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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여의도 시범 재건축…'노치원'이 브레이크?

  • 2024.02.02(금) 08:08

'65층 추진' 시범아파트, 데이케어센터 설치 반발
시행사 한자신, 문화시설로 기부채납 전환 추진

65층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소위 '노인유치원', '노치원'이라 불리는 '데이케어센터(노인복지센터)' 기부채납을 두고 내부 갈등을 빚고 있다. 소유주 불만이 폭주하자 사업 시행자인 한국자산신탁은 부랴부랴 데이케어센터 설치 백지화를 추진하고 있다. 노인시설 대신 문화시설을 기부채납하겠다는 계획이다.

소유주들이 데이케어센터를 반대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공공 사무시설 등 다른 시설 대비 사업성이 낮다는 것. 다만 고령화라는 시대적 흐름을 고려할 때 인허가 기관 입장에서는 노인시설 확충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어 향후 마찰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시범아파트 모습. 1971년 준공돼 올해로 '54년 차'를 맞았다. 최고 13층, 24개동, 1578가구로 이뤄진 이 단지는 최고 65층, 2466가구의 고층 대단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사진=김진수 기자

"노인시설 반대" 민원 거세자 '없던 일'로

데이케어센터란 고령과 노인성 질환, 치매 등으로 보살핌이 필요한 고령자를 지원하는 노인복지시설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인증을 받은 데이케어센터는 198곳으로 영등포구에는 10곳이 있다. 다만 여의도동에는 구립여의도원광데이케어센터 1곳뿐이다.

한국자산신탁은 지난달 29일 '데이케어센터 삭제'를 안건으로 서울시와 회의를 진행했다고 소유주 전체 공지를 보냈다. 회의에는 시범 정비사업위원장을 비롯해 인토엔지니어링, 건원건축 관계자도 동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당초 예정이던 노인시설 및 과학체험관을 삭제하고 문화시설로 대체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임대로 전환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이 경우 비주거비율 준수 의무로 상업시설이 늘어나는 등 불합리한 점이 있다는 게 한자신 측 설명이다.

한자신은 앞서 지난달 24일에도 서울시청과 영등포구청을 찾아 데이케어센터 건립 조건 삭제를 요구했다. 한자신에 따르면 영등포구는 여의도 지역에 수영장 등 문화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므로 문화시설 제안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기부채납 시설을 관리하는 기획조정실과 협의하기로 했다.

시범 소유주들은 "치매 환자를 위한 데이케어센터 대신 역사문화공간으로 변경하면 관광객이 몰려드는 국제적 명소가 될 것", "국제금융도시 여의도에 걸맞은 시설을 지어야 서울시 동행 '매력'에 부합하지 않겠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한자신이 서울시와 밀약을 통해 데이케어센터를 수용했다며 비판도 하고 있다. 한자신과의 신탁계약 해지는 물론 서울시 신통기획 철회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입장도 보인다. 이에 대해 한자신은 "심의 전까지 서울시와 전혀 협의가 없었던 사항"이며 "심의조건에 대해 구청에 조치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설 조율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신통기획 철회에 대해서도 "정비계획변경 막바지 절차여서 신통기획 철회는 무의미하지만, 데이케어센터 삭제가 되지 않을 경우 소유주 의견을 수렴하고 신통기획 철회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등포노인복지센터의 데이케어센터 물리운동치료실 모습 /사진=영등포구

'싫으면 임대주택?'…사업성 낮은 게 문제

기부채납 공공시설은 용도지역 변경이나 용적률, 높이 완화를 받고자 사업시행자가 공공에 제공하는 도로, 공원, 사회복지시설, 공공청사 등 지역 필요시설을 말한다. 주민이 도시관리계획안을 작성해 구에 제출하면 구청장 검토를 거쳐 서울시 도시관리계획 관련 위원회에서 심의한다.

기부채납 시설은 주민들이 원하는 건축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구의 수요·공급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서울시는 "도로 및 공원 등을 설치할 경우 법적 의무면적 이상의 과도한 계획을 지양하고, 지역 필요시설을 우선검토할 것을 권장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기부채납은 사업자가 하는 기부를 국가가 '걸러서 받는다'는 의미"라며 "여의도의 경우 정비기반시설이 잘 갖춰져서 다른 건 필요없고 고령화에 맞춰 데이케어센터가 필요한 것으로 사전 협의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추진 단지들은 통상 노인복지시설이나 공공임대아파트를 꺼리고 공공청사, 공공오피스, 문화시설 등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내 아파트에 다른 단지 어르신이 온다는 게 주민 입장에서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닐 것"이라며 "무엇보다 사업성이 낮은 게 가장 큰 이유다. 노인시설이나 임대아파트는 건축비 인정금액도 낮기 때문에 내 아파트의 가치를 높이는 기부채납을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구가 수용 가능한 기부채납이 한정적이라 단지 간 선점 경쟁도 불가피하다. 여의도 재건축 추진 단지 관계자는 "평당가가 비싼 공공임대 산업시설이나 공공 오피스를 선호하는데 다들 사무실을 만들면 채울 사람이 없으니 국가가 다 받을 수가 없다"며 "협상을 통해 주민이 원하는 시설을 기부채납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만큼 분주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2033년 서울의 청년 인구와 65세 이상 인구가 역전될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통계청,서울시

다만 초고령사회가 거스를 수 없는 사회적 흐름인 만큼 서울시는 향후 재건축 아파트 기부채납으로 노인시설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서울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6%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최근 '어르신 안심주택' 정책을 발표하며 "대한민국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인 '초고령사회' 진입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며 "2033년에는 (서울) 청년 인구와 65세 이상 인구가 역전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진단했다.

시범아파트는 1971년 준공돼 올해 54년 차를 맞은, 여의도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최고 13층, 1578가구에서 최고 65층, 2466가구의 고층 대단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관련기사: '53세' 여의도 시범아파트, 드디어 재건축 가나요~!(2023년10월6일)

정비계획변경절차를 밟고 있는 시범아파트는 현재 서울시→영등포구가 수정가결한 심의에 대해 조치계획서를 발송할 계획이다. 이후 조치계획이 승인되면 영등포구청의 재공람을 거쳐 최종 고시된다.

한자신은 데이케어센터를 포함한 노인시설 삭제 등을 담은 조치계획서를 구청에 접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자신 관계자는 "서울시와의 협상 진행 과정을 공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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