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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의욕 상실' 기아를 어떻게 바꿨나?

  • 2025.12.11(목) 06:50

'도전과 분발 기아 80년' 사사 읽어보니
2번의 부도와 은행관리 거쳐 글로벌 완성차 성장
'기술' 김철호 '품질' 정몽구 '디자인' 정의선

"기아의 위기는 적자 때문이 아니라 회사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데 있다."

2006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당시 기아 사장)이 사장 직속의 비전추진팀에게 당부한 말이다. 2005년 기아 사장에 선임된 그가 일 년간 기아 내부 문제점을 진단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비전 및 중장기 전략 수립 프로젝트' 보고서는 회사에 대해 △한국시장에서 기반상실 △해외 시장에서 차별성 상실 △조직문화는 의욕 상실 상태라고 진단했다. 

정 회장은 "우리는 다르다는 의식이 저절로 생겨나도록 하는 게 가장 본질적인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했다"며 "예컨대 아무리 형제회사라 해도 '기아와 현대차는 다르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니겠냐? 기아의 디자인 경영도 그런 차원의 고민 끝에 나왔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 사진=회사 제공

에누리 없는 사사

최근 기아가 펴낸 '도전과 분발 / 기아 80년' 사사를 보면 1952년 최초의 국산 자전거 '3000리호'를 시작으로 오토바이, 삼륜차를 거쳐 첫 승용차 '브리사'를 선보였던 기아의 도전의 역사와 두 번의 부도 위기를 거치며 글로벌 완성차로 성장한 분발의 역사가 담겨있다. 

기아 사사는 1994년 50주년 사사 이후 30년 만이고, 1998년 현대차에 기아가 인수된 이후 첫 사사이다. 200여명의 전현직 직원 인터뷰를 통해 완성된 사사는 있는 그대로의 기아의 역사가 쉽게 쓰였다는 게 특징이다. 기아 창업주(김철호)의 역사를 줄이거나 지우지 않았고, 분식회계와 두 번의 부도 위기 등 실패의 순간도 빠짐없이 담았다.

사사에 승자의 기록만 담지 않은 것은 정 회장의 의지다. '기아 80년'을 쓴 이장규 현대차 고문은 지난 5일 열린 '기아 80주년 행사'에서 "정의선 회장이 자랑스럽고 성공한 역사만 아니라, 시련과 실패의 뼈아픈 역사도 에누리 없이 담아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전했다.

이 행사장에서 정 회장은 김철호 창업자에 대해 "자전거를 만들면서 비행기 꿈꿨다"며 "존경하는 분"이라고 평했다. 김 창업자는 일본에서 볼트와 너트를 팔아 번 돈으로 1944년 기아의 모태인 경성정공을 설립했다. 1952년 그는 "자전거가 완성되면 즉시 자동차 제작에 착수하고, 자동차가 완성되면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큰 그림을 그렸다. 

1952년 국산 최초 자전거 3000리호 / 사진 = 안준형 기자

기아가 만든 차가 굴러는 갈까요?

창업주의 계획대로 기아는 1952년 국산 최초 자전거 3000리호, 1962년 국산 최초 삼륜차 기아마스타 K-360, 1974년 승용차 브리사 등을 선보였다. 1981년 정부의 강제적 자동차 통폐합 정책으로 기아가 승용차를 단종하는 위기에선 봉고를 출시하며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고, 일본 마쓰다가 개발하고 기아가 생산하고 포드가 판매하는 월드카 프로젝트로 만든 프라이드가 자동차 통폐합 정책을 허물었다. 

기아가 외국 완성차의 도움이 없이 독자 모델(세피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마쓰다 측 도움을 요구하자 마쓰다는 '기아가 만든 차가 굴러는 갈까요?'라며 비아냥거렸다. 당시 기아 연구소는 이 말을 대문짝만하게 써서 연구소 곳곳에 붙였다. 

위기도 찾아왔다. 1960년 자전거 사업 적자로 첫 부도를 내면서 13년간 산업은행 관리를 받았고, 1998년 수천억대원 적자를 숨긴 분식회계도 적발됐다. 

1994년 기아포드할부금융 이강원 사장은 당시 위기 원인에 대해 "사장단 회의를 하면서 허심탄회한 토의가 오갑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줄곧 기술개발과 제품에 관한 이야기만 주고받는 겁니다. 대부분 계열사들이 적자인 상황에서 판매나 마케팅 논의는 거의 없는 거예요. 재무적인 말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아 회장이 엔지니어 출신이고 기술의 기아라고 하더니 이런 회사 분위기를 두고 하는 말이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1:10:100 원칙과 디자인 경영

기아는 현대차에 인수된 직후인 2000년 법정관리에서 졸업했다. 한 기업의 정상화를 떠나 1997년 외환위기 탈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재무 부실을 털어낸 기아는 정몽구 명예회장의 품질경영이 이식됐다. 이계안 전 현대차 사장은 "정 명예회장은 1:10:100 원칙을 강조했다. 기획단계에서 1의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생산단계에선 10, 판매 이후엔 100의 비용이 든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현대차에 인수된 이후 안정됐던 기아는 옵티마, 로체 등 신차가 실패하면서 다시 위기에 직면했다. 2005년 기아 사장에 선임된 정의선 회장은 "우선 회사 분위가 너무 침체돼 있었다"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성원 사기를 올리고 자신감과 일체감을 되찾는 게 급선무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2006년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한 정 회장은 "기아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분위기를 일신시키기 위해선 단순한 개선으론 불가능하다 판단했다. 통째로 달라져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디자인 경영이었다. 자동차 외관을 멋있게 만들자는 게 아니라 생각부터 새롭게 디자인하자는 의도였다"고 전했다. 

디자인 경영이 반영된 K시리즈는 새로운 판매기록을 세우고 회사 정체성을 확립했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은 2013년 6.7%에서 2019년 3% 밑으로 급락했다. 당시 위기에 대해 김승준 재경본부장은 "2011~2012년 금융위기와 토요타 리콜,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경쟁사들이 스스로 무너졌고 저희는 반사이익을 크게 누렸다. 혁신의 성과도 분명히 있었지만 어부지리도 컸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 성과를 온전히 우리의 실력이라고 착각했다"고 진단했다. 

기아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배정된 판매 목표에 급급한 '밀어내기' 전략에서 팔리는 차를 생산하는 '끌어내기' 전략으로 바꾼다. 고수익 위주 차를 제값 받고 팔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2024년 매출 100조원을 돌파하고 영업이익률 11.8%를 달성했다.

몸집 작고  민첩한 기아부터 전동화

기아는 자동차에서 모빌리티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2020년 사명에서 '자동차'도 빼고 기아로 단순화했다. EV6를 시작으로 다양한 전기차 라인업도 공개했다.

이 변화의 중심엔 정 회장이 있다. 박한우 기아 사장은 2018년 정의선 회장의 경영 메시지를 '2025년 이후에도 내연기관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글로벌 최고가 될 수 없다. 전동화 전환은 몸집이 작고 민첩한 기아가 앞장서서 시작했으면 좋겠다. 실패해도 좋다'로 기억했다. 그후 7년 지난 2025년 기아는 전기차 시장에서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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