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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美 상장' 검토 뒤에 숨은 절박한 계산

  • 2025.12.11(목) 15:38

HBM 독주에도 못 깨는 '저평가의 벽'
초대형 투자 시대…자본조달 방식이 경쟁력
ADR 기회지만…시장·규제 리스크 과제도

SK하이닉스가 자사주를 활용한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발행을 검토하면서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제약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AI 메모리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임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과 향후 수백조원 규모의 투자 재원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미국행 카드' 떠밀린 선택지?

최근 SK하이닉스는 조회공시를 통해 "자기주식을 활용한 미국 증시 상장 등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아직 확정된 사항은 없고 한 달 내 다시 공시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이 주목하는 자사주 2.4%(1740만주)는 기존 주주 지분을 희석하지 않고 미국에 상장할 수 있는 ADR의 기초자산이다. 'ADR'은 해외 기업 주식을 현지 예탁기관이 보관하고 미국 증시에서 거래 가능한 증서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상장 직후 접근성과 인지도가 빠르게 높아진다.

직접 상장보다 절차가 간편하면서도 미국 거래소와 장외시장에서 주식처럼 거래돼 해외 투자자와의 접점이 넓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대만 TSMC, 네덜란드 ASML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도 미국 시장서 ADR 형태로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핵심은 저평가 해소다. SK하이닉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1배 수준으로 미국 마이크론(약 29배)에 크게 뒤처진다. AI 서버 수요가 폭발하며 HBM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낮은 값에 거래되고 있다.

회사 내부에서도 "한국 시장만으로는 제값을 받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상장이 이뤄질 경우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SOX) 편입 가능성이 열리고 패시브 자금 유입 효과도 기대된다.

2025년 2분기 글로벌 HBM 점유율./그래픽=비즈워치

다만 회의론도 뒤따른다. SK하이닉스가 보유한 자사주 규모가 크지 않아 ADR 발행 후에도 미국 시장서 충분한 거래량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업계 일각선 "TSMC처럼 일정 규모 이상의 물량이 상장돼야 미국 투자자들의 관심을 안정적으로 끌 수 있는데, SK하이닉스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미국 상장에 따른 부담도 가볍지 않다. 주가 하락 시 집단소송에 휘말릴 위험, 소송 과정에서 내부 문서와 기술자료까지 제출해야 하는 증거개시제도 적용 가능성, 회계·법무·공시 비용 증가 등이 모두 리스크로 꼽힌다.  

특히 초격차 기술을 앞세워 경쟁하는 기업일수록 기술 노출 위험은 치명적이다. 전문가들이 "ADR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미국식 규제 리스크를 감당할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늦으면 끝"…규제에 묶인 기업

그럼에도 SK하이닉스가 ADR을 검토하는 배경에는 결국 '투자 속도'가 주효하다. 회사는 용인 클러스터에 600조원, 청주에 42조원 투자를 예고하고 있다. 곽노정 대표가 "장비 세팅에만 3년이 걸린다. 자금을 벌어 투자하면 늦는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적기에 생산능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잃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국내 제도 역시 기업의 자본 유연성을 제한해왔다. 지주사의 손자회사 지분 100% 규정, 금산분리, 중복상장 제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 등 첨단산업의 투자 속도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져왔다. 정부가 지분 규제 완화와 일반지주사의 금융리스업 보유 허용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글로벌 경쟁은 이미 다른 단계에 진입했다. 구글·아마존·메타·MS 등은 내년에만 764조원을 AI 및 데이터센터에 투입할 전망이다. 반도체 팹 한 기 건설 비용도 100조원을 넘는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제도와 자본시장 구조로는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기 어렵다"며 "SK하이닉스의 이번 검토는 단순 ADR 상장을 넘어 한국 기업이 초격차 기술 경쟁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자본을 조달하고 제도 환경을 재정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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