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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부실시공 사태, '전관 배제'가 답일까

  • 2023.08.22(화) 10:36

LH, 전관 업체 계약 11건 취소…"법적 분쟁 가능성"
"곳곳에 LH 전관, 배제는 현실적으로 불가"
권한 축소로 설계·시공·감리 시스템 구축해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관 업체와 한 계약을 백지화하는 등 '전관 카르텔' 근절을 위해 나섰지만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일방적인 계약 취소와 관련해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전관 업체를 전면 배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LH 부실시공 원인으로 전관을 지목하는 것은 단순히 보여주기 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전관 출신'과 '전관 예우'의 문제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설계 기술과 관련한 전문가들이 LH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된다면 이 또한 사회적 손실이라는 것이다.

지난 2일 오후 경기 파주 운정신도시의 LH행복주택(파주운정A34) 지하주차장에 천막으로 가려진 공사 현장.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전관 업체 계약 취소, 법적 분쟁 가능성

LH는 지난달 31일 이후 체결된 전관 업체와의 계약 11건(약 648억원)을 모두 해지했다. 전관 업체의 설계 공모 10건(약 561억원)과 감리용역 1건(약 87억원)이다. 

LH는 입찰 공고와 심사 절차를 진행 중인 설계·감리용역 23건에 대한 후속 절차도 중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내규 규정을 개정해 향후 발주할 용역에도 전관 업체 입찰을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이한준 LH 사장은 지난 20일 "전관 배제는 국민들이 준엄하게 요구하는 것"이라며 "무리가 있더라도 31일 이후 계약된 건에 대해 전면 재심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미 계약이 체결된 건에 대한 계약 취소가 법적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전관 재직 여부'가 객관적인 계약 취소 사유로 인정되기 어려워서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계약 취소를 위해선 객관적인 사유가 필요하다"며 "전관이 (계약 체결된)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사실 만으로 계약을 취소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업장 측에서)계약 유지 요구도 가능하고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LH 측 역시 법적 분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모습이다. LH 관계자는 "법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전관 배제를 준엄하게 요구하는 국민 정서를 감안해 이번 기회로 전관의 고리를 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관 배제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앞서 국토부와 LH는 관련 업체 취업 제한을 검토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어 보류했다.

김 변호사는 "LH 출신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입찰을 전면적으로 금지한다면 이들의 재취업이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LH 출신의 직업 선택 자유와 (전관 배제에 따른)공익 수준에 대해 비교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LH 출신을 전면적으로 규제하는 것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원진이 11일 오전 열린 긴급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사진=송재민 기자 makmin@

"부실시공, 전관 배제가 정답은 아니야"

전문가들은 '전관 전면 배제'가 정답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전문성을 지닌 LH 출신 설계사를 '전관'이라는 이유로 고용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손실이 막대하다는 것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전관이라는 표현은 다분히 표퓰리즘적"이라며 "전관 재직 여부와 전관예우 문제를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관 여부가 이번 LH 부실시공 사태 핵심이라고 볼 수 없다"며 "LH 출신 전문가를 고용한 회사가 모두 부정 입찰을 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전문성을 갖춘 LH 출신 설계사가 퇴직 후 건설회사에 재취업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LH 전관이 없는 업체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공공사업에서 이 업체를 다 배제하고 전문성을 갖춘 업체를 선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공공주택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은영 소장은 "최근 공공분양 주택의 인허가와 착공 물량이 크게 줄어든 상태"라면서 "이번 사태로 공공기관에 '보신주의'가 확산하면서 주택 공급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 분양은 서민층의 주거 사다리를 위해 필요한 국가적 차원의 복지 사업인 만큼 분양 물량 감소는 서민 주거의 질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공공분양 착공 실적은 1713가구 규모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실적(6362가구)의 26.9% 수준이다. 

"LH 권한 축소로 감리 체계 다듬어야"

전문가들은 부실시공을 막기 위해선 설계와 시공, 감리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LH가 설계와 시공 감리 업체를 모두 선정하면서 제대로 된 감독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감리는 중간검사와 준공 시 2번만 하면 되는 시스템" 이라면서 "공정률에 따라 감리를 여러 차례 시행한다면 부실시공 우려를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LH가 뽑은 감리회사가 LH의 설계안과 LH가 선정한 시공사를 감리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면서 "감리 선정 부분과 관련해 LH 권한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건설사들도 비슷한 의견을 내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LH가 설계와 시공 감리 업체를 모두 선정해 그 파워가 막강하다"면서 "LH에서도 설계와 감리 분야를 분리함으로써 서로를 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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