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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사람은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

  • 2019.11.29(금) 11:21

[페북사람들] 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이른 저녁시간이 되자

한 사람씩 연습실로 모여든다.

낮엔 생업전선에서 일하다가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다음 달에 막을 올리는

연극 리딩 연습에 한창이다.

연령대도 천차만별 다양하고

하는 일도 모두 다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연기가 밥보다 좋은 사람들이다.

정혜주 씨는 어느덧 4년 차 배우다.

지금껏 걸어온 삶이 연극과 같다.

"저는 아주 평범했어요.

꿈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살다가

취업을 위해 공대에 입학했죠.

그렇게 1년을 흘려보내고

2학년 여름방학 때였는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뭘 하려고 이렇게 살고 있지

그런 회의감이 몰려왔어요.

그렇게 한 학기 더 다니다가

독감에 걸려 집에서 쉬면서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내가 아는 한 배우가 수녀로

엄마로 또 디자이너로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거예요.

물론 드라마 속 인물이긴 하지만

다양한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그런 꿈이 생겼어요."

"배우는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싫어했던 직업이었어요.

부모님이 TV를 보시다가 가끔씩

내 딸도 나왔으면 좋겠어라고 하시면

화를 낼 정도였거든요.(웃음)

그러던 제가 그 직업을 그리면서

갑자기 설레기 시작했어요.

나만의 꿈을 갖게 된 거지요.

전공과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는

두려움보다 두근거림이 더 컸어요."

"주변에서 꿈을 가진 이를 볼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또 부러웠어요.

카메라 앵글에 빠진 선배가 있었는데

카메라 앵글 이야기를 할 땐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마치 꿈꾸는 소년처럼

눈이 반짝반짝 빛났죠.

아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있지

저한테 늘 물었거든요.

그렇게 어영부영하던 제가

드디어 그 꿈을 만난 거지요.

덕분에 전혀 다른 그 길이

두려움보다 설렘으로

가득 찼던 것 같아요."

"학교를 휴학하고 곧바로

춤과 연기학원에 등록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선생님이

제 학교에도 연극과가 있으니

전과를 해보라고 권해주셨고

그 다음 해 연극과로 옮겼어요.

지방이다 보니 학생 수도 적고

뭔가 생각과는 너무 달랐어요.

다시 휴학을 하고 성악을 공부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 편입했죠.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

성악을 했는데 클래식에 푹 빠졌어요.

잠자리에 들기 전 그냥 듣던 음악들이

제 마음을 흔들어놓더라고요.

4학년 졸업할 즈음에

또 한 번 갈림길이 섰어요.

원래 목표했던 배우의 길을 갈지

현재 좋아하는 성악을 할 것인지."

"고민 끝에 배우의 길을 선택했어요.

그런데 아무런 경험이 없고

눈에 띄는 외모도 아니다 보니

오디션을 볼 때마다 떨어졌어요.

그래도 맨땅에 부딪혀보자는

오기로 계속 오디션을 보러 다녔죠.

그러다가 배우 면접을 보러 갔는데

5.18 민주화운동이 소재였어요.

제 고향이 광주여서

잘 알고 느낀 것들이 많았기에

자신이 있었고 결국 합격했죠.

덕분에 배우의 길로 들어섰어요."

"그렇게 4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

배우라는 직업은 계속 공부하고

또 배워야 하는 길 같아요.

작년엔 아무리 연습해도

나오지 않던 감정선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제 몸에서 나오는 걸 느끼면서

항상 배운다는 자세로

첫 열정으로 걸어가지 않으면

계속 갈 수 없겠구나 깨달았고

지금도 천천히 걷고 있습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맞는 건가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연극이란 직업이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않거든요.

여기 모인 사람들도 다 각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연기하고 있어요.

서울에 집을 가지고 있는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것만으로 스펙인 시대인데

청춘이니까 아파도 경험이라는 말은

요즘 세대와는 맞지 않는 듯해요.

아프면 곪습니다."

"작품이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니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분명 있습니다.

언제 다시 작품을 만날 수 있을지

초조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막상 다른 일을 하다 보면

연기를 위해 일을 하고 있는데

주객이 바뀌는 고민도 커요.

예전엔 작아 보였던 현실들이

갈수록 커지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이 길을 가야겠다 마음먹으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이 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은 내가 진다는

그런 마음 자세였어요."

"제 행복은 제가 좋아하는 연기니까

무대에 올랐을 때 가장 행복한

내 모습을 바라보게 돼요.

유명한 배우가 아니더라도

제 이름을 모르시더라도

무대에서 내려와 길에서 마주쳤을 때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그 한마디가

무대에 설 수 있는 가장 큰 힘이에요.

이렇게 계속 걸어가다 보면

제 연기를 찾아주고 불러주는 분들이

더 많아질 것이란 그런 희망이

저를 지탱해주는 힘입니다.

연기를 통해 삶이 더 넉넉해져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도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공자는 말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여기에 한 구절 더 덧붙이고 싶다.

'간절한 사람은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파서 곪는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청년들이 저마다의 꿈을 갖고

창공으로 날아오르기를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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