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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보영의 페북사람들]행복이요? 기타에 노래면 충분해요

  • 2020.10.30(금) 12:25

매년 10월 말이 되면

어김없이 시대를 뛰어넘어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통기타 좀 친다고 하면

떠나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감성에 젖어 흥얼거렸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망원동 한 연습실

가수 '아일랜드기타'의

감성 젖은 목소리가

통기타와 첼로 연주에 맞춰

가을밤을 물들이고 있다.

"작년 정규앨범 1집이 나왔는데

코로나로 공연을 못하고 있어요.

공연장에서 더 많은 팬들을

빨리 만나보고 싶습니다.

타이틀곡은 '손님'입니다.

물결처럼 잔잔히 흐르는 피아노

물제비를 하는 듯한 베이스

그 위를 스치는 드럼과 첼로

가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재즈스러움이 묻어나는 곡이죠.

평범한 우리 부모님들의

자식을 향한 그리움과 기다림

부모에게 있어 자식은

평생 손님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만든 노래죠.

'아일랜드기타'는 대학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했다.

노래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

"백령도 위쪽 대청도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자랐어요.

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잖아요.

육지까지 나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중학교 때 군대 간 오빠가

남겨둔 통기타를 보게 됐죠.

기타를 치기 시작하면서

코드를 공부하게 되고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이

갈수록 많아졌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는데

내가 치는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어요.

때로는 바위 위에 앉아

출렁이는 파도 소리와 함께

어떤 날은 높은 곳에 올라가

끝없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그렇게 노래를 부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삶에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고교시절 고전소설을 좋아했어요.

특히 헤르만 헤세가 쓴

'지와 사랑'이란 소설을

너무 감동 있게 읽었죠.

독일어로 섬세하게 써내려

학자와 예술가의 삶을 보며

독문학에 빠지기 시작했죠.

특히 고등학교 선생님이

이 과정에 큰 영향을 줬는데

일본어 수업시간인데도

독일이야기를 자주 해주셨죠.

또 펄벅의 장편소설인

대지를 읽고 읽으면서

모래바람 부는 중국을 그렸죠.

지금 생각해보면 책을 통해

상상하며 감성을 키웠던 것 같아요."

"18년간 섬에서 생활하다가

서울로 나와서 살다 보니

경험하지 못한 게 대부분이었죠.

새로운 문화를 접하다 보니

뒤늦게 제 안의 세계를

조금씩 발견했던 것 같아요.

20명 남짓한 초등학교 친구들과

보낸 시절이 대부분이던 만큼

서울이 전부 새롭게 다가온 건

어쩌면 당연했던 것 같아요."

"음악이 항상 삶의 한 축이었지만

직업이 될 거란 생각은 못 했어요.

대학교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하는데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희열을

강하고 분명하게 느꼈죠.

그러면서 내가 할 일이 이거구나

그렇게 결심했던 것 같아요.

무대에서 행복감이 너무 컸어요.

싱어송라이터는 제 생각과 가치관을

글과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람인데

저에게 맞는 옷을 찾았던 거지요.

제 마음속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음악으로 만들어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늦었지만 찾았던 것 같아요."

"오랜 기간 언더그라운드에서

포크가수로서 활동했어요.

당시만 해도 기타 치며 노래하는

여자 가수는 많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불러주는 데가 많아서

경제적으로 어렵진 않았는데

제 노래를 부를 순 없었죠.

10년간 노래한 곳도 있었는데

어느 날 공허함이 찾아왔어요.

노래를 하는 건 좋았지만

늘 남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한계를 느낀 거죠.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아닌

손님들이 원하는 신청곡을

주로 부를 수밖에 없다 보니

고민이 찾아왔던 것 같아요.

경제적으론 여유가 생겼지만

타성에 젖은 노래는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거죠."

"노래를 부를 땐

제 감성을 담았다고 생각했는데

녹음한 노래를 들어보면

낯선 저를 마주하게 되면서

정체성이 흔들리기 전에

제 길을 가야겠다 생각했어요.

혼자 흥얼흥얼하던 노래들로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줬는데

너만의 느낌이 있어서

좋다는 조언을 들었어요.

기타 치면서 노래만 하다가

작곡과 작사, 편곡을 배워가며

2009년 아일랜드기타란 이름으로

첫 싱글 음반을 발매했어요.

'아일랜드 기타(Island guitar)'는

섬에서 기타 하나 들고 나왔다는

단순한 뜻이긴 한데

학창시절 대부분을 섬에서 보낸

제 정서와 지향하는 음악 색깔을

잘 표현하는 이름입니다."

"그다음 미니 앨범이

2014년 'Natural'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무려 5년 만에

정규앨범 1집을 내게 됐는데

'제 음악'이라고 드릴 수 있는

대표 앨범으로 꼽고 싶습니다.

물론 그전 앨범에도

많은 노력과 애정이 들어갔지만

습작 수준의 느낌이었던 터라

제 음악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요.

반면 이번 앨범에 실린 음악들은

그동안 제가 추구하고 싶었던

음악에 제 생각을 가장 잘 입혔죠."

"시간이 지나면서

음악이 좀 더 심플해지고

정제되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음반을 낼 때마다

최선을 다해 만들었지만

막상 지금 들어보면

정제되지 못한 부분이 많거든요.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제 생각을 노래를 통해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한

제 음악을 보여드리는 거죠.

다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섬에서 자라며

스며든 감성들인 것 같아요.

이 감성들은 어떤 음악을 하든

그대로인 것 같아요.

모르는 것을 알아가며

순진함을 잃어버린다고 하는데

순수함은 시간이 지나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자기 색깔을 찾아가려면

욕심이 좀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몇 십 번이나 다시 녹음하며

저만의 색을 입히려고 했는데

20년 가까운 노래를 부르면서도

몰랐던 것들을 찾기도 하고

또 새롭게 배우기도 하면서

내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더 구체적으로 깨닫게 되고

그걸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도 어느 정도 가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욕심이 생긴 거죠.

음악을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해요.

그러면서 새롭게 기준치가 생기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이번 앨범입니다."

"솔직하게 노래하고 싶어요.

기교보다는 정직하게

또 거대하게 덮치는 파도보단

고요한 호숫가의 잔물결같이

미묘한 떨림을 전하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나무에 핀 새싹들이 자라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다가

땅으로 떨어진 후에야

더 성장한 봄을 기다린다.

버려야 생기는 공간

그 속에 행복을 채워 넣는

10월의 마지막 밤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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