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0주년기획 [DX인사이트]
[인터뷰]박상혁 한미글로벌 DT추진실장
주먹구구에서 데이터기반 확산땐 젊은인재 유입도
"처음엔 임시조직으로 시작했어요. TF를 마치고 회장님께 앞으로의 과제와 디지털 전환 방향을 설명했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대답을 기다리는데 딱 한 마디 하시더라고요. '경영지원실에 돈 많이 달라 그래'. 그 뒤로 2년간 미친 듯이 개발만 했습니다."
지난달 27일 서울 한미글로벌 본사에서 만난 박상혁 DT추진실장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건설사업관리(PM) 전문기업인 한미글로벌은 지난 2019년 12월 DT(디지털 전환) 추진실을 설립했다. 당시 건설전략연구소장이었던 박상혁 전무가 추진실을 이끌게 됐다.
한미글로벌이 DT에 뛰어든 건 CEO인 김종훈 회장의 적극적인 주문 덕이었다. 2016년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등장하며 세상이 술렁였다. 이어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됐지만, 건설업계는 관망하는 분위기였다.
박상혁 실장은 "애초 4차 산업혁명 정의는 'ICT를 활용해 산업 전반의 변화를 선도한다'는 식으로 포괄적이라 기업이 적용하기엔 애매했다"며 "시간이 지나며 4차 산업혁명이 디지털 전환으로 구체화 됐고, 이를 감지한 CEO가 2019년 5월 TF를 조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임시조직인 TF였지만 내실을 기했다. 100% 건설 전공자로 실을 꾸렸고, 외부 전문가도 영입했다. 이때 △일하는 방식과 인프라 전환 △구성원의 마인드셋 전환 △비즈니스 전환 등 3대 방향을 정했다. 출범 7개월 만에 정식 부서가 된 DT추진실은 2025년을 DT 원년으로 삼고 나아가는 중이다.
모두 클라우드에서 만나요
한미글로벌은 현재 구축 중인 디지털 PM 서비스를 'HG DPMS(디지털 PM 시스템)'라고 부른다. HG DPMS는 디지털 협업 공간인 'ezCDE'와 데이터베이스 플랫폼, 운영관리시스템의 3단계로 나뉜다.
ezCDE는 공통데이터환경(CDE)을 한미글로벌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서비스다. 건설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데이터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관리할 수 있다. 각 사업 주체가 직접 클라우드에 접속해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고, 모인 데이터를 쉽게 시각화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박상혁 실장은 "공정관리의 경우 시공사는 보통 MS 프로젝트를 사용하는데, 이 파일을 ezCDE에 업로드하면 미리 설정된 양식대로 전환된다"며 "발주자 등은 시공사가 입력한 정보를 토대로 계획 공정 대비 실행률까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업계가 사용하는 오토캐드, 스케치업 등의 전문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아도 ezCDE의 뷰어를 통해 이들 파일을 확인할 수 있는 점에서 호응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미글로벌의 DT엔 '안전관리'도 포함된다. 추락, 끼임 등의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건설업 특성상 업계의 고민 1순위는 늘 '안전'이다. 한미글로벌의 '모바일 SCAR(안전시정조치요구서)'는 시정 요구부터 실제 조치와 보고까지 앱 하나로 가능하게 한 서비스다.
확인 도장이 찍히자마자 서류함에 봉인됐던 보고서들은 이제 '데이터베이스'가 된다. 현재 22개 현장에서 모바일 SCAR를 통해 3743건의 요구서를 발행했다. 수집된 사진은 8500장이 넘는다. 이 자료를 통해 '사고 예방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게 한미글로벌의 설명이다.
박상혁 실장은 "보통 현장에서는 위험 요소에 대한 보고를 문서로 진행하는데, 그 즉시 캐비넷에 보관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파쇄돼 추가 활용이 어려웠다"며 "프로토타입이었던 모바일 SCAR의 높은 활용도에 힘입어 4월 중 리스크제로HG라는 앱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꽃길 전 '가시밭길'도
모든 과정이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예전 방식을 고수하는 현장들이 있다. 모든 자료가 디지털화돼 보존된다는 것에 불쾌해하는 협력사도 만났다.
박상혁 실장은 "디지털 시스템이 불편하거나 어렵다면 뭔가 개선 조치를 하겠지만, 그냥 싫다거나 기록이 남는 게 부담이라는 데 사용을 강요할 수는 없다"며 "당분간 현장에서 종이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보는 이유"라고 말했다.
'영어 울렁증' 사용자들을 설득하는 것도 과제다. 한미글로벌은 자체 개발한 기능 외에 영국 에이사이트(ASITE), 오스트리아 플랜레이더(PlanRadar) 등 외국 프로그램 도입을 검토 중이다. 문제는 이들 프로그램의 한국어 버전이 없어 메뉴 등이 영어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박상혁 실장은 "외국에서 들여온 서비스의 경우 국내 현장과 업무 과정과 용어가 달라 바로 적용하기가 어렵다"며 "일선에선 영어로 된 사용환경에 반감을 보이기도 해서 이제는 주로 해외 프로젝트에 적용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전환으로 '다시 봄'
한미글로벌은 DT의 최종 목표가 '산업 생태계 변화'라고 설명한다. 오래전부터 '건설산업 선진화'를 강조한 김종훈 회장의 의지와도 통한다.
박상혁 실장은 "제가 해보니 이런 프로젝트에선 주로 4층에 결빙이 생긴다'는 예측과, '저희가 42건의 공사를 했는데 4층에서 결빙 안전조치가 52건 발생했다'는 분석, 둘 중에 무엇을 더 믿겠느냐"며 "한미글로벌이란 회사 1곳은 전체 건설업계에선 작은 단위지만, 이런 노력이 디지털 전환 확산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의 '회춘'은 덤이다. 경험 중심의 주먹구구 문화가 데이터 기반으로 바뀌면 젊은 인재들의 유입이 활발해질 수 있다고 본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건설업 종사자 중 30대 이하는 2011년 12%에서 2020년 8%로 감소했다.
박상혁 실장은 "회사가 축적한 데이터를 충분히 습득한다면 수십 년간 현장에서 흙을 묻히지 않아도 발주처에 충분히 신뢰를 줄 수 있다"며 "전문가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면 젊은이들이 건설업에 더 많이 들어오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