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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기업 팩트체크]⑩에필로그-우리의 과제는

  • 2019.10.02(수) 11:00

<비즈니스워치 특별기획 전범기업 분석>
日기업에 강제동원 '확인된 건수 절반도 안돼'
재벌해체 및 인수·합병등 변화과정 추적도 필요

'미쓰비시 같은 전범 기업은 그렇다쳐도 도요타, 혼다, 닛산같은 업체들은 왜 불매 리스트에 포함된 걸까'(국내 일간지 기사) 

혼다와 도요타가 전범기업? 전범기업에 도요타는 없다(인터텟 포털 카페글)

인터넷 포털에 '도요타자동차 전범기업'을 검색하면 각종 기사와 블로그, 카페 글이 나온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알게 된 정보만으로는 도요타자동차가 전범기업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

심지어 공신력을 갖춘 언론사 기사에서도 도요타자동차의 전범기업 여부를 두고 제각각의 해석이 나온다.

'미쓰비시처럼 확실하게 알려진 전범기업은 그렇다쳐도 도요타 같은 업체까지 불매운동을 하는 것은 너무 감정이 앞선 것 아니냐'는 내용도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전범기업으로 봐야할까. 아니면 잘못된 정보탓에 전범기업으로 엮여있는 평범한 일본기업일까.

비즈니스워치 [전범기업 팩트체크]시리즈가 검증한 도요타자동차의 전범기업 여부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2016년 발간한 위원회활동결과보고서에는 도요타자동차의 전신 도요타자동차공업에서 노무자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들을 뚜렷하게 발견할 수 있다.

박OO는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되어, 1944년 1월 17일부터 1945년 8월 해방까지 일본 아이치현(愛知縣) 소재 도요타(トヨタ)자동차㈜ 고로모(擧母)공장에서 노무자의 생활을 강요당하다가 귀환한 피해자로 결정한다.(대일항쟁기 위원회 활동결과보고서- 피해자 명부에서 발췌)

김OO은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되어, 1943년경부터 1945년경까지 일본 아이치현(愛知縣) 소재 도요타자동차공업(주)에서 노무자의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로 결정한다.(대일항쟁기 위원회 활동결과보고서- 피해자 명부에서 발췌)

뿐만 아니라 도요타자동차공업의 전신 '도요타직기'가 1930년대 주식회사로 전환할 무렵 자본출자를 한 곳이 대표적 전범기업 미쓰이그룹이다. 도요타직기에서 도요타차와 함께 파생해서 나온 계열사 도요타제강(현 아이치제강)도 노무자 강제동원의 족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전범기업이다.  관련기사 [전범기업 팩트체크]⑨자동차회사

전범행위가 있었던 태평양전쟁 당시의 도요타그룹은 일본의 패전 후 연합국최고사령부(GHQ)의 의해 해체됐다. 당시의 많은 일본 재벌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현재 존재하는 기업들은 이름도 바뀌고 지분상 연결고리도 일반적 의미의 그룹 또는 계열사라고 보긴 어려울 정도로 상당수 희석되었다. 그러나 이름이 바뀌고 지분관계가 달라졌다고 해서 과거의 전범행위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도요타자동차는 전범기업 도요타자동차공업이 현존하는 모습이다. 이로써 [전범기업 팩트체크]①프롤로그-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나'에서 언급한 국민연금의 도요타자동차에 대한 투자(2896억원, 2018년 기준)를 답도 명확해졌다.

#전범기업 인식여전히 협소

[전범기업 팩트체크]시리즈가 다룬 미쓰비시·미쓰이 등 16개의 기업(그룹)은 우리에게 친숙한 곳이다. 그러나 이번 시리즈에서 다루지 못한 많은 기업이 더 많다.

특히 우리가 알고 있는 전범기업 명단이란 건 말 그대로 '최소한의 명단'이다. 강제동원을 했더라도 피해자가 기업명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등 관련 증거가 부족해 전범기업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곳이 많기 때문이다.

