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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밸류업 명암]②주주들은 웃고 차주들은 운다

  • 2024.11.07(목) 08:05

'밸류업' 발표 후 자산관리 핵심 지표 'CET1비율'
대출 늘리면 위험자산 확대…'CET1비율'엔 악영향
중기·중저신용자 대출 문턱 더 높아져…대출편중

은행주가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이후 큰 폭으로 뛰었다. 금융지주들도 시장의 눈높이에 맞춰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일제히 발표했다. 그러나 '주주들은 웃고, 차주들은 우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경기대응은 물론이고 해외 선진은행과 경쟁하기 위한 자본력 확대 등과는 점점 멀어지는 분위기다. 과연 밸류업 프로그램은 금융지주 기업가치를 근본적으로 높일 수 있을까. 은행주 밸류업의 명암을 살펴본다.[편집자]

금융지주들이 일제히 밸류업 정책을 발표하면서 보통주자본(CET1)비율 관리가 금융지주들의 핵심적인 정책으로 올라서고 있다. 다만 CET1비율 관리를 위해서는 대출 문턱이 높아지는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은행들이 위험가중자산(RWA)을 관리하기 위해 위험가중치가 높은 중저신용자 및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 대출은 외면하고, '안전한' 담보대출이나 대기업대출 등만 취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량자산 중심의 대출 편중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금융지주들은 지난달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향후 대출을 보수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은행 수익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이자이익은 순이자마진(NIM)과 대출자산 증감의 영향을 받는데, 이 중 대출자산 성장을 '조절'하겠다고 밝힌 셈이다.

천상영 신한금융지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4분기에는 그룹 위험가중자산(RWA) 한도를 감안해 성장을 최소화하고 수익성 제고와 자산건전성 관리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성욱 우리금융지주 CFO는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금융시장 변동성, 규제 변화, M&A 추진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보다 적극적인 성장 조절과 철저한 RWA 관리를 통해 2025년 중 CET1 12.5% 조기 달성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했다.

대출 '늘리자'→ '관리하자' 된 이유는

금융지주들의 이같은 방침은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 영향이 크다. 주요 금융지주들이 주주환원율을 높이기 위한 기준으로 CET1비율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각 금융지주들이 기준으로 제시한 CET1비율은 13~13.5% 다. 3분기 말 금융지주들의 CET1비율이 대체로 이를 웃돌고 있지만, 3분기 이전까지 각사 상황에 따라 CET1비율이 13%를 밑돌기도 했다. 이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RWA 성장률을 관리해야 한다.

CET1비율의 계산식은 분자가 보통주자본, 분모가 위험가중자산(RWA)이다. 자기자본이 늘어날수록 CET1비율이 오르고, 반대로 대출을 확대해 RWA가 늘어나면 하락 압력이 커진다. 

문제는 각 대출의 성격별로 위험가중치(RW)가 다르다는 점이다. 담보가 있는 대출이나, 차주 신용등급이 높은 대출자산의 경우 위험가중치가 상대적으로 낮다. 또 통상 가계대출보다는 기업대출의 위험가중치가 높고, 기업대출 중에서는 대기업대출이 중소기업대출보다 위험가중치가 낮다.

지난 3분기 CET1비율이 전분기와 같은 12% 수준을 유지하며 '고전'한 우리은행이 최근 기업대출 확대 전략을 잠정 중단한 것도 CET1비율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과 무관치 않다는 게 업계 해석이다. 

특히 우리금융은 밸류업 뿐만 아니라 자본이 소요되는 보험사 인수 등의 과제가 있는 만큼 CET1비율 관리가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관련기사: [기자수첩]두 달 남기고 전략 수정?…혼란 자초한 우리은행(11월 5일)

은행권 한 관계자는 "우리금융의 CET1비율은 타 금융지주에 비해 낮은 편인데, 앞서 발표한 밸류업 정책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RWA 관리가 필요했던 상황이었을 것"이라며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 시 지분투자를 하게 되면 RWA가 급격히 증가하는데 이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에 그나마 여력이 있는 하나은행, 신한은행 등도 올 상반기까지 기업대출에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3분기 혹은 4분기부터는 확연히 속도조절에 나선 분위기다. ▷관련기사: '대출성장보다 밸류업?' 기업대출 드라이브 걸던 하나은행 속도조절(10월 10일)

'위험자산 취급 못해'…대출장벽 더 높아진다

이처럼 금융지주들이 '약속한' 주주환원 정책을 지키기 위해 CET1비율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향후 은행들의 대출 문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RWA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 대출을 보수적으로 취급해야 하는 동시에 배당 재원 확대를 위해선 수익성 등을 더욱 '깐깐하게'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금융지주들은 위험가중자산 대비 이익률인 위험가중자산이익률(RoRWA)을 강조하며 이를 중심으로 한 자산 성장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실상 '안전하고 돈 되는 대출'만 하겠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은행권 또 다른 관계자는 "기업대출 중에서는 마진 폭이 괜찮으면서 위험가중치(RW)가 일반 중소법인에 비해 적은 대기업대출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날 것"이라며 "개인대출 중에서는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취급을 줄이고 고신용자나 담보대출 위주로 대출을 확대하는 곳이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CET1이 주주환원정책의 핵심이 되면서 자산을 무조건 확대하던 것에서 현재 자본이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자산증가율을 관리하는 것으로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수익을 늘리려면 RWA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RWA를 줄이면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과거에는 주주에게 몫을 돌려주는 데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며 "반대로 지나치게 주주 중심으로 회사를 경영하게 되면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프라이싱을 고려해 대출을 확대하고, 자기자본이나 RWA 등을 고려해 적정 수준에서 성장한다면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이 침해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어느 수준까지, 얼마나 빠르게 (주주환원정책을) 진행하느냐에 따라 대출 축소 등의 우려가 현실화 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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