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편의점은 최신 트렌드를 알 수 있는 '최전선'으로 꼽힌다. 그때그때 유행하는 방송, 인플루언서, 스포츠, 게임, 웹툰, 먹거리까지 세상의 모든 콘텐츠가 편의점에서 상품으로 탄생하기 때문이다.
세븐일레븐은 이 같은 흐름의 선두에 선 편의점이다. 방송인 이장우, 먹방 유튜버 히밥, 야구단 롯데 자이언츠 등과 잇따라 단독 협업 상품을 내며 젊은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에는 항공사 이스타항공과 함께 일본 도쿠시마의 라멘을 상품화 한 '도쿠시마 라면'을 선보였다. 항공사와 협업 라면을 내는 것은 그간 편의점업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다. 지난 4일 안종현 코리아세븐 상품본부 가공식품팀 라면담당 MD를 만나 '도쿠시마 라면'의 탄생기에 대해 들어봤다.
유통·항공·식품사가 만났다
도쿠시마 라면의 시작은 '우리만의 강점이 무엇일까' 하는 세븐일레븐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안 MD는 "세븐일레븐은 국내 3위 편의점이지만 글로벌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있다"며 "이런 이미지를 활용해 어떤 상품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한 데서 도쿠시마 라면의 개발이 출발했다"고 말했다.
세븐일레븐은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를 담은 차별화 상품을 만들기 위해 패션 브랜드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에게 협업을 제안했다. 세븐일레븐의 제안에 화답한 곳이 바로 이스타항공이었다.
이스타항공은 인천~도쿠시마 노선을 지난해 12월부터 단독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는 전통 춤인 '아와오도리'와 아와오도리 축제, 나루토 해협의 소용돌이, 독특한 라멘 등으로 알려진 도시지만 국내에서는 이제 막 인지도를 쌓아가는 여행지다. 이스타항공 입장에서 세븐일레븐과의 협업은 도쿠시마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스타항공은 도쿠시마 라멘을 컵라면으로 상품화 해보자고 제안했다. 세븐일레븐 역시 그간 글로벌소싱팀을 통해 다양한 일본 컵라면 제품을 선보이면서 국내에도 일본식 라면 제품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이스타의 제안에 긍정적이었다.
그는 "우리가 수입한 일본 라면이 큰 인기를 끌면서 일본 라멘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일본 컵라면은 대부분 3000원 이상의 고가 제품이다보니 우리나라 공장에서 생산한다면 더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세븐일레븐이 기획한 새로운 일본식 라면의 생산을 맡은 기업은 하림산업이다. 일본 컵라면은 넙적한 용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림산업은 국내에서 이 같은 넙적한 용기면을 생산하는 두 곳 중 한 곳이다. 또 하림산업은 OEM에도 적극적인 기업이다. 세븐일레븐의 '럭히밥 김찌라면' 등의 단독 상품도 하림산업이 생산하고 있다.
안 MD는 하림산업 담당자와 함께 일본 도쿠시마로 건너가 직접 9군데의 라멘집을 돌며 답사를 했다. 각 가게 라멘 맛의 특징뿐만 아니라 제조사에서 생산 가능한지, 라멘집과의 협업이 가능한지 등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사실 처음 안 MD가 상품화 하려고 생각한 라멘은 도쿠시마의 유명 맛집에서 판매하는 '도미라멘'이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생선인 도미로 국물을 내고 도미 비늘을 튀겨 고명으로 올리는 라멘이다. 하지만 안 MD는 직접 음식을 시식해본 후 상품화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안 MD는 "제조사에서는 생산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MD 관점에서는 라멘에서 생선 냄새가 강하게 나 국내 소비자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안 MD가 눈길을 돌린 음식이 도쿠시마식 라멘이었다. 안 MD는 "도쿠시마 라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익숙한 일본식 라멘인 돈육 베이스의 돈코츠 라멘의 특징과 함께 간장 베이스의 쇼유 라멘의 특징도 가지고 있다"며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해 도쿠시마 라멘을 상품으로 개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도쿠시마에 온듯
이렇게 출시한 신제품이 세븐일레븐의 도쿠시마 라면이다. 도쿠시마식 라멘처럼 돈코츠 라멘과 쇼유 라멘의 맛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제품이다. 세븐일레븐은 도쿠시마식 라멘의 특징을 모두 담는 데 집중했다.
