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CJ제일제당과 쿠팡이 마침내 화해했습니다. 2022년 말 납품단가 갈등을 빚으며 '햇반 전쟁'을 시작한지 1년 8개월여 만의 일입니다. 두 회사가 '직거래'를 재개하기로 하면서 이제 쿠팡의 로켓배송을 통해 CJ제일제당의 주요 제품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게 됐는데요. 이미 지난 14일부터 비비고 만두 등 냉동·냉장 및 신선식품 판매가 재개됐고, 다음달부터는 햇반, 스팸 등 상온 상품들도 쿠팡 로켓배송으로 주문할 수 있습니다.
CJ제일제당과 쿠팡은 각각 국내 식품과 이커머스 1위 기업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반드시 필요한 핵심 거래처인 만큼 '납품 갈등'을 질질 끌어가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다툼은 무려 20개월을 끌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저격'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났죠. 두 회사가 1위이다보니 오히려 '강 대 강'으로 맞붙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갑질 당했다"
CJ제일제당과 쿠팡의 햇반 전쟁은 2022년 11월 쿠팡이 갑자기 CJ제일제당의 주요 품목에 대한 발주를 중단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러자 CJ제일제당은 쿠팡이 2023년 마진율 협상을 진행하면서 과도한 요구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제품 납품단가를 낮추고 물량을 늘려달라는 요구였는데, CJ제일제당이 응하지 않자 쿠팡이 발주를 중단했다는 겁니다. 원하는 마진율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쿠팡에서 CJ 제품을 팔아주지 않겠다는 일종의 '유통사 갑질'이었죠.
그러자 쿠팡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마진율 협상이 난항을 겪긴 했지만, 오히려 CJ제일제당이 '갑질'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CJ제일제당이 납품단가를 일방적으로 올리고 약속한 발주 물량도 지키지 않았다는 겁니다.
납품단가 협상은 유통사와 제조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유통사는 제조사로부터 제품을 사들여 이를 소비자에게 되파는데요. 제조사는 당연히 유통사에게 더 비싼 가격으로 물건을 팔고 싶을 겁니다. 반대로 유통사는 제조사로부터 제품을 싸게 사들여야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소비자 판매가격을 일방적으로 조정하는 건 어려우니 제조사의 납품 단가 책정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유통사가 제조사에게 일방적으로 가격을 낮춰달라고 요구하는 갑질을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직접 물건을 판매하기 어려우니 유통사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죠.
게다가 쿠팡은 현재 연매출 40조원을 내다보는 이커머스 1위 기업입니다. 햇반 전쟁이 시작된 2022년 연매출은 26조5917억원에 달했을 정도였죠. 이런 1위 이커머스의 요구를 제조사가 거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이미 2019년 LG생활건강은 쿠팡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기도 했습니다. LG생활건강은 국내 생활용품 1위 기업인 동시에 1위 탄산음료 코카콜라의 한국 사업권을 갖고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CJ제일제당은 평범한 제조사가 아닙니다. 국내 식품업체 1위 기업입니다. 지난 상반기 기준 CJ제일제당의 국내 주요 시장 점유율은 가정용 설탕(76%), 가정용 밀가루(62%), 캔햄(62%), 가정용 냉동만두(45%) 등에서 1위입니다. 특히 즉석밥 햇반은 상반기 시장점유율 70%의 압도적 1위 브랜드입니다. 브랜드 충성도도 상당히 높습니다. 이외에도 비비고, 고메, 백설 등의 브랜드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오히려 두 회사가 금방 협상을 타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CJ제일제당 입장에서는 1위 이커머스라는 판로를, 쿠팡 입장에서는 1위 식품 브랜드들의 제품을 놓치기는 힘들테니까요. 그러나 예상과 달리 두 회사는 계속 서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택배·화장품까지 경쟁
쿠팡은 CJ제일제당을 대체할 기업들을 내세웠습니다. 오뚜기, 하림 등 즉석밥 발주량을 늘렸고 중소중견기업 제품들도 발굴했습니다. 지난해 6월에는 CJ제일제당을 겨냥해 "대기업이 빠지니 대박 난 즉석밥 중소 식품업체들이 있다"는 내용의 자료를 내기도 했습니다.
