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풍으로 울긋불긋 물들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가을 산들이 겨울 채비에 바쁘다.
가을 산의 아름다운 단풍 풍경을
놓친 아쉬움이 남아 있다면
도심에서 산을 즐길 수도 있다.
지난 20일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미술세계'에서는
산악 사진가 강레아 작가의
초대전 '산에들다'가 열렸다.
정요섭 미술세계 전무는
강레아 작가 초대전을 위해
삼고초려하는 마음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 강 작가의 작업을
본건 아니지만 그 작품이 좋아
제가 많이 설득했습니다.
작품이란 이런 것이다 싶어요.
몹시 지쳐있는 삶에서
쉼을 찾을 수 있는 작품이
강레아 작가의 사진입니다.
미술세계가 이제 37년 되었는데
사진 초대전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12월 2일까지 전시가 열리니
많은 분들이 오셔서 직접 보시면
마음의 쉼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이익태 작가가 한쪽 벽면에 걸린
강 작가의 작품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
"이 사진이 특히 마음에 들어
작은 사이즈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요.
폭포가 내려오는 안개가 자욱한 산은
사실적이면서 추상적인 느낌입니다.
모든 사물들은 형상을 갖고 있지만
그 형상이 해체되고 다시 드러나는
반복적인 작업에서 강 작가와 산이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흑백으로 표현된 사진은
산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내면의
아름다운 모습까지 볼 수 있어요."
관람객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강레아 작가를 만났다.
산과 친해진 계기를 물었다.
"산에서 태어나 19살에
다시 산에 들었어요.
그 품이 좋아 곁에 머물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특히 겨울 산을 좋아하는데
제가 살던 동네는 11월에
눈이 내리기 시작해 3월까지
녹지 않고 그대로 있어요.
다니는 길도 동네도
다른 색을 보지 못할 만큼
눈이 많이 내리는 동네였죠.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
그 감성들이 그대로 제 작업에
녹아 있는 듯합니다.
겨울에 북한산이나 설악산을 보면
수묵화를 펼친 듯한 풍경이 그려져요.
올겨울 기회가 되신다면
눈 쌓인 겨울 산을 꼭 한번 보세요."
"저는 산이라기보다
자연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바위만 하더라도 그 안에서
들숨 날숨을 쉬거든요.
자연은 살아있구나라고
제대로 느낀 적이 있는데
암벽을 배우는 초창기였어요
선등(맨 먼저 오르는)을 했는데
크럭스(crux) 암벽의 피치 중
가장 어려운 곳에서 계속 추락했죠.
남편과 함께 등반을 했었는데
남편이 내려오라고 하는 거예요.
포기하라고 하는 줄 알고
남편에게 화를 냈었는데
이런 말을 해 주었어요."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오르면
못 보던 것이 보일 수 있으니
잠시 쉬라고 조언을 해줬죠.
그렇게 바위에 한참 매달렸다가
바위가 아닌 뒤를 돌아봤는데
5월의 신록이 눈에 들어왔어요.
바람이 그 새싹들을 지나가는데
마치 물결처럼 일렁거렸어요.
그때 아 지구는 살아있구나
문든 그런 생각이 든거죠.
많은 시간 산을 오르내리면서
나에게 계속 말을 했었는데
내가 못 알아들었던 거예요.
자연의 언어지요."
"자연 안에는 정말
많은 표현들이 담겨 있어요.
우리가 그 자연의 표현들을
꾸밈없이 볼 수 있다는 자체가
자연의 본질이지 않나 생각해요.
제 작품은 내가 보고 내가 느낀
그대로를 보여주는 작업입니다."
"2007년 첫 전시 후
이번 초대전이 9번째 사진전인데
산을 알면 알수록 두려움이 커지듯
산악전문 사진작가인 저도
오르면 오를수록 더 두려워져요.
산이 좋아 사진이 좋아 시작했는데
어느새 15년이란 시간이 쌓였어요.
산이 좋아 히말라야를 오르려고
준비하고 또 준비했는데
막상 실제로 오르려고 하니
겁이 나는 그런 느낌이죠.
중간에 포기하거나 못 오르면
어떡하지 그런 느낌 같아요.
많은 사랑을 받을수록
제 배낭도 점점 더 무거워져요."
"사진작가 강레아는 산악인이다.
산을 20년간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온 그녀의 작업은
풍경 사진이라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삶의 시간이 담겨 있다.
그녀의 북한산과 설악산 사진들은
그 누구도 쉽게 오르지 못할
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산이 좋아 북한산이 보이는
집으로 이사 간 것도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산을
눈과 마음에 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녀는 산을 오르면서
생과 사의 경계를 관통하고
새로운 정상을 매번 오를 것이다."
성원선 평론가의 평가다.
이번 전시 제목은 '산(山)에들다'다.
'지금 이 이미지들은
누군가에겐 옛 연인일 수도
또 다른 이에겐
현재의 연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그들이 이 침묵의 공간에서
말 없는 교감을 나누게 되길 바란다.
히말라야에 눈이 쌓이듯
사진에는 찍은 이의
삶의 궤적이 담겨있다.
나는 산과 삶을 담고자 했다.'
작가노트 중 한 구절이다.
2019년이란 커다란 산에
내가 남긴 궤적은
과연 어떻게 그려져 있을까.
이번 주말 갤러리를 찾아
저 산과 직접 마주하면서
그 궤적을 그려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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