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저녁시간이 되자
한 사람씩 연습실로 모여든다.
낮엔 생업전선에서 일하다가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다음 달에 막을 올리는
연극 리딩 연습에 한창이다.
연령대도 천차만별 다양하고
하는 일도 모두 다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연기가 밥보다 좋은 사람들이다.
정혜주 씨는 어느덧 4년 차 배우다.
지금껏 걸어온 삶이 연극과 같다.
"저는 아주 평범했어요.
꿈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살다가
취업을 위해 공대에 입학했죠.
그렇게 1년을 흘려보내고
2학년 여름방학 때였는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뭘 하려고 이렇게 살고 있지
그런 회의감이 몰려왔어요.
그렇게 한 학기 더 다니다가
독감에 걸려 집에서 쉬면서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내가 아는 한 배우가 수녀로
엄마로 또 디자이너로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거예요.
물론 드라마 속 인물이긴 하지만
다양한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그런 꿈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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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싫어했던 직업이었어요.
부모님이 TV를 보시다가 가끔씩
내 딸도 나왔으면 좋겠어라고 하시면
화를 낼 정도였거든요.(웃음)
그러던 제가 그 직업을 그리면서
갑자기 설레기 시작했어요.
나만의 꿈을 갖게 된 거지요.
전공과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는
두려움보다 두근거림이 더 컸어요."
"주변에서 꿈을 가진 이를 볼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또 부러웠어요.
카메라 앵글에 빠진 선배가 있었는데
카메라 앵글 이야기를 할 땐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마치 꿈꾸는 소년처럼
눈이 반짝반짝 빛났죠.
아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있지
저한테 늘 물었거든요.
그렇게 어영부영하던 제가
드디어 그 꿈을 만난 거지요.
덕분에 전혀 다른 그 길이
두려움보다 설렘으로
가득 찼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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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휴학하고 곧바로
춤과 연기학원에 등록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선생님이
제 학교에도 연극과가 있으니
전과를 해보라고 권해주셨고
그 다음 해 연극과로 옮겼어요.
지방이다 보니 학생 수도 적고
뭔가 생각과는 너무 달랐어요.
다시 휴학을 하고 성악을 공부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 편입했죠.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
성악을 했는데 클래식에 푹 빠졌어요.
잠자리에 들기 전 그냥 듣던 음악들이
제 마음을 흔들어놓더라고요.
4학년 졸업할 즈음에
또 한 번 갈림길이 섰어요.
원래 목표했던 배우의 길을 갈지
현재 좋아하는 성악을 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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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배우의 길을 선택했어요.
그런데 아무런 경험이 없고
눈에 띄는 외모도 아니다 보니
오디션을 볼 때마다 떨어졌어요.
그래도 맨땅에 부딪혀보자는
오기로 계속 오디션을 보러 다녔죠.
그러다가 배우 면접을 보러 갔는데
5.18 민주화운동이 소재였어요.
제 고향이 광주여서
잘 알고 느낀 것들이 많았기에
자신이 있었고 결국 합격했죠.
덕분에 배우의 길로 들어섰어요."
"그렇게 4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
배우라는 직업은 계속 공부하고
또 배워야 하는 길 같아요.
작년엔 아무리 연습해도
나오지 않던 감정선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제 몸에서 나오는 걸 느끼면서
항상 배운다는 자세로
첫 열정으로 걸어가지 않으면
계속 갈 수 없겠구나 깨달았고
지금도 천천히 걷고 있습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맞는 건가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연극이란 직업이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않거든요.
여기 모인 사람들도 다 각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연기하고 있어요.
서울에 집을 가지고 있는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것만으로 스펙인 시대인데
청춘이니까 아파도 경험이라는 말은
요즘 세대와는 맞지 않는 듯해요.
아프면 곪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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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니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분명 있습니다.
언제 다시 작품을 만날 수 있을지
초조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막상 다른 일을 하다 보면
연기를 위해 일을 하고 있는데
주객이 바뀌는 고민도 커요.
예전엔 작아 보였던 현실들이
갈수록 커지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이 길을 가야겠다 마음먹으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이 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은 내가 진다는
그런 마음 자세였어요."
"제 행복은 제가 좋아하는 연기니까
무대에 올랐을 때 가장 행복한
내 모습을 바라보게 돼요.
유명한 배우가 아니더라도
제 이름을 모르시더라도
무대에서 내려와 길에서 마주쳤을 때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그 한마디가
무대에 설 수 있는 가장 큰 힘이에요.
이렇게 계속 걸어가다 보면
제 연기를 찾아주고 불러주는 분들이
더 많아질 것이란 그런 희망이
저를 지탱해주는 힘입니다.
연기를 통해 삶이 더 넉넉해져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도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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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말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여기에 한 구절 더 덧붙이고 싶다.
'간절한 사람은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파서 곪는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청년들이 저마다의 꿈을 갖고
창공으로 날아오르기를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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