2004년 11월 10일 현판식을 가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는 이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로 이름이 바뀌면서 2016년까지 12년 간 활동했다.

위원회가 했던 주된 활동은 강제동원 피해자가 누구로부터 어떤 피해사실을 당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대일항쟁기위원회 활동결과보고서는 "2004년 이후 신고 접수된 개인 피해 22만6583건(군인, 군무원 동원 포함)에 대한 조사 결과, 판정불능이 6177건에 이르고 피해조사가 완료된 노무자 15만 건 가운데도 ‘작업장 등이 확인되지 않은 채 처리된 경우’가 약 7만8000건(52%)에 달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2012년 당시 이명수 자유선진당 의원실이 대일항쟁기 위원회로부터 자료를 받아 발표한 299개 전범기업 명단은 최소한의 수치인 셈이다.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전범기업들이 조선인을 강제동원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전범기업업종도 다양

강제동원이라는 단어는 주로 어두운 탄광에서 노무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들의 모습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실을 뽑는 방적(도요방적, 가네가후치방적 등)부터 패션잡화 도매업(이시다), 구두제작(리갈), 식품제조(아지노모토, 모리나가제과) 등 다양한 업종의 회사들이 강제 동원에 나섰다.

강제동원은 당시 일본 군국주의 정부가 주도적으로 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당시 일본의 민간기업들에게도 강제동원은 경영의 효율성을 가져다주는 제도였다. 전시물자 보급에 동원되면서 생산물량이 폭주하던 시기 강제동원으로 손쉽게 노동력을 확보해 이익을 남기고, 그렇게 남긴 이익을 바탕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전범기업 팩트체크]에서 다루지 못했던 신일본제철, 아소광업(아소다로 부총리의 증조부가 설립), 카세트테이프로 유명한 파나소닉, 반도체를 만드는 도시바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기업들이 전범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김OO이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강제동원 된 후 나요로시(市)로 외출했을 때 촬영한 사진이다. 그는 1944년 일본 훗카이도 소재 미스비시 광업 주식회사 신시모카와 광산으로 동원되었다. 사진 속 그의 노무복장을 자세히 보면 모자의 미쓰비시 회사 마크와 왼쪽 가슴의 응징사라고 하는 흉장을 확인할 수 있다. 응징사란 ‘징용에 응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1943년 7월 개정된 국민징용령에 의해 동원된 노무자를 지칭한다. [자료=김OO, 본인 기증/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상설전시 도록-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현존기업에 주목해야

[전범기업 팩트체크]시리즈를 기획하던 초기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 중 하나는 통일된 전범기업명단이 없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국민연금에 전범기업투자리스트를 요청하는 국회의원들도 흔히 알고 있는 299개명단이 아닌 361개 명단을 기초로 국민연금의 전범기업 투자내역을 발표하고 있었다.

대일항쟁기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강제동원이 확인된 가장 최근의 전범기업 명단은 224개"라고 말했다.

대일항쟁기 위원회 자료를 받아 이명수 의원실이 2012년 발표한 299개 명단(가장 일반적인 전범기업 명단), 그리고 최근 국민연금의 전범기업 투자내역을 따질 때 사용하는 361개 명단, 그리고 가장 최근의 224개 명단. 이러한 격차가 나타나는 건 기존의 전범기업이 인수·합병, 분할 등의 과정을 거치며 변화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범기업 명단은 영구불변의 것이 아닌 생동하는 것임을 인지해야 한다. 새로운 강제동원 증거가 등장하며 전범기업에 이름을 올리는 기업이 나올 수 있다. 또한 이미 전범기업이라고 알려진 곳이 인수합병, 분사, 매각 등을 거치면서 변화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혜경 연구위원은 전범기업이 아닌 현존기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범행위와 관련 있는 기업이 현재 어떤 형태로 남아서 기업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범기업은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의 기업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인정하지 않으니 사과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에 주목해야 한다. '과거의 미쓰비시와 현재의 미쓰비시가 다르다'는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기 때문이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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