오래 두고 입는 가치 소비를 추구하고, 우수한 품질과 디자인 정체성이 명확한 디자이너 브랜드 의류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타깃이다.
실제로 디자이너 브랜드 비중이 높은 여성 브랜드 패션 플랫폼 29CM의 경우 올해 1분기 패션 카테고리 거래액은 전년 대비 20% 넘게 증가했다. 특히 2539세대 핵심 고객층의 거래액은 꾸준히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였다. 29CM 관계자는 "브랜드 철학을 강조한 스토리텔링과 신진 디자이너 발굴 역량을 경쟁력으로 삼았다"며 "소비자들은 단순 구매를 넘어, 취향에 맞는 브랜드 세계관을 탐색하는 데 주목한 게 성장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지그재그도 최근 디자이너 브랜드 '던스트'를 입점시키는 등 브랜드패션 카테고리를 강화하고 나섰다. 지그재그도 올 1분기 브랜드패션 카테고리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에이블리도 상품과 배송 경쟁력 등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에이블리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는 스타일과 배송에 민감한 만큼, 국내 취향을 가장 잘 아는 상품 경쟁력과 개인화 추천, 풀필먼트 및 배송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선 C커머스를 이길 방안은 있다고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택갈이 제품'이라고 불리는 보세 의류에 대해 소비자들이 여러 플랫폼에서 가격을 비교해보는 경향이 커졌다"며 "다만 국내 플랫폼들은 소비자 성향에 맞춘 상품 기획, 고품질 콘텐츠, 빠른 배송 및 고객 대응 서비스(CS) 등에서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