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는 흔히 '전력 먹는 하마'로 불립니다. 초대형 모델을 학습시키려면 수만 가구가 쓰는 전기를 한꺼번에 소비하고, 데이터센터 하나가 중소도시 전력 수요에 맞먹는다는 분석도 나오는데요. AI가 확산하고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전력망 불안과 탄소 배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문제의 해법 역시 AI에서 찾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27일부터 사흘간 부산 벡스코서 '기후산업국제박람회(WCE 2025)'는 바로 이 지점을 주목했는데요. 'Energy for AI & AI for Energy'를 주제로, AI가 전력 수요 구조를 뒤흔드는 동시에 효율화와 수요 관리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죠.
에너지 문제 해법 한 자리에
기후산업국제박람회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에너지·기후·환경 전시회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대한상공회의소가 국제에너지기구(IEA), 세계은행(WB)과 함께 여는 행사로 올해가 세 번째입니다. 전 세계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첨단 기술과 혁신적인 정책 해법을 공유하는 자리죠.
올해는 현대차·포스코·HD현대·두산·LS 등 주요 기업들이 대거 참가해 최신 기술을 선보였는데요. 먼저 현대차는 이번 전시회에서 '전기차 자동 충전로봇'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는 팔 모양의 충전 로봇인데요. 로봇 팔이 전기차의 충전구를 인식하고 충전 커넥터의 삽입부터 탈거까지 모든 작업을 사람 대신 수행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덕분에 충전 편의성 개선은 물론 고전류에 따른 안전 문제도 해결할 수 있죠. 향후 자율주행과 연계해 전기차의 주차부터 충전 종료 후 이동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해요.
포스코홀딩스, 포스코, 포스코인터내셔널의 통합 전시관을 운영한 포스코그룹의 경우 탈탄소 전략을 전시관 전면에 배치했습니다. 전시관은 △탈탄소 비전 △수소환원제철 △브릿지 기술 △인텔리전트 팩토리 △에너지전환 등 5개존(zone)으로 구성했는데요. 핵심은 수소환원제철 존에서 공개한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기술 '하이렉스(HyREX)'였습니다.
하이렉스는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입니다. 올해 6월 정부의 국가연구개발사업평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고요. 포스코그룹은 2030년까지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기술 개발을 완료한다는 계획입니다.
HD현대는 신재생에너지 기반의 전력 생산부터 소비까지 전 과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에너지고속도로' 전시관을 마련했습니다. 에너지부문 계열사인 HD현대일렉트릭, HD현대에너지솔루션, HD하이드로젠이 공동으로 참여해 △재생에너지 생산 △청정에너지 저장 △청정에너지 송·변전 △청정에너지 분전·활용 등 각 단계에 적용 가능한 다양한 친환경 제품과 기술을 선보였죠.
특히 HD현대일렉트릭은 이번 전시회에서 친환경 절연유를 사용한 전력변압기, 온실가스 배출을 99%까지 저감할 수 있는 'SF₆-Free 가스절연개폐장치(GIS)' 등 차세대 친환경 전력기기를 소개했습니다.
GIS는 고압 전력 설비에서 전류를 끊고 연결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개폐장치인데요. 고압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해서 보통 절연 성능이 뛰어난 가스를 씁니다. 대표적인 게 SF₆(육불화황)이었는데요. 다만 이 절연가스는 온실가스 배출이 크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에 SF₆를 쓰지 않고, 친환경 절연가스로 대체해 지구온난화 문제를 줄일 수 있는 차세대 전력 장치를 개발한 거죠.
이밖에도 HD현대일렉트릭은 향후 전력 계통 안정화의 핵심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는 배터리에너지저장시스템(BESS)과 국내 최초로 올 10월 대량 양산에 돌입하는 전기차 충전기용 누전 차단기도 공개했습니다. HD현대에너지솔루션은 고효율 태양전지 기술을 기반으로 한 태양광 모듈과 탠덤 셀, HJT(이종접합) 셀 등을 실물 전시했죠.
AI 시대 에너지 문제 풀 열쇠는
두산은 가스터빈·SMR(소형모듈원자로)·풍력·수소 등 AI 시대 전력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에너지 솔루션을 선보였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번 박람회에서 현재 개발 중인 380MW(메가와트)급 수소터빈 모형과 대한민국 대표 원전 모델인 'APR1400' 주기기 모형 등을 전시했고요.
두산퓨얼셀은 데이터센터, 분산전원, 선박 모빌리티 등에 활용될 수 있는 친환경 수소연료전지를 선보였습니다. 대표적인 게 △전기와 열을 생산할 수 있는 인산형연료전지(PAFC) △전기 효율이 높고 기대수명이 길어 경제성이 높은 고체산화물연료전지(SOFC) △하루동안 약 430kg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양성자교환막(PEM) 방식의 수전해 시스템 등이죠.
LS일렉트릭과 LS전선은 HVDC(초고압직류송전) 기술을 앞세웠습니다. HVDC는 기존 교류(HVAC, 초고압교류송전)보다 전력 손실을 줄이고 최대 3배 많은 전력을 장거리로 보낼 수 있는 기술을 말하는데요. 재생에너지 확대와 맞물려 탄소중립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꼽힙니다.
이번 행사에서 LS일렉트릭은 국내 유일의 HVDC 변환 솔루션 기술과 사업 수행 역량을 선보였습니다. LS일렉트릭은 국내 기업 최초로 500MW급 전압형 HVDC 변환용 변압기 개발을 완료한 바 있는데요. 최근 개발시험은 물론 고객 검수시험까지 모두 성공적으로 완료해 상용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개발된 전압형 HVDC 변환용 변압기 중 가장 큰 용량으로 인천지역 HVDC 변환소에 적용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의 상근부회장은 개회사에서 "AI 기술로 긴급한 에너지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제조공정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에너지사용을 최소화하는 등 수요관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AI와 에너지시너지 효과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의 창의적인 기술혁신과 도전이 핵심 열쇠"라고 짚었는데요. 고성능 전력반도체, AI 전략 기반 최적화시스템 등 기업이 주도하는 기술 혁신이 AI 시대 에너지 문제를 풀 열쇠라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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