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비행에서 은근히 기다려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기내식이 나오는 시간입니다. 지상에서라면 평범하게 느껴질 메뉴도 하늘 위에서는 이상하게 더 특별하게 다가오곤 합니다.
이 특별함은 단순히 여행 중 식사하는 기분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불을 쓸 수 없는 항공기 안에서 수백 명분의 음식을 안전하고 균일하게 데워내야 하기에 기내식 뒤에는 생각보다 정교한 항공기술이 숨어 있습니다. 기내식이 요식업을 넘어 항공기 시스템 기술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죠. 그럼 항공기에는 더 맛있는 기내식을 위해 어떠한 기술들이 적용될까요?

'불' 아닌 '기술'로 데워주는 기내식
항공기 안에서는 엄격하게 '불'의 사용이 금지됩니다. 불 자체도 위험하지만 비행 중인 항공기에서는 불이 난 뒤에 대응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죠. 항공기 내부에서 음식을 조리 할 때도 미찬가지 입니다.
언제든지 크게 흔들릴 수 있는 공간에서 불을 사용할 경우 다른 곳으로 옮겨 붙을 가능성이 높고 밀폐된 공간인 만큼 조리 중 발생하는 연기, 냄새 등을 처리하는 것도 매우 어렵습니다. 때문에 장기간 운행을 위한 음식을 조리하더라도 불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따라서 기내식은 외부에서 조리가 완료된 음식을 냉장 혹은 냉동 보관 해 기내에 탑재, 식사 전 재가열 해 내놓는 방식이 굳혀져 있습니다. 비즈니스 클래스에 타 '고급 음식'을 먹더라도 접시에 예쁘게 담아냈을 뿐 맛을 위해 항공기에서는 조리하지 않는게 일반적이죠. 편의점의 냉동 만두를 집 전자레인지를 통해 재가열해 먹는 것과 비슷합니다.
항공기에서 음식을 재가열 하는 건 꽤나 까다롭습니다. 항공기가 확보한 한정된 전력을 사용해야 하고 비행 중 발생하는 진동에서도 안정적으로 음식을 고정한 채 재가열해야 하죠. 전자레인지처럼 전기만 공급받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효율적인 전력 배분, 흔들림 속에서 안전함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전성 등이 담보돼야 하는 겁니다. 게다가 수백명의 고객에게 똑같은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균일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요.
이러한 장비들을 기내에 싣기 위해서는 철저한 항공기 인증 체계를 따라야 합니다. 무게, 고정 방식, 전원 연결, 접지 방식 등이 표준화 돼 있죠. 항공기 탑재 전에는 화재, 과열, 전기계통 등 안정성 검증의 절차도 거쳐야 하고요. 가정용 주방기기를 단순히 객실에 가져다 놓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거죠.
이처럼 복잡하게 설계된 '고도의 조리장비'는 단순 음식 가열을 넘어 얼마나 효율적으로 고객에게 제공될 수 있는가 여부까지도 고려해야합니다. 이에 관련된 장비들을 '갤리 장비'라고 통합해 부르기도 하죠. 특히 '갤리 장비'는 오븐, 냉장, 물, 전기, 카트, 승무원 동선, 화재 안전, 무게 중심을 맞추는 통합 설계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기내식을 고객에게 내놓기 위한 준비과정을 까다롭다고 볼 수 있는 이유죠.
더 맛있어지게 하기 위한 '엔지니어'의 고민들
기내식은 비행 중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함이 담겨 있기 때문에 항공사들도 많은 고민을 합니다. 항공사들이 유명 스타 셰프 등과 협업해 메뉴를 개발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죠.
하지만 기내식을 더욱 맛있게 하기 위해선 엔지니어들의 고민도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재가열 되는 기내식의 특성상 육지에서 만들었던 맛을 그대로 복원해서 제공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이에 관련 엔지니어들은 맛이 망가지는 조건을 얼마나 줄이느냐를 고민합니다. 셰프가 레시피를 만들면 엔지니어들은 이 음식이 냉장, 운송, 재가열, 고도환경 등 다양한 환경 변화가 이뤄진 이후에도 맛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설계하게 되는 거죠.
먼저 높은 고도에서 맛이 둔해지는 고민거리가 있습니다. 항공기가 높은 고도에 올라와 여압장치가 가동된다고 하더라도 기압과 습도는 지상보다 낮죠. 기압과 습도가 낮으면 인간은 짠맛과 단맛을 느끼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기내식은 고도 조건에 맞춰 짠맛, 단맛, 신맛, 감칠맛, 향의 균형을 완전히 새롭게 설계해야 합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소금과 설탕의 맛은 고도가 높으면 맛이 덜 강하게 느껴지게 된다"라며 "이 때문에 셰프에게 높은 고도에서도 감칠맛, 향 지속성 등이 높은 재료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고민하는 건 재가열에 관한 기술입니다. 단순히 음식을 익히는 것을 넘어, 식재료 본연의 맛과 식감을 살려내야 합니다. 육류는 재가열 시 식감이 퍽퍽해지기 쉽고 생선은 비린내가 강해지며, 밥이나 파스타는 겉면이 마르거나 떡지는 게 대표적인 예 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엔지니어들은 뜨거운 공기를 순환시켜 데우는 컨벡션 오븐의 공기 흐름이나 스팀 보조 기능, 온도 균일성, 최적의 예열 시간 등을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합니다.
음식의 수분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중요합니다. 기내식이 맛이 없어지는 것 중 하나가 수분이 빠지면서 발생합니다. 이 때문에 수분을 음식에 남아있도록 포장재, 뚜껑, 알루미늄 트레이, 소스의 점도, 음식 배치 등도 최적의 효율로 계산해야 한다고 해요. 예컨대 육류는 그냥 덩어리로 넣기 보다는 소스에 잠기도록 하거나, 밥 위에는 수분 많은 토핑을 얹거나 하는 방식이죠.
무엇보다 가장 까다로운 조건은 이 모든 맛과 식감을 유지하면서도 식중독 같은 안전사고를 완벽히 예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내식은 대량 조리와 냉각, 운송, 보관, 재가열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온도 관리가 조금만 어긋나도 식품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가열하면 안전성은 높아지지만 반대로 맛과 식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있는 거죠. 이 상충하는 조건 속에서 메뉴별 최적의 갤리 장비 운영 환경을 찾아내야 한다는 과제를 엔지니어들은 늘 안고 있는 겁니다.
이른 무더위에 곧 여름 휴가철이 다가옵니다. 휴가철 장거리 비행 계획이 있으시다면, 비행 중 먹는 기내식에 요리사, 항공사, 엔지니어 등 다양한 사람들의 고민이 담겼다는 점을 떠올리면서 즐기시면 어떨까요.
[테크따라잡기]는 한 주간 산업계 뉴스 속에 숨어 있는 기술을 쉽게 풀어드리는 비즈워치 산업부의 주말 뉴스 코너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 빠르게 잡아 드리겠습니다. [편집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