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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보험 인사이트]특별약관의 수가 10개 이하로 줄어든다면

  • 2021.01.04(월) 09:30

현재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모두 주력으로 삼는 영역은 제3보험이다. 사람을 피보험목적으로 한 사망, 진단, 수술, 후유장해, 간병 등 질병 담보를 중심으로 상해 담보도 품고 있다. 손해보험사의 통합형 상품은 운전자비용손해와 주택화재와 관련된 여러 특별약관도 포함된다. 이러다보니 약관에서 특별약관의 목차만 10페이지가 넘는다. 하나의 보험 상품에 100여개가 넘는 특별약관이 존재한다. 자녀보험의 태아형의 경우 산모와 태아 및 영·유아기 관련 특별약관이 더해져 그 수가 엄청나다.

제3보험의 엄청난 특별약관 수는 시장 포화로 인한 상품 경쟁 심화가 원인이다. 소비자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특약이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배타적 독점 기간이 끝나면 유사한 특약을 다른 보험사도 따라 출시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정말 이렇게 많은 특약이 필요한지는 의문스럽다.

보험이 담보해야 할 위험은 발생 빈도는 적지만 발생 시 대규모 손해가 예상되는 위험이다. 조기사망, 암과 같은 중대한 질병, 신장투석이나 신체 마비 등 질병으로 인한 합병증과 간병,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의 1~3급 정도의 후유장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처럼 보험이 담보해야 할 위험의 본질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특약은 불필요한 비용을 증가시키고 소비자의 상품 이해력을 낮춘다.

감독 당국은 오래 전부터 소비자의 약관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평가 기준을 만들고 쉬운 약관을 강조했다. 하지만 특별약관의 수가 계속 늘어가는 상황에서 약관을 대면한 소비자의 막막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실제 특정 손해보험사의 통합형 상품 약관은 1300페이지가 넘어간다. 이 때문에 약관을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본인이 선택한 특별약관을 확인할 수 있는 증권을 살피기에도 벅차다.

과도한 특약의 존재는 비대면 채널의 성장을 방해하며 소비자의 모집 채널 선택권을 위축시킨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산업에서 비대면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지만 보험은 여전히 대면채널을 통한 모집이 9할을 넘는다. 엄청난 수의 특별약관의 수는 이를 선택하는 설계 과정을 복잡하게 만든다. 실제 설계사 중에서도 설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가 생각보다 많다. 따라서 소비자가 비대면으로 스스로 보험 상품을 설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 비대면으로 거래되는 주요 보험종목은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이나 필수 특약만을 구성한 운전자나 주택화재보험에 그친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미니보험 등이 출시되고 있지만 이도 고객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마케팅 목적이지 위험을 대비하는 보험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이 때문에 보험 산업 전반에서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고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여 소비자의 잠재적 피해가 예상된다.

살펴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험의 본질로 돌아가는 결단이 필요하다. 소비자를 현혹하기 위해 만든 불필요한 특약은 결국 손해율 악화로 축소되고 폐지되는 일이 흔하다. 따라서 한 개인이나 가정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손해를 보장하는 특별약관에 집중하면 현재 존재하는 특별약관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특별약관의 양적 축소가 진행되면 우선 소비자의 상품 이해력이 증가된다. 얇은 약관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거대한 숲에 가려 숨겨진 본질적인 위험 보장에 집중할 수 있기에 상품설명 부실 등의 문제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또한 보험 가입의 과정이 간소해지기에 여러 측면에서 비용 절감도 가능하다. 그리고 소비자가 직접 비대면 채널을 통해 스스로 필요한 보장을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도 가능해진다. 모집방식에 있어 대면채널의 오래된 독점 구조를 해소할 수 있다면 채널 경쟁을 통해 각 채널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소비자 효용도 증가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로 인한 뉴노멀(New Normal) 등 혁신을 강요받는 시대다. 보험산업도 혁신 키워드를 찾아내기 위해 분주하다. 하지만 꼭 혁신이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등 첨단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보험의 본질로 돌아가 특별약관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일이 현 상황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소비자 효용을 높이는 지름길일 수 있다. 2021년 보험 산업이 스스로 업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할 수 있는 혁신부터 과감하게 시도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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