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조원 규모 퇴직연금시장에 윤활유 역할을 할 제도도입으로 기대됐던 퇴직연금 관련법 개정안이 무더기로 폐기된다.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도 상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는 21대 국회에서는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2016년 5월말부터 시작된 20대 국회 임기 동안 접수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하 근퇴법) 개정안은 총 15건이다. 각각의 개정안은 퇴직연금 디폴트옵션과 기금형제도 도입 등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개정안은 모두 폐기될 예정이다. 20일 제20대 국회 본회의에 근퇴법 개정안 15건은 모두 상정되지 못했다. 임기 내 처리되지 못한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근퇴법 개정안은 그간 금융투자업계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퇴직연금 적립금은 매년 가파르게 증가해 지난해 220조원을 돌파했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수익률이 단적인 예다. 작년 퇴직연금 연간 평균 수익률은 2.3%로 시중은행 예·적금 금리 수준을 소폭 웃돌았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연금 재원의 자산가치 상승효과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적립금의 90%가량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금 특성상 보수적인 운용이 선호된 까닭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실적배당형상품 유인책은 마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유인책은 구체적인 운용지시 없이도 사전에 약속한 투자상품에 재원이 자동 투입되게 한 디폴트옵션 제도가 대표적이다. 독립수탁법인을 설립해 여러 곳의 재원을 한꺼번에 굴려 수익을 극대화하는 기금형 제도도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교육을 통해서 투자상품 가입을 유도할 수 있지만,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며 "제도가 뒷받침돼야만 연금의 효과적인 운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개선을 위해서는 법안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이에 정부와 국회, 업계는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복수의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초당적인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 당시 논의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회 상임위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번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법안이 산더미"라며 "장기적으로 봐야하는 연금제도는 시급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업계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증권사 관계자는 "퇴직연금을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음에도 불구하고 개정안이 폐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다만 현재 개정안이 마련된 상태인 만큼 21대 국회에서는 관련 논의가 수월할 것이란 전망도 따른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법안 통과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수익창출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