CJ제일제당도 쿠팡을 대신할 판로를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쿠팡 외의 이커머스에서 대규모 할인행사를 벌였고, 신세계그룹 유통사, 마켓컬리 등과도 손을 잡고 공동 상품 개발에도 나섰습니다. 올해 초에는 알리익스프레스에 햇반과 비비고 만두 등 대표 제품을 입점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양측이 좀처럼 갈등을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일각에서는 쿠팡과 CJ제일제당이 아닌, 쿠팡과 CJ그룹간의 신경전이 아니냐는 시각도 나왔습니다. CJ제일제당이 속한 CJ그룹과 쿠팡이 여러 분야에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대표적으로 CJ그룹은 2020년 신세계그룹, 네이버와 맞손을 잡으며 '반 쿠팡 연합'을 만들었습니다. 2022년에는 CJ대한통운과 네이버가 '내일 도착' 서비스를 강화하는 데 협력하며 쿠팡을 위협했습니다.
쿠팡의 택배업 진출도 CJ그룹에게는 위협요소입니다. 쿠팡은 2021년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를 통해 택배업 자격을 획득했는데요. 쿠팡에 입점한 소상공인 제품을 당일·익일 배송하는 '로켓그로스' 등 일종의 택배업을 하고 있습니다. CLS는 현재 쿠팡 판매 물량만 배송하고 있고 일반 택배를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택배시장 점유율 2위까지 오르며 CJ대한통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쿠팡은 온라인 화장품 시장에서도 CJ올리브영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에는 아예 올리브영을 공정위에 신고하기도 했습니다. 중소 화장품업체들이 수년간 쿠팡에 입점하지 못하게 하는 '갑질'을 했다는 이유에서였죠. 공정위는 지난 5월 이 혐의에 대해 최종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대체제 없었다
이렇게 강하게 대치하던 CJ제일제당과 쿠팡이 화해의 물꼬를 트기 시작한 건 올해 초로 추정됩니다. 지난 3월 쿠팡은 쿠팡플레이를 통해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미국 MLB 월드시리즈 서울투어를 진행했는데요. 이때 강한승 쿠팡 사장의 초청으로 손경식 CJ그룹 회장과 강신호 CJ제일제당 부회장이 고척 스카이돔을 찾았습니다.
야구장에서 경영진들의 만남이 이뤄지고 약 5개월 만인 이달 마침내 CJ제일제당과 쿠팡은 다시 손을 잡기로 했습니다. 이는 양측 모두 결국 '대체제'를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쿠팡이 햇반을 대신할 제품들을 아무리 찾는다 해도 시장 점유율 70%인 햇반의 빈자리를 메꾸긴 어려웠습니다. CJ제일제당 역시 마찬가지였겠죠. 쿠팡의 '와우 회원'은 지난해 말 기준 1400만명입니다. 온라인 판매에 힘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쿠팡을 외면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특히 쿠팡 입장에서 더 아쉬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알리·테무 등 C커머스가 초저가 제품을 내세워 공세를 펼치고 있는 만큼, 검증된 국내 제품으로 경쟁력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쿠팡은 최근 공정위로부터 162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습니다. 쿠팡이 자체 브랜드(PB) 상품 판매를 늘리기 위해 검색 순위 알고리즘을 조작했다는 이유에서였는데요.
PB 확대로 제재를 당한 쿠팡 입장에서는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NB(National brand), 즉 일반 제조사 제품 구색을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쿠팡이 올해 초 LG생활건강과도 4년 9개월 만에 화해한 것도 이런 이유였을 겁니다.
두 회사의 화해가 실제로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체감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CJ제일제당과 쿠팡이 다툰 지난 20개월 동안에도 쿠팡 고객들은 여전히 CJ제일제당 제품을 쿠팡에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CJ제일제당 제품은 쿠팡이 직매입하는 로켓배송에서만 빠졌을 뿐, 일반 판매자 배송 상품은 계속 판매됐기 때문이죠. 다음달부터 로켓배송에 다시 입점하는 햇반은 지금도 일반 판매로는 구매할 수 있습니다.
서로 굽히지 않으려는 1위 기업들의 자존심 싸움도 이렇게 끝났습니다. 앞으로도 실익 없는 다툼 대신 소비자들을 위한 공정한 경쟁이 이어지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