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시기 실적 잔치를 벌인 시중은행들과 달리 올 한 해 제2 금융권은 수익성 악화를 겪었다. 가파르게 오른 금리 탓에 자금조달 비용이 불어나서다.
저축은행들은 지난해 무리한 고금리 특판으로 이자 비용이 큰 폭으로 불어나면서 9년 만에 적자를 냈다. 자산건전성 또한 지속적으로 악화하는 모양새다. 계속되는 고금리에 이자 부담이 커진 대출 자주가 늘어나며 연체율 또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사들 또한 우울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고금리 기조 속에 자금조달 비용 부담을 떨쳐내지 못하면서 부진한 실적을 냈고 연체율 또한 급등하면서 건전성 악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에도 경기 악화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실적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9년 만에 적자 낸 저축은행업계
31일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79개 저축은행의 올해 3분기 누적 순손실 규모는 1413억원이다. 상반기 누적 적자(960억원 순손실)에 더해 적자가 453억원 늘어났다. 분기 기준으로 올해 1분기597억원 순손실 9년만에 적자 전환한 후 3개 분기 연속 적자다.
이는 지난해 4분기부터 은행권과의 수신 금리 인상 경쟁이 이어지면서 이자 비용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저축은행의 평균 예금금리는 5%대 중반까지 치솟은 바 있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평균 예금금리가 2%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과 6개월 새 금리가 2배 넘게 상승한 셈이다.
시중은행과 달리 저축은행은 정기예금과 적금 등 수신으로만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말 고금리 예금을 내놓으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금리경쟁을 벌여야 했다.
실제로 저축은행 전체 업권의 이자수익은 지난해 3분기 누계 6조9957억원에서 올해 3분기 8조1205억원으로 16%가량 늘어났다. 하지만 올해 3분기 누적 이자 비용은 4조480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9674억원) 대비 2배 넘게 급증했다.
이에 따라 79개 저축은행들의 이자 이익은 4조725억원으로 지난해 동기(5조283억원) 대비 9558억원 감소했다. 예대금리차는 지난해 하반기 6.0%에서 올해 3분기에는 4.9%로 낮아졌다.
문제는 업계의 건전성 지표가 동반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79개 저축은행의 올해 3분기 말 연체율은 6.15%로 지난 2분기 말 5.33% 대비 0.82%포인트 상승했다. 고정이하여신비율도 전 분기말보다 0.79%포인트 상승한 6.40%를 기록했다.
경기 침체로 중소기업과 부동산 관련 기업의 채무 상환 능력이 떨어지면서 기업 대출 연체율은 급등했다. 기업 대출 연체율은 2분기 5.76%에서 3분기 7.09%로 1.33%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연체율은 5.12%에서 5.40%로 0.28%포인트 올랐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생(PF) 대출이 저축은행업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 3분기 말 기준 저축은행 상위 5개사(SBI‧OK‧웰컴‧페퍼‧한국투자) 부동산 PF 연체율은 6.92%로 전년 동기(2.4%) 대비 4.52%포인트 상승했다.
카드사들도 한숨…올 한해 힘들었다
카드사들도 더 나을 게 없다. 카드사들은 조달 비용 상승에 건전성 악화까지 겹치면서 올 한해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올 3분기 8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우리·하나·BC카드)의 합산 당기순이익은 7369억원으로 전년 동기 8626억원 대비 15% 줄었다. 누적 기준으로는 2조781억원으로 전년 2조3530억원과 비교해 11.7% 감소했다.
카드사들은 자금을 꾸준히 조달해야 하지만 사업 특성상 자체 수신 기능이 없기에 자금 대부분을 회사채, ABS 등 시장성 자금조달에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올해 들어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여전채 금리도 덩달아 올라 자금 조달 비용이 크게 늘었다.
아울러 지난 10월부터 은행채 발행 한도 제한 조치가 폐지되자 초우량 물인 은행채 발행이 크게 늘어나며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여전채 투자 수요가 크게 위축됐다.
금융투자협회 채권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레고랜드 발 채권시장 경색으로 6%대까지 치솟았던 여전채 금리(AA+, 3년물)는 올해 초 3% 후반대까지 낮아졌다. 이어 지난 10월 말 5%에 육박(4.938%)할 정도로 반등하며 카드사들의 자금 조달에 부담을 키웠다. 다만 이달 들어 다시 3%대로 하락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해도 낮아진 금리가 실제로 반영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고, 저금리 시절 발행했던 채권 만기가 도래하는 점을 감안하면 조달 비용 증가 부담은 여전한 상황이다.
게다가 고금리 기조는 카드사들의 연체율 상승을 불렀다. 올해 3분기 8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우리·하나·BC카드)의 연체율은 1.63%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 대비 0.41%포인트, 전년 동기 대비 0.82%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카드사들이 대손충당금 적립 규모 증가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카드사 수익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통상 연체율이 오르면 대손 비용을 늘리는데, 대손비용은 추후 수익으로 환입될 수 있지만 당장은 손실로 처리되기 때문에 수익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내년 전망은?…저축은행도 카드도 '어둡다'
내년에도 경기가 흐릿한 탓에 저축은행과 카드사들은 새해를 기대하기 어렵다.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내년 상반기까지 실적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금리 상황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한 건전성 지표와 대출 영업 환경이 개선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업권은 올해와 비슷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아직 서민금융이 어렵고 부동산 PF 등의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신사업이나 사업 규모가 커질 만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축은행을 이용하는 주 차주들이 저신용자이기 때문에 당장 기준금리가 소폭 인하된다고 채무 지불 역량이 나아질 것으로 전망되지는 않는다"며 "연체율 상승이나 건전성 관리 지표를 위한 대손 충당금이 더 늘어나면서 수익성 또한 악화할 공산이 높다"고 전망했다.
카드사들 또한 수익성과 건전성 악화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카드사의 전체 수익에서 가맹점수수료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해서 줄고 있고 간편결제 업체와 제휴를 확대하면서 수반되는 제휴·마케팅비용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신용카드를 이용하는 고객의 상환 능력이 더 나빠지고 있다.
카드사 관계자는 "레고랜드 당시보다는 채권 시장이 안정화되는 국면이지만 저금리 시기 발행했던 채권들이 내년 들어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에 아직 자금조달 면에서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카드사의 경우 고객들의 소비를 해야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인데, 경기 악화로 고객들의 소비 위축이 예상되면서 수익이 나아지길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예측했다.
이정환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한국은행이 내년에 기준금리를 내린다고 해도 한 번에 1%포인트씩 내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저신용 차주들이 체감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내년 경기 전망이 좋지 않고 부동산 또한 PF 부실 문제 등이 남아 있어 저축은행과 여전사 모두 업황 전망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