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금융권을 휩쓴 키워드 중 하나는 단연 '상생금융'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금융당국 수장들은 은행들이 고금리 상황 속에 손쉽게 '이자장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을 쏟아냈다. 이에 금융권은 올초와 연말 두 차례 상생금융 보따리를 풀었다.
그러나 상생금융 지원책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당장 지원 여력이 있는 은행들이 총대를 멨지만, 은행 개인사업자 차주들만 혜택을 본다는 형평성 논란은 물론 잇따른 상생금융 정책이 차주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우려도 나온다.
상생금융 불러온 '대통령의 입'
연초 상생금융 논의를 불러일으킨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올해 2월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 돈 잔치로 인해 국민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원회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잇달아 시중은행들을 방문해 상생금융 지원 협조를 요청했고, 이에 은행들은 각 사마다 1000억원 이상의 지원을 약속하며 상생금융 보따리를 풀었다.
'2차 상생금융'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 10월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0월30일 국무회의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죽도록 일해 번 돈을 고스란히 원리금 대출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은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은행권에 또다시 날을 세웠다.
'2조원+α' 역대 최대 상생금융안 발표한 은행
대통령 발언 이후 은행권은 역대 최대 규모인 2조원 규모의 상생금융 지원방안을 추가 발표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일 뿐 아니라 횡재세(금융소비자보호법·부담금관리기본법)를 통해 걷을 수 있는 재원보다도 많다.
국내 20개 은행들은 내년 2월부터 연 4%가 넘는 금리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개인사업자 187만명에게 1조6000억원을 이자환급(캐시백) 방식으로 돌려준다. ▷관련기사: 은행권, 2조+α 상생금융 보따리 푼다(12월21일)
나머지 4000억원은 은행 자율적으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비롯한 취약계층에게 지원하게끔 했다. 소상공인에 이자 환급이 아닌 전기료나 임대료 등을 지원하는 방식을 사용하거나,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외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등의 방식이다.
국책은행인 산업·수출입은행을 제외한 18개 은행은 최소 2조원을 당기순이익 기준으로 배분해 부담하기로 했다. 이는 은행 당기순이익의 10% 수준이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경우 은행당 2000억~3000억원 정도를 부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1일 은행권 민생금융지원 간담회 이후 있었던 백브리핑에서 "은행들이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자율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은행 간의 차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은행들의 잠재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평가했다.
은행 개인사업자만 지원…형평성 논란도
이처럼 은행들이 십시일반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상생금융 지원방안을 마련했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당국이 발표한 상생금융 지원책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금융지원의 손길이 미쳐야 할 취약 차주들에게는 이번 혜택이 돌아가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2차 상생금융 지원 대상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개인사업자로 좁혀졌는데, 정작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해 더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은 제2금융권 차주들은 이번 상생금융 지원대상에서 소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 내부에서도 상생금융 지원책을 놓고 시끄러운 분위기다. 경기 둔화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만 어려운 것이 아닌데 굳이 이들에게만 지원책을 내놓느냐는 것이다. ▷관련기사: "왜 소상공인만"…은행 영업점서 상생금융 볼멘소리 '난감'(12월23일)
당국은 2금융권의 경우 건전성 우려가 크고 순익 또한 줄어들고 있어 상생금융 지원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면 은행들은 초과 이익을 내는 등 지원 여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은행권 차주들이 상생금융 지원 대상이 됐다는 설명이다.
정작 지원이 필요한 곳에 상생금융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정책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개인병원 등 금융지원이 필요하지 않은 고소득 업종 또한 은행 차주로 이번 개인사업자 금융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생금융이 세금 형태가 아니라면 이득을 본 금융기관이 직접 거래를 한 고객에게 (혜택을)주는 게 맞다"며 "은행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대출을 해준 고객들에게 이자 혜택을 주는 것인데 취약 계층만 대출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유한 계층에게도 혜택을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내 상생금융 정책이 연거푸 나오면서 차주들의 도덕적 해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자를 환급하는 방식은 향후 차주들에게 또다른 금융지원 정책이 있을 수 있다는 기대심리를 제공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며 "일회성 성격을 띤 기부금 등의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더 긍정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