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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길이란

  • 2020.01.23(목) 09:43

[페북사람들] 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영웅과 전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라는 뜻을 가진

고대 중국 속담이 있다.

무림강호들의 한판 승부가

금방이라도 펼쳐질듯한 고요함

무협 영화 '와호장룡'에서

주윤발과 장쯔이가 만나

공중부양 대결을 벌였던 장소가

바로 안후이(安徽省) 휘주(徽州)다.

건축사이자 동양미래대 교수인

홍기택 교수는 이 지역을

40번 넘게 찾았을 정도로

휘주 건축의 매력에 빠져 있다.

"휘주는 안후이성 남부와

근처 지앙시성 저지앙성 일대를

합한 문화벨트를 말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황산의

주변 아래쪽 지역입니다.

옛 명칭은 환남으로도 불렸죠.

환은 안후이성의 별칭으로

안후이 남부를 가리킵니다.

송원명청 시대 휘주로 불렀는데

이 지역의 중심지인 이현은

진나라 이후 무려 2200년동안

지금까지도 이름이 바뀌지 않은

보기드문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먹을 많이 안쓰고 붓놀림이 간결했던

신안화파(新安画派)로 명성을 떨친

휘주 건축의 씨족 민가지역입니다."

“휘주의 오래된 마을을 걷고 있노라면

무형무색의 깊숙한 골목과

높은 담장에서 허공을 느낄 수 있어요.

홍춘(宏村) 마을에 있는

인공호수인 반달모양 월소(月沼)는

동양적인 감성을 물로 표현하면서

무표정한 휘주건축을 영롱하게 담아내죠.

마을 한집한집 구석구석마다

물을 공급하고 이곳에 다시 모아

마을 앞 남호로 빠져나갑니다."

"휘주건축 외부의 모습은

흰벽과 검은기와뿐 장식을 배제해요.

그 담장을 마두장이라고 합니다.

말머리를 올려 놓은 형상이죠.

휘주지방은 대대로 척박한 땅이죠.

산악지대에 위치해 산이 많고

경작할 토지가 적은 지역이었죠.

위진남북조 시기 중원의 전란을 피해

많은 인구가 이 지역으로 유입되면서

생존 환경이 더욱 열악해졌죠.

휘주인들은 생존을 위해 외지로 나가

상업활동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어요.

농사짓는 사람이 셋이라면

장사하는 이는 일곱이라 할 정도였죠.

남자들은 청년이 되면 대부분

장사를 위해 객지로 떠났어요.

휘주에 거상이 많은 이유입니다."

"그러다 보니 마을에는

아녀자와 아이들만 남아 있어

담장이 높고 창이 없었어요.

그래서 정절의 고향으로도 꼽히죠.

담장 위엔 말머리 기와를 올려놓는데

먼 훗날 가장이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을 기억하기 위한 표식이자

자식들이 당당하고 반듯하게

살아가라는 상징물이기도 해요.

건축적으로는 합벽 형태여서

이웃과 방화벽 역할도 합니다."

"이들은 장사를 통해 번 돈으로

토목공사로 마을을 가꾸게 됩니다.

풍수지리도 중요하게 생각했죠.

특히 교육에 헌신적으로 투자하면서

휘주 씨족마을은 명청대 중국 역사의

커다란 한 축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다 태평천국 민란이 일어나고

돈으로 사들인 패권과 정경유착으로

휘상도 청대말 빛을 잃어가면서

몰락의 길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죠."

"여행하며 만난 마을 사람에게

휘주의 문화에 대해 물었더니

자랑이 끝없이 이어졌어요.

한편으론 부러운 생각이 들었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해

어느 날 외국인이 묻는다면

얼마큼 자랑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들었어요."

"서울은 600년 역사를 갖고 있죠.

그 역사를 찾아서 이야기가 있는

도시로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해요.

마을과 마을을 이으려면  

반드시 길이 있어야 하죠.

우리 머릿속에 있는 길이란

대부분 건축법상 4m 이상

차가 다니는 도로를 생각합니다.

차를 타고 스쳐지나는 길이 아닌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을 걸으면서

주변을 주의 깊게 둘러보면

내 머릿속에 그 길에 대한

새로운 기억이 만들어집니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만 해도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수많은 골목길이 있었어요.

어머니는 그 길에서 앞집옆집

사람들을 만나 삼삼오오 얘기하고

어느 집에서 밥 타는 냄새가 날 즈음

비로소 집으로 돌아오곤 하셨죠.

아침엔 청소하면서 인사하고

외출할 땐 오가며 만나다 보니

이웃사촌이란 말이 저절로 생겼어요."

홍 교수는 말한다.

동네와 동네가 끊기지 않고

연결되면서 상생하려면

지역적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소규모 노드점을 찾고 찾아

꾸준히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올 설에는 자동차로 쌩쌩

스쳐지나는 도로 대신에

이동네 저동네 한 번씩 걸으며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려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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