대표적인 것이 별첨된 '청귤 소스'다. 안 MD는 소비자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때 떠올린 것이 '청귤즙'이었다. 청귤은 도쿠시마의 특산물로 도쿠시마 사람들이 즐겨 먹는 과일이다. 안 MD는 "우리나라 식당에 가면 테이블 위에 소금, 간장, 고춧가루 같은 소스병들이 올려져있듯 도쿠시마 식당에는 청귤즙을 담은 예쁜 소스병이 올려져 있다"며 "도쿠시마 사람들이 이 청귤즙을 라멘에 뿌려먹는 것을 봤을 때는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직접 먹어보니 맛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안 MD는 청귤소스를 세븐일레븐 도쿠시마 라면의 '킥'으로 개발했다. 하지만 청귤소스를 만드는 것은 이번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였다. 청귤의 풍미가 느껴지되 라멘의 맛을 해치지 않아야 했고 생산 가격도 합리적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안 MD는 며 "청귤의 적정한 함량을 정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청귤소스에 이 상품의 성패가 걸려있다고 생각했다"며 "이렇게 만든 청귤소스는 라면 맛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간장과 기름의 느끼한 맛을 마지막에 상큼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소개했다.

도쿠시마식 라멘에 들어가는 날달걀도 달걀 블록의 형태로 상품화 했다. 한국에서 흔히 라면에 달걀을 풀어서 익히는 것과 달리 도쿠시마에서는 라멘에 날달걀을 더해 먹는다고 한다. 이 달걀 블록을 통해 날계란의 식감을 살리는 것도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안 MD는 "달걀이 풀어지면 국물이 뿌옇게 변하는데 이를 최소화 하기 위해 달걀 블록이 뜨거운 물에 들어가도 덩어리질 수 있도록 점성을 올렸다"며 "뜨거운 물을 부어도 깔끔한 국물 맛과 즐기면서도 달걀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도쿠시마 라면의 제품 패키지도 일본 느낌이 물씬 나도록 섬세하게 디자인 됐다. 제품 이름의 폰트부터 배경 디자인까지 안 MD가 꼼꼼하게 고른 것들이다. 특히 배경에 사용된 이미지는 우타가와 히로시게가 그린 우키요에(일본 에도 시대의 다색 목판화 양식) 작품인 나루토 해협의 소용돌이가 사용됐다. 나루토 해협은 도쿠시마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다. 또 패키지에 삽입된 QR코드를 통해 이스타항공에서 제공하는 도쿠시마 관광 정보도 확인해볼 수 있다.
이렇게 탄생한 도쿠시마 라면은 지난달 말 출시된 직후부터 세븐일레븐을 찾는 고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안 MD는 "도쿠시마 라면은 현재 세븐일레븐 전체 제품 중 판매 4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힙'해지는 세븐일레븐
이처럼 세븐일레븐은 최근 도쿠시마 라면처럼 외부와 협업한 단독 상품을 확대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세븐일레븐 단독 상품도 많지만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협업이라는 전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안 MD가 단독 협업 상품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 MD가 만든 기획한 대표 상품으로는 배우 이장우 씨가 운영하는 '우불식당'과 협업한 '세븐셀렉트 우불식당 즉석우동' 등이 있다. 이 제품은 지난해 12월 출시된 직후부터 라면 카테고리 1위를 차지했고 2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50만개를 넘어서며 세븐일레븐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세븐일레븐의 PB 상품인 '대파라면'과 오뚜기의 대표 라면 제품 '열라면'이 협업한 '대파열라면' 제품도 최근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렇게 최근 약 7개월 사이 세븐일레븐이 선보인 협업 라면 상품은 12종에 달한다. 트렌드에 맞춘 신제품이 쏟아지면서 세븐일레븐의 라면 카테고리 매출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안 MD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라면 카테고리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두자릿수 가량 늘었다"고 전했다.
특히 라면 신제품은 자연스럽게 고객들을 세븐일레븐으로 끌어들이는 요소가 되고 있다. 안 MD는 "매달 신제품이 나오다보니 홍보와 판촉 활동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세븐일레븐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좋아지는 것 같다"며 "과거에는 많은 고객들이 세븐일레븐을 가장 재미 없는 편의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세븐일레븐이 열심히 한다'는 평가를 내려줄 때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세븐일레븐은 새로운 협업 라면 제품도 지속 선보일 예정이다. 유명 외식업체와 협업한 라면 제품, 일본 현지 맛집과 걔약해 개발한 상품 등의 출시가 예정돼 있다. 안 MD는 "앞으로도 편의점 라면 시장의 판도를 바꿀 제품을 계속 만들고 싶다"며 "세븐일레븐이 '힙'한 편의점이라는 점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