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청약가점제 당첨 배정 비율을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청약 1순위 요건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투기성 수요를 걸러내는 대신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기회는 늘리겠다는 의지다. 청약가점제를 비롯한 주택청약제도는 어떻게 운영돼 왔는지, 앞으로 어떤 제도 개편이 이뤄질지, 이에 따라 분양시장 청약 환경은 얼마나 변화할지 차례로 짚어본다.[편집자]
과거 아파트 청약 신청자격 1순위는 청약통장에 가입한 지 2년이 돼야 받을 수 있는 자격이었다. 하지만 지방의 경우 지난 2008년 6개월로, 수도권은 지난 2014년 1년으로 1순위 조건 기간이 줄었다. 주택시장 침체에 대응해 수요를 늘리겠다는 당시 정부의 판단이었다. 이 때문에 지난 5월 청약통장 가입자 2000만명 중 1순위가 1000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주택분양시장 과열이 가시질 않자 정부는 다시 수요를 덜어낼 조치가 필요했다.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청약시장에 뛰어드는 투자 수요가 이제는 너무 많아 시장 불안이 지속된다는 진단에서다. 정부가 청약 1순위 자격 획득에 필요한 통장 가입기간을 늘리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청약가점제로 당첨되는 비율까지 높이면 청약시장이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될 수 있다는 게 정부 기대다.
◇ "청약 과열에 쫓긴 불안심리 줄어들 것"
▲ 수도권 한 택지지구 분양 아파트 모델하우스 내부.(사진:대우건설) |
주택 업계는 1순위 청약통장 가입 기간이 2년까지 다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청약가점제 적용비율도 전용면적 85㎡ 이하가 2013년 75%에서 40%로 낮아지고, 전용 85㎡ 초과는 50%에서 아예 폐지됐는데 일정 비율 다시 상향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렇게 되면 청약 경쟁률이 낮아져 과도한 청약 열기가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함영진 부동산114리서치팀장은 "1순위로 청약 할 수 있는 사람이 1000만명 넘게 불어난 상황이라 청약 과열을 막기 위한 자격요건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1순위 청약이 가능해지는 사람이 줄어들면 경쟁률은 전반적으로 낮아질 것"이라며 "높은 청약경쟁률에 근거해 다시 분양권이나 새 아파트 값이 오를 거라고 보는 기대심리도 위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도 "무주택자 등 실수요자들 입장에서는 청약가점을 잘 관리하면서 기다리면 알맞은 집을 분양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다시 품게 할 수 있다"며 "동시에 청약 과열에서 비롯한 불안 심리는 줄어드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과수요만 손 댈 게 아니라 공급 측면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당장 과열을 식히기에는 청약제도 개편이 적절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박 위원은 "내년 경기도 아파트 입주물량이 16만가구인 시점에서 공급을 늘리자는 주장은 적절치 않다"며 "당장 시장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신규 분양시장 수요 제어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무주택 기간과 부양가족 수, 청약통장 가입 기간으로 점수를 내는 청약가점 당첨비율을 높이게 되면 무주택 기간이 길고 가구원 수 등이 많으면서 꾸준히 내 집 마련을 준비한 실수요자들이 더 유리해진다.
업계에서는 전용 85㎡ 이하 가점제 적용 비율이 4년 전인 75%로 높아질 경우 주택형별 당첨 커트라인은 5~10점 가량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이미 집을 보유한 유주택자나, 통장 가입기간이 짧은 이들의 경우 배정 비율이 낮아지는 추첨제 물량에서만 경쟁하게 돼 당첨 확률이 낮아진다.
◇ "분양 양극화 심화 우려..계층별 배려도 필요"
시장에서는 다만 청약제도가 개편되면 향후 집값이 오를만한 곳에 통장이 몰리고 그렇지 않은 곳은 미분양이 양산되는 분양시장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청약 1순위 자격이 강화되면 수요자들의 분양단지 고르기가 더 신중해질 것"이라며 "입지가 좋고 시세차익도 보장된 유망 물량에만 청약통장이 몰리는 현상이 지금보다 더 심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역별로 청약이 과열된 곳도 있지만 미분양도 심심찮은 지역이 있는 만큼 일괄적으로 1순위 요건을 강화하거나, 가점제 적용비율을 높이는 것보다 선별적인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청약제도 개편과 함께 분양가를 낮출 수 있는 방안까지 더해진다면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내 집 마련이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수요층이지만 청약가점은 확보하지 못한 계층을 배려하는 보완책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점제 비율을 높이게 되면 가족이 적거나 무주택 기간이 짧은 사회초년생, 신혼부부는 불리해진다"며 "특별공급을 늘리는 등 계층별 지원 방안도 보조를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청약가점제로 당첨 우선권을 갖게 된 이들에게 전매제한 기한을 두거나, 세제 등에서 실거주 요건 등을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가점을 활용해 분양 받은 집을 단기 차익만 남기고 되파는 사례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수요만 죌 것이 아니라,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물량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 주택보급률은 96%로 아직 적정 주택보급률 105~11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청약제도 개편이 당장은 시장을 진정시킬 수 있겠지만 수요가 있는 곳에는 공급을 늘려야 시장 안정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