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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에 실어 편지 한장 띄우세요~

  • 2019.03.29(금) 10:36

따뜻한 봄 날씨 덕분에

이른 꽃소식이 전해진다.

살랑거리는 봄바람 따라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한가득 찾아든다.

덕수궁 돌담길엔

노랗게 핀 개나리들이

줄지어 봄볕을 즐기고 있다.

누군가 찾아올 것만 같은

그런 봄날이다.

봄바람을 타고 저 멀리

스위스 융프라우를 여행 중인

친구에게 엽서 한 장이 도착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우표를 사고

그 사람을 생각하며 쓴 엽서 한 장

정성스레 한자한자 눌러쓴 글씨엔

그 사람의 향기가 묻어난다.

실시간 문자나 메신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글씨에 묻어난

그 사람만의 필체 때문일 것이다.

이재득 씨는 일주일에 한번

훈민정필 부천교육원에서

글씨 교정을 받고 있다.

손글씨를 쓸 일이 없는 요즘

글씨 교정을 받는 이유가 뭘까.

"1년째 수업을 받고 있는데

제가 워낙 악필이라 어릴 때부터

잠재된 욕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업무야 모두 컴퓨터로 작업하니까

글자를 직접 쓸 일은 없지만

글씨체는 꼭 바꾸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에 계기가 있어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친구와 연애를 하면서도

한 번도 자필로 편지 써준 적이 없어요.

악필이라 두려움이 컸던 것 같아요.

늘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남았죠.

그런데 막상 글씨를 배우고 나니

손편지를 전할 여친은 없어졌네요.

그래도 잘 배워두면 언제가는

곱게 손편지를 써서 전달할

기회가 찾아오겠지요.

제 자신의 노력에 따라

글씨체가 하루하루 달라지면서

자신감도 많이 생겼습니다.

마음의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점점 아름다워지는 느낌입니다."

글씨는 그 글씨를 보는 이에게

갖출 수 있는 기본적인 예의라고

훈필정필 송병훈 대표는 말한다.

중국 북경 중앙미술대학원에서

미술사계 문학을 전공한 송 대표는

활발한 켈리그라피 활동으로

여러 광고에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바르게 쓰는 법을 연구하고

글씨 교정 특허까지 출원했다.

아름다운 글 한글을

바르게 쓰는 법에 대해

아무도 관심이 없자 직접 나섰다.

그렇다면 송 대표가 개발한

바르게 글씨 쓰는 법은 뭘까.

"글씨 쓰는 법을 연구하던 중

한글의 구조적 특징을 잡아냈어요.

모음 위치에 따라 자음 모양이 다르고

초성, 중성 혹은 초성, 중성, 종성 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위치하는 거죠.

한글의 구조적 특징을 더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교본으로 만들었죠."

훈민정필 신한희 원장은 글씨 교정에다

인문학적 감성을 더해 수업을 진행한다.

"계속 글씨만 교정하다 보면

많이 지루할 수 있잖아요.

좋은 책이나 글을 쓰면서

그 내용도 같이 나누고 글을 쓰다 보면

글의 의미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습관적으로 쓰지 않고

정성스레 연습하게 되는 장점이 있어요.

초등학생부터 70대 어르신까지

수업에 참여하는 연령대가 다양해요.

가령 사업하는 분들은 단 하나

계약서 이름 석 자를 쓰기 위해

글씨를 배우는 분도 계세요.

기술적인 교정법을 알려드리지만

개인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악필은 형태와 균형이

모두 좋지 않다고 볼 수 있어요.

글씨는 보통 그 사람을 나타냅니다.

물론 절대적이진 않지만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산만하거나

불안정하면 글씨가 날리거나 흔들려요.

우리는 이미 형태와 균형에 맞춰

글씨 쓰는 법을 배우긴 했지만

이를 잘 따르지 않다 보니

악필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기술적인 부분을 반복해

습득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어요.

일반 사회생활에선 글씨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학교에선 조금 달라요.

객관식에서 서술형으로

시험 방식이 바뀌는 추세여서

글씨에 대한 중요성이

조금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글씨가 채점 항목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글자가 잘 정돈되면

내용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르신들도 많이 오시는데

그분들은 문해교육을 같이 합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에게

글씨를 쓴다는 건 두려움이거든요.

자존감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아요.

가령 은행에서 서류를 작성할 때

잘 쓰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문해교육을 받으시고 나면

자신감은 물론 대필도 해준다고 해요.

그땐 뿌듯한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죠.

사실 저도 그분들을 가르치기 전엔

힘들어하는 부분을 잘 몰랐어요.

글자를 제대로 못 쓰는 분들에겐

아픔이고 자존감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된 거죠."

"디지털 시대

세상은 더 편리해지고 있지만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글씨는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프린트한 글씨와 손글씨는

느낌부터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손글씨가 주는 감성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잖아요.

바로 그 사람의 향기가

그 글씨에 묻어나기 때문이죠.

먼 미래에도 손 글씨가

사라지지 않을 이유이기도 합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봄날

택배 대신 편지 한 통을 받고

바스락거리는 편지지를 꺼내

그 글씨로 그 사람을 만나면서

눈으로 또 가슴으로 읽는 편지

그 한 장의 기쁨을 위해

꽃향기와 함께 봄바람에 실어

손편지 한 장 선물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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