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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판, WHY]③부실 민낯 드러난 LH 건설현장

  • 2023.08.21(월) 06:30

LH 전관 업체 사업 독식…건설 카르텔 문제 부각
설계·감리 등 인력 부족…현장 '공기 압박' 지적도

전관예우와 건설 카르텔, 저가 수주, 전문인력 부족, 안전불감증, 불법 도급, 공기 압박.

인천 검단 아파트 붕괴 사고 이후 우리나라 건설 현장의 부끄러운 민낯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건설 현장 전반에 잘못된 관습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부실시공과 건설 사고는 무량판 공법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런 원인들로 인한 예견된 인재였습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LH 전관 업체 일감 몰아주기…카르텔 만연

LH는 지난 2021년 전·현직 직원들의 땅 투기 논란으로 큰 지탄을 받았습니다. 이후 조직을 쇄신하겠다고 선언했지만 2년 만에 다시 위기를 맞았습니다. 전관예우 등 건설 카르텔 문제로 부실시공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LH가 발주해 지은 아파트에서 부실시공이 무더기로 드러났습니다.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지하주차장이 있는 102개 단지 중 전단보강근이 누락된 단지가 20곳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LH는 이런 사실을 발표하면서 LH 조직 내부 '부실'의 단면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이한준 LH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구조 설계 견적인데, (LH 내부) 구조견적단 자리를 건축 도면도 못 보는 토목직이 맡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LH의 전관예우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LH 출신들이 만들었거나 직원으로 속한 업체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이 확산했습니다.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이 LH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철근 누락 등으로 문제가 된 16개 단지의 설계·감리에 참여한 전관 업체는 18개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업체들은 지난 2020년 6월부터 3년간 경쟁 방식이 아닌 수의 계약으로 LH 용역 77건을 따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업계에서는 LH가 발주한 일은 LH 전관이 없으면 못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만큼 LH 출신들을 중심으로 한 건설 카르텔이 견고하고, 이런 잘못된 관행이 부실시공 등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사진=국토교통부 제공.

이 밖에도 LH가 올해 들어 자체적으로 감리에 나선 아파트 단지와 주택 공사 현장 10곳 중 8곳의 감리 인원이 법정 기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감리 인원을 제대로 배치하지 않으면서 부실시공을 방치했다는 지적입니다.

설계·감리·시공 '부실' 곳곳서 드러나

이번 사태의 파장이 커지자 설계와 감리를 담당하는 건축사들이 입장문을 통해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구조기술사들과 건축사의 갈등이 드러나면서 눈길을 끌었는데요.

업계에 따르면 건축사는 사업 발주를 받아 건축물을 설계하고 공사를 감리(감독)하는 역할을 합니다. 구조기술사는 건축사의 설계를 토대로 건축물에 가해지는 하중 등을 고려해 건물 구조를 설계하는 일을 담당하고요.

대한건축사협회는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저가 수주 경쟁과 전문인력 유입 부족, 안전불감증 등을 꼽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협회는 특히 건축구조기술사 부족을 근본 원인 중 하나로 꼽았는데요. 지난해 말 기준 등록건축사는 1만 8872명이지만, 건축구조기술사의 경우 1204명에 불과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만큼 허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구조기술사 측의 의견은 또 다릅니다. 현행법상 건축구조기술사가 건축사의 하청업체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는데요. 용역대금 지급을 미루거나 이를 무기로 무리한 구조설계를 요구한다는 주장입니다.

어느 쪽이 맞느냐는 지금 시점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건축구조기술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과 건축사가 이들에게 무리하게 구조 설계를 요구하는 관행 모두 부실시공의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시공 현장 역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은 이번 사태와 관련한 설문을 진행했는데요. 이에 따르면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과 숙련공 부족 등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건설노조가 251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무량판 시공 현장에서 '속도전을 강요받는다'는 응답이 전체의 43.5%(1093명)으로 나왔습니다. 무량판 시공이 복잡한 데 반해 숙련공은 부족하다는 응답도 19.3%나 됐습니다.

아울러 잇따른 부실시공의 원인에 대해서는 불법도급(73.8%)을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무리한 속도전(66.9%)과 감리 부재 혹은 부실 감독(54.0%) 등도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국토부는 앞서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설계·감리·시공 등의 부실로 인한 전단보강근의 미설치, 붕괴 구간 콘크리트 강도 부족 등 품질 관리 미흡, 공사 과정에서 추가되는 하중을 적게 고려한 점 등을 꼽았습니다.

실제 LH를 중심으로 한 건설 카르텔과 설계·감리 업계 문제, 시공 현장의 잘못된 관행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곳곳에 부실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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