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어디를 가도
찾을 수 없는 안경이 있다.
서울 인사동 길을 걷다 보면
건물 벽면을 덮고 있는
현수막 사진과 통유리 사이로
가내수공업으로 안경을 만드는
조임수 안경공예가를 볼 수 있다.
지나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신기한 듯 작업 광경을 보곤 한다.
조임수 공예가는 26년째
안경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그리다'는 안경 전체를
핸드메이드로 만드는
국내 유일의 안경 매장입니다.
여러 소재로 여러 이미지를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어요.
안경은 매일 입는 옷처럼
매일 착용하는 필수품이자
자기를 나타낼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똑같은 안경을
획일적으로 판매하고 착용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에 걸렸어요.
남들과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하다 보니
이 길로 들어서게 됐어요."
"1995년 안경공학과 입학 후
안경을 만드는 펜탁스 본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어요.
당시 시력 검사를 위한 기술서가
대부분 일본 자료다 보니
번역 아르바이트를 한 건데
덕분에 남들이 접할 수 없던
선진기술을 쉽게 접하게 됐죠.
학생 때부터 2000년까지
10년 넘게 펜탁스에서 일했어요.
그러다 펜탁스를 그만두고
당시 유행에 가장 민감했던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에 있는
안경원에서 일하게 되었고
2004년 수제안경원으로 전업했죠."
"오픈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여러 디자인의 제품들을
진열할 수가 없었어요.
손님이 이런 모양 있어요?
저런 모양 없어요? 물으면
늘 '없어요'가 제 답이었죠.
유행을 앞서는 손님들의 욕구를
디자인이 따라가지 못한 거죠.
고객에 디자인을 맞추는 게 아니라
안경에 고객을 맞추는 구조였어요.
'이대로 안경점을 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계속 들기 시작했죠.
뭔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그에 따르는 수고가 있잖아요.
퇴근 후에 목공소를 비롯해
수제 안경을 만들기 위한
수련의 시간을 가졌어요.
일은 물론 배움의 시간까지
안경과 함께하는 시간이
두 배 이상 늘어나게 된 거죠."
"수제 안경을 만들려면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손님이 볼 때 '아! 다르구나'하는
센스 있는 디자인이 중요해요.
일을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자세도 아주 중요합니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지만
몸이 고단해도 일이 즐겁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잖아요.
일을 즐길 수 있게 되니까
고객의 요구를 찾아
뭔가 생각하고 창작하면서
그 요구를 만족시키는 과정이
큰 기쁨으로 다가왔어요."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한편으론 두려움도 컸죠.
수제 안경 매장 자체가 없었고
지금처럼 모든 안경을
수제품으로 만들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기존 제품들과 함께
'그리다'가 만든 여러 제품을
같이 판매할 수밖에 없었어요.
당시만 해도 독창적 디자인보다
연예인들이 쓰고 나온 디자인을
더 찾고 선호했기 때문이죠.
간혹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을 찾는 손님이 있었어요.
그렇게 저를 인정해주는
손님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2014년쯤엔가 좀 힘들어서
일본에 있는 백화점에 입점해
제가 만든 안경을 판매했어요.
일본 백화점에서 제가 만든
수제 안경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어요.
고객들에게 선택을 받게 되면
자신감이 생기잖아요.
2015년에 다시 돌아왔는데
마침 유행이 빠르게 변했어요.
자신만의 독특한 안경을 찾고
개성을 표현하는 시대가 된 거죠."
"브랜드 안경과 함께
제가 만든 안경을 내놓으면
많은 손님들이 제 안경을
선택해 주시더라고요.
세심한 전략과 디자인으로
유행에 맞춘 제품을 선보이니
많은 사랑을 받기 시작했어요.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기존 브랜드 안경은 모두 빼고
직접 디자인한 수제 안경들로
매장을 구성했어요.
마침 한류열풍과 맞물리면서
외국 손님들도 많이 찾아주셨죠."
"매장 이름이 '그리다' 잖아요.
거기에는 부제도 있습니다.
'나만의 안경을 그리다'
기존의 똑같은 안경이 아닌
나만의 안경을 그리다가
저희 가게 이름이고 모토이자
또한 브랜드 네임입니다.
제게 안경의 의미는
친구이자 장난감 같아요.
안경을 만들다 자고
안경을 만들려고 깨곤 했죠.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그 무엇보다 행복하잖아요.
디자인을 생각하다가 잠들면
꿈에서 디자인을 하기도 해요.
고객이 볼 때는 안경 디자인이
거기가 거라고 할 수 있지만
디테일의 차이가 큽니다.
우선 안경의 소재부터
뿔테 쇠테 무테 나뉩니다.
여러 소재를 수합해
다른 소재로 넘어가는
그런 시도도 많이 합니다.
안경 소재 구해서
직접 만드는 과정까지
최소 2주 정도는 걸려요."
매장 한쪽에선 최영호 공예가가
손님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안경이 뭔지 컨설팅을 하고 있다.
"안경은 광학적 기능은 물론
피부 톤 그리고 헤어 톤과도
잘 어울려야 합니다.
안경을 주문 제작하면
본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 수 있죠.
매장에서 판매하는 안경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제품들입니다.
직접 많이 써보고
본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안경을 찾으면 됩니다.
안경은 직업과도 연관이 있어요.
예전에는 안경이 단순히
시력에 도움을 주는 기구였다면
이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까지
함께 고려해서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안경 업계엔 불문율이 있는데
손님이 쓰고 온 안경에 대해
이런저런 평가를 하지 않아요.
기존에 고객이 나름 선택한
안경에 대한 평가 자체가
예의가 아니라는 거지요.
안경은 디자인은 물론
가격도 저가부터 고가까지
수없이 다양하잖아요.
손님들이 가끔씩 물어봐요.
만원짜리와 뭐가 다르냐고.
그러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가치의 차이겠지요.
시계만 봐도 만원짜리부터
몇 천만원짜리까지 다양하잖아요.
시간만 보면 만원짜리로 족하지만
디자인과 가치까지 생각하는 분들은
더 비싼 시계를 구매하시겠죠.
안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재의 차이부터 디자인까지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또 기능적으로도 딱 맞는
안경이 가장 좋습니다."
"남대문이 안경 업계의 중심이던
1995년부터 지금 현재까지
오직 안경만 생각하면서
기술을 익혀온 경험이
저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손님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안경을 만드는 꿈을 꾸며
노력하고 또 도전한 덕분에
이제야 성과를 내고 있는 거죠.
'그리다'를 만나서
내 인생이 바뀌었다,
너무 행복하고 고맙다고
말씀하는 손님도 있어요.
그러면 그동안 걸어온 길을
인정받는듯한 보람을 느껴요.
오늘도 자신의 꿈을
그리면서 사는 사람들
또 미래에 그 꿈을 그려가려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하면서
그들이 선 바로 그 자리에
자부심이란 글자를 새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