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잠잠했던 중소기업·소상공인 전용 데이터홈쇼핑(T커머스) 신설 논의가 다시 시작됐습니다. 최근 한국유통학회가 중소기업·소상공인의 판로 지원 방안을 논의하는 포럼을 열면서인데요. 판로라고 돼있긴 하지만 정확히는 중소기업·소상공인 전용 데이터홈쇼핑이 주된 의제였습니다. 티몬·위메프의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절차 개시에 따른 납품대금 지급 우려 등으로 불안한 환경 속에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위한 판로, 즉 데이터홈쇼핑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중소기업·소상공인 전용 데이터홈쇼핑은 말 그대로 중소기업 제품과 소상공인 제품만 100% 편성하는 데이터홈쇼핑을 말합니다. 현재 국내에는 10개의 데이터홈쇼핑 채널이 승인을 받아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중 중소기업·소상공인 전용으로 운영되는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특히 중소기업계는 이들 10개 채널 중 9개가 대기업 계열사이기 때문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판로를 확보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주장을 계속해왔죠.
중소기업을 위해
홈쇼핑은 중소기업·소상공인에게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은 판로입니다. 일반적인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채널에는 매대가 한정돼있고 대기업과도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이 판로를 개척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TV홈쇼핑과 데이터홈쇼핑은 중소기업 제품 편성을 계속 확대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입점이 쉽습니다.
홈쇼핑의 정산 주기 역시 일반 대형마트보다 훨씬 짧습니다. 대형마트의 경우 정산 주기가 20~30일 가량인데요. 임대료 등 한달 단위로 지출되는 비용 때문에 다소 긴 편이라고 하죠. 반면 홈쇼핑의 경우 정산 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대형마트보다 적어 정산 주기가 약 7일~20일 정도로 비교적 짧습니다. 데이터홈쇼핑 SK스토아의 경우 지난해 8월 정산주기를 기존 10일에서 3일까지 단축하기도 했죠.

하지만 홈쇼핑이 무조건 중소기업·소상공인에게 유리한 판로인 것만은 아닙니다. 수수료율이 높기 때문인데요. 지난해 9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이해민 의원(조국혁신당)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TV 홈쇼핑‧데이터홈쇼핑별 운영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3년 TV홈쇼핑 상위 3개 사업자의 중소기업상품 판매수수료율은 모두 30%를 넘었습니다.
데이터홈쇼핑 역시 10개 사업자 중 7개 사업자의 중소기업상품 판매수수료율이 30%를 넘었습니다. 일부 데이터홈쇼핑의 경우 전체 상품 평균 판매수수료율보다 중소기업 상품 판매수수료율이 더 높았습니다. 그래서 중소기업계에서는 중소기업·소상공인 전용 데이터홈쇼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더 낮은 판매수수료율을 적용해 더 많은 중소기업·소상공인 상품을 소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많이 파는데...
하지만 데이터홈쇼핑업계는 이 같은 주장에 난색을 표합니다. 중소기업·소상공인 전용 데이터홈쇼핑이 신설된다 하더라도 중소기업·소상공인의 판로 개척에 실효성이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TV홈쇼핑과 데이터홈쇼핑에서 많은 중소기업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7개 TV홈쇼핑 사업자의 중소기업 편성비율은 2023년 72.4%에 달합니다. 데이터홈쇼핑의 경우 70% 의무 편성비율 기준이 있어 대부분 70% 이상 중소기업 제품을 편성해 판매합니다.
홈쇼핑의 중소기업 협력업체 수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TV홈쇼핑협회에 따르면 7개 TV홈쇼핑과 10개 데이터홈쇼핑의 중소기업 협력업체 수는 2019년 6127곳에서 2023년 6723곳으로 늘어났습니다. 전체 협력업체 중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9년 77.1%에서 2023년 82.1%로 올랐죠.

중소기업계에서는 10개 데이터홈쇼핑 채널 중 9곳이 대기업 계열이라고 비판하지만 대기업 제품을 우선하지도 않습니다.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대기업 제품은 대부분 가전, 화장품, 건기식 등 일부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의류 등 주요 상품의 경우 대부분 중소기업 제품입니다. 그래서 데이터홈쇼핑에서 판매되는 상품 대부분이 중소기업 상품입니다.
또 홈쇼핑 방송을 위해서는 대량의 제품이 필요하기 때문에 협력사는 대량 생산은 물론 재고 관리도 가능해야 합니다. 판매뿐만 아니라 반품, AS 등도 가능해야 하죠. 그래서 홈쇼핑 입점은 무척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많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는 그럴만한 여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 홈쇼핑에서 소개되는 중소기업이 대부분 겹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 TV홈쇼핑에서 소개된 제품이 다른 데이터홈쇼핑에서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중소기업·소상공인 전용 데이터홈쇼핑이 생긴다 해도 결국 현재 TV홈쇼핑, 데이터홈쇼핑에서 판매되는 제품들이 주로 소개될 수 있겠죠.

일각에서는 중소기업계를 대표하는 중소기업중앙회가 홈앤쇼핑 때문에 중소기업·소상공인 전용 데이터홈쇼핑 신설을 주장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홈앤쇼핑은 7개 TV홈쇼핑 중 데이터홈쇼핑 채널 승인을 받지 못한 2개사 중 하나입니다. 홈앤쇼핑의 최대주주는 중기중앙회로 32.83%(658만6000주)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요.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이 기타비상무이사로 이사회에 속해 있습니다.
홈앤쇼핑은 매출액 4000억원대, 영업이익 200억원대에 수년째 정체돼 있는데요. 신규 데이터홈쇼핑 채널 승인을 받는다면 새로운 먹거리를 가질 수 있겠죠. 실제로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중소기업·소상공인 전용 데이터홈쇼핑 신설에 대한 의지가 상당히 강합니다. 김 회장은 지난 2023년 제27대 중기중앙회장 출마를 할 당시 중소기업·소상공인 전용 데이터홈쇼핑 채널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한 바 있습니다.
최근 홈쇼핑업계는 TV시청 인구 감소 탓에 실적 악화를 겪고 있습니다. 대기업 홈쇼핑들마저 TV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만큼 무작정 새 TV 판로 개척을 외치기보단 중소기업·소상공인을 위한 세심한 고민이 필요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