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착착. 착착. 착착.'
수많은 바구니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따라 끊임없이 이어져 나온다. 각 바구니에는 커피, 과자, 분유 등 다양한 상품이 담겨있다. 바구니들은 스스로 갈 방향을 알고 있는 것처럼 구불구불한 컨베이어 벨트를 가로지른다. 작업자는 자신 앞에 멈춰선 바구니에서 고객 주문에 맞춰 상품을 꺼내 배송 바구니로 옮겨 담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이 고객의 장보기를 대신하는 과정이다.
해당 구역의 근로자는 14명뿐. 전 공정의 80%가 자동화로 진행하는 이곳은 이마트 SSG닷컴의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네오'다. 네오(NE.O)는 차세대 온라인 스토어(NExt Generation Online Store)의 약자다. 이곳은 유통업계 디지털 대전환(DX)의 단면을 보여주는 최첨단 물류 기술의 집약체로 평가된다. 상품의 자동 이동과 재고관리, 골드 체인 시스템 등 핵심 설비가 갖춰져 있다.
극한의 효율 '네오'
지난 3일 경기도 김포의 네오 2호 센터를 찾았다. 물류센터 초입부터 노란색의 SSG닷컴 배송 차량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SSG닷컴은 용인(네오1호)과 김포(네오2,3호)에 총 세 곳의 네오 센터를 운영 중이다. SSG닷컴에 따르면 네오 세 곳을 통해 하루 8만 건이 넘는 주문이 처리된다. 네오 1호에서만 하루 1만3000건, 네오 2호와 네오 3호에서 각각 3만1000건과 3만5000건을 소화한다.
가장 먼저 상온 상품이 있는 4층 드라이(Dry) 피킹존을 찾았다. 이곳에 들어서면 14m 높이의 재고 창고가 눈을 사로잡는다. 322개의 로봇(셔틀 유닛)이 재고 창고를 분당 200m 속도로 좌우상하 오가며 상품들을 꺼내온다. SSG닷컴이 자랑하는 GTP(Goods To Person) 시스템이 적용된 덕분이다. 이는 직원이 물건을 가지러 가는 것이 아닌 물건이 직원을 찾아오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주문이 들어오면 직원은 제품을 찾아 넓은 물류센터를 헤매야했다.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는 셈이다. 직원이 모니터를 통해 배송 물품을 확인하면 물건이 담긴 재고 바구니가 자동으로 직원 앞으로 다가온다. 직원은 바구니에서 물건을 꺼내 컨베이어 벨트에 놓으면 자동으로 배송 바구니에 담긴다. 기자도 곧바로 업무를 할 수 있을 만큼 매우 간단했다.
이를 통해 네오는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고객 주문을 빠르게 처리한다. 차혁근 네오 2호 지원팀 팀장은 "상온 상품을 기준 네오 2호에서는 시간 당 2000개 박스, 산술적으로 한 2초에 한 박스 배송을 소화하며 네오 3호에서는 시간 당 2400 박스, 1.6초 당 한 박스를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콜드 체인과 시퀸스 버퍼
3층에 들어서니 한기가 몸을 감싼다. 이곳은 신선식품을 취급하는 'Wet 피킹' 구역이다. 층 전체가 10℃ 이하로 유지된다. 마치 한 층이 거대한 냉장고와 같다. 이날 완연한 봄 날씨에도 작업자들은 모두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차 팀장은 "냉동창고는 –35℃도로 유지된다"면서 "만일 전기가 나가도 비상전력으로 365일 24시간 저온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화 시스템은 이곳도 마찬가지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바구니가 지나가면 위생 관리를 위한 비닐이 자동으로 씌워지고 작업자들은 불빛 신호에 따라 신속하게 상품을 담는다. 드라이아이스도 최적의 무게가 계산돼 담긴다. 물건을 담을 때부터 고객에게 배송되는 순간까지 온도를 차갑게 유지하는 ‘풀 콜드 체인 시스템’을 통해 제품의 신선도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다.
이렇게 포장된 상품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다. 상품이 배송 차량에 실리는 데도 특별한 기술이 숨겨져 있다. 바로 '시퀸스 버퍼' 시스템이다. AI가 미리 계산해 주소지가 가장 먼 상품부터 출하할 수 있도록 한 기술이다. 차 팀장은 "배송 운전사들이 가장 효율적인 루트로 배송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바구니가 나오는 순서대로 차량에 싣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SSG닷컴은 네오의 기술을 전국 이마트 PP센터(Picking&Paking)에 이식한다는 계획이다. 이마트 PP센터는 기존 이마트 매장의 일부 공간을 활용해 만든 한 도심형 물류센터다. SSG닷컴 관계자는 "네오가 SSG닷컴 물류의 심장이라면 PP센터는 전국 곳곳의 물류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모세혈관"이라며 "이를 통해 배송 혁신을 모든 상품 영역에서 재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왜 물류 DX인가
유통업계의 디지털 물류 전환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변화에 기름을 부은 것을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소비자 장보기의 무게추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완전히 옮겨갔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유통시장에서 대형마트의 점유율은 2017년 24%에서 2021년 15.7%로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이커머스의 점유율은 35%에서 48.3%로 크게 증가했다.
소비자들의 습관이 변했다는 이야기다. 특히 신선식품도 이커머스에 잠식당하고 있다. 그동안 신선식품은 이커머스가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로 꼽혔다. 하지만 콜드체인 등 배송 서비스의 발달은 모든 걸 바꿔놓고 있다. 2019년 9만 건에 그쳤던 SSG닷컴의 하루 배송 가능 건수는 16만 건까지 늘었다. 첨단 물류 기술로 배송 상품 가능 범위를 신선식품으로 적극적으로 넓힌 결과다.
업계의 디지털 물류 전환 경쟁도 치열하다. 롯데쇼핑은 영국 온라인 유통기업 오카도의 리테일 테크 기술을 적용한 최첨단 물류센터를 2025년 부산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쿠팡도 지난해 AI, 물류 로봇 등 혁신 설비가 대거 투입된 대구 풀필먼트센터를 가동했다. 컬리도 올해 가동을 앞두고 있는 평택, 창원 물류센터에 자동화 설비 등 1000억원 이상의 돈을 투자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가고 있지만 온라인 장보기 등을 경험했던 소비자들의 습관은 그대로 유지되며 더욱 깊어지고 있다"며 "변화한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해선 오프라인 중심의 유통 업체들도 디지털 대전환에 서두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