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감정평가업체가 둘 씩 나눠 똑같은 물건을 평가했는데 사는 쪽에서 수임한 업체는 1조1600억원, 파는 쪽에서 의뢰를 받은 업체는 2조5700억원이라는 평가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런 감정평가가 제대로 된 거라고 볼 수 있습니까?
서종대 한국감정원장이 작심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달 취임한 서 원장은 8일 정부세종청사 인근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감정평가업계는 공신력의 위기, 시장 축소의 위기를 맞고 있다"며 "업계가 자정하지 않으면 전체가 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 원장은 감정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했다. 앞서 그가 꺼낸 사례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옛 단국태 터에 지어진 '한남더힐'. 이 아파트는 임대후 분양 전환 단지로 최근 분양가 산정을 두고 입주자 측과 시행사(한스자람) 사이에 갈등이 불거진 상태다.
서 원장은 이와 함께 판교신도시 보상 과정에서 똑같은 표준지 땅을 같은 감정평가사가 6개월 사이 50만원과 250만원으로 각각 다르게 평가한 사례도 들며 "감정평가업에 대한 신뢰상실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서 원장은 이와 함께 "작년 말 기준으로 4600억원 규모였던 감정평가시장이 10년 안에 3000억원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며 시장 축소가 업계의 위기를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감정평가 시장이 1000억원에서 4600억원으로 불어난 것은 정부의 신도시 개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사업이 많았고 은행의 주택담보대출도 많았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사업들이 줄어들기 때문에 감정평가 시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 원장은 "감정평가 업계의 과제는 공정한 평가질서 확립을 통한 감정평가사의 신뢰 회복과 신시장을 개척하는 일"이라며 "재임 기간 이 두 가지 과제에 주력해 반드시 성취하겠다"고 강조했다.
감정원은 현재 관할 부처인 국토부와 협의를 거쳐 감정원이 감정평가 심사·감독기능을 갖는 '한국감정원법' 제정을 의원입법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감정평가업계에서는 "감정원이 공적인 감정평가 업무를 직접 수행하면서 직접 업계를 지도·감독하는 것은 선수가 심판도 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