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정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가 인공지능(AI) 시대를 겨냥해 새로운 도약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단순한 메모리 공급자를 넘어 고객과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풀스택 AI 메모리 크리에이터(Full Stack AI Memory Creator)'로 진화하겠다는 선언이다.
"공급자에서 창조자로"
곽 CEO는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SK AI 서밋 2025' 기조연설에서 "지금까지 SK하이닉스는 고객이 원하는 좋은 제품을 최적의 시점에 공급하며 선도적 입지를 다졌지만 AI 시대엔 그 역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고객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생태계와 상호작용하며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크리에이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설 서두에서 "AI의 싹을 틔우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처럼 SK하이닉스는 메모리를 기반으로 AI 생태계의 뿌리를 키워가고 있다"며 "영상 속 아이는 실제 배우가 아니라 AI가 만든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AI의 가능성은 이미 상상을 넘어섰다"고 강조했다.
곽 CEO는 메모리 성능 발전이 AI 프로세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메모리 월(Memory Wall)' 현상을 언급, "AI 기술 발전의 병목, 즉 메모리 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급격히 늘어난 데이터 이동을 뒷받침하려면 하드웨어 기술이 함께 진화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AI 생태계의 경쟁은 이제 혼자만의 역량이 아닌 고객과 파트너가 만들어내는 협업의 힘에서 결정된다"고 덧붙였다.
곽 CEO는 글로벌 주요 파트너사와의 협업 현황도 공개했다. 그는 "엔비디아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및 AI 제조 혁신 관련 기술 협력을 진행하며 '옴니버스 디지털 트윈'의 공동 활용 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오픈AI와는 고성능 메모리 적용을 위한 장기적 파트너십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TSMC와는 차세대 HBM 기술 협력, 샌디스크와는 차세대 낸드 기술(HBF)의 국제표준화 논의, 네이버클라우드와는 데이터센터 효율화를 위한 차세대 메모리·소프트웨어 최적화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AI 시대의 경쟁은 혼자만의 역량으로는 불가능하다"며 "고객과 파트너가 함께 시너지를 내는 기업이 결국 시장을 선도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차세대 메모리 '3종 세트' 공개
곽 CEO는 이날 SK하이닉스의 차세대 메모리 기술 로드맵도 공개했다. 내년부터 6세대 HBM4 16단, 7세대 HBM4E를 순차적으로 선보이고 2029년부터는 HBM5와 HBM5E 시대를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이 로드맵의 핵심 축은 맞춤형 HBM로의 진화"라며 "커스텀 HBM은 고객의 요청을 반영해 GPU(그래픽처리장치)나 ASIC(주문형 반도체)에 있던 일부 기능을 HBM 베이스 다이로 옮겨 연산 성능을 극대화하고 GPU와 HBM 간 통신에 필요한 전력을 줄여 전체 TCO(총소유비용) 효율을 높이는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커스텀 HBM 외에도 AI 특화 D램(AI-D) 및 낸드(AI-N)를 결합한 새로운 '뉴 메모리 솔루션'을 구상 중이다. 곽 CEO는 "기존 메모리 솔루션이 컴퓨팅 중심으로 통합됐다면 앞으로의 뉴 메모리 솔루션은 메모리 역할을 다변화해 AI 추론의 병목을 구조적으로 해소할 것"이라며 "고객이 컴퓨팅 자원을 한층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AI-D는 저전력·고성능 D램을 통한 비용 절감, 초고용량 메모리로 병목을 해소하는 '브레이크스루(Breakthrough)' 솔루션, 로보틱스·모빌리티·산업 자동화 등 신응용 영역으로 확장한 제품을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다.
AI-N은 초고성능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를 축으로 세분화된다. △AI-N P는 작은 폼팩터로 입출력 속도를 크게 높인 초고성능 SSD △AI-N B는 HBM 용량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낸드-HBM 결합형 △AI-N D는 초고용량 SSD로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와 경쟁하는 제품군이다.
곽 CEO는 "AI 시대에는 메모리 자체가 연산의 일부로 작동하는 구조적 변화가 불가피하다"며 "SK하이닉스는 그 전환의 중심에서 고객과 함께 새로운 생태계를 설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