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특히 군국주의 만행이 극에 달했던 만주사변부터 태평양전쟁(1931년~1945년)까지 강제동원으로 노동력을 착취하고 이를 통해 남긴 이익을 기반으로 성장, 지금도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일본기업이 많다.
우리는 이들을 전범기업(전쟁범죄기업)이라 부른다.
3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일본 아베정부의 경제 보복조치 배경에는 지난해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의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나라 대법원의 배상판결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일본 정부는 국제무역분쟁을 의식, 겉으로 강제동원 소송과 수출규제조치는 별개의 건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은 배상 판결을 받은 일본 기업을 대신해 일본 정부가 보복에 나선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전범기업의 배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일본의 무역 도발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전범기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전범기업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이 전범기업이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이들이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들에게 무슨 행위를 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정부가 발표했다는 전범기업 명단 299개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지만, 이들이 수십 년의 세월을 거치며 현재 어떤 기업으로 남아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알기 어렵다.
매년 10월 국정감사 시즌이면 국민연금공단은 일본 '전범기업'에 투자했다는 사실만으로 국회의원들로부터 혹독한 질타를 받는다.
국회의원들이 매년 국민연금의 전범기업투자 문제를 거론하며 내놓는 자료를 보면, 국민연금은 도요타자동차에 가장 많은 금액(2896억원, 2018년 기준)을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정작 도요타자동차는 전범기업 299개 명단에 없는 기업이다.
심지어 전범기업이라며 돌아다니는 명단의 종류도 제각각이다. 국민연금의 전범기업 투자리스트는 일반적으로 361개 전범기업 명단을 기준으로 삼는다. 반면 2016년까지 활동했던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최종적으로 정리한 전범기업(현존기업) 명단은 224개이다.
도요타자동차를 전범기업으로 보느냐 마느냐에 따라 국민연금의 전범기업 투자금액(2018년 기준 1조2300억원)은 9404억원으로 24%나 줄어든다.
뿐만 아니라 전범행위와 관련 없는 기업들이 전범기업 리스트에 섞여있는 등 불분명한 정보도 많다.
이처럼 우리는 전범기업에 분노하면서도 보다 실체적이고 명확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다. 도요타자동차는 전범기업인지 아닌지, 만약 전범기업이라면 어떤 이유에서 전범기업으로 봐야하는 지를 짚어보는 것이 이번 [전범기업 팩트체크]시리즈를 기획한 이유다.
우리는 이번 기획을 통해 전범기업들이 어떤 행위를 했고, 현재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파편적이고 뒤섞여있는 많은 정보들 가운데 정확한 사실을 골라내 검증하고 정리하려 한다.
전범행위가 극에 달했던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의 민간경제는 이른바 3대재벌 미쓰비시·미쓰이·스미토모가 중심이었다. 지금 존재하는 전범기업 명단의 상당수도 이들 기업에서 파생해 나온 곳이다.
전후 일본의 재벌은 연합국최고사령부(GHQ)에 의해 해체됐고 겉으로 드러난 지분관계도 정리돼 외형상 별개의 기업으로 존재해오고 있다. 그러나 표면적인 지분관계가 없다고 해서 과거 전범행위로 쌓아올린 기업의 역사까지 사라지진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다양한 경로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으며, 21세기 새로운 미쓰비시·미쓰이·스미토모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전범기업 팩트체크] 시리즈는 크게 일본 3대 재벌이자 태평양전쟁 당시 핵심 전범기업이었던 미쓰비시·미쓰이·스미토모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후 3대 재벌과 연관이 있는 유명기업들의 역사와 현재를 팩트체크한다. 아울러 3대재벌과 직접적 관련은 없으나 우리사회에 널리 알려진 기업들의 역사를 되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