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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두 달 남기고 전략 수정?…혼란 자초한 우리은행

  • 2024.11.05(화) 08:05

'기업금융 명가' 선언 1년만 도루묵
기업대출 갑작스런 선회…영업 혼선
가계대출 목표도…의사결정 '주먹구구' 비판

우리은행 수난사다. 전 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고에 따른 현 경영진 책임론이 잦아드는가 싶더니 최근들어 가계대출 관리 빨간불, 여기에 '기업금융 명가' 선언에도 상처가 났다.

우리은행은 최근 기업대출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그 동안 공격적으로 기업대출 자산을 늘렸는데 자산 증대가 아닌 관리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직원들의 KPI(핵심성과지표)를 10월말 잔액 기준으로 변경했다.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직원들에게 전략 수정으로 혼선을 야기한 부분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9월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내세우고 공격적으로 기업대출 시장 공략에 나섰다. 당시 우리은행은 4년 후(2027년) 기업·가계대출 비중을 6대 4로 전환하고 은행권 기업금융 1위에 오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관련기사: '기업금융 명가 재건' 선언한 우리은행 "4년뒤 1위로"(23년 9월7일)

실제 우리은행의 10월말 기업대출 잔액은 전년 말 대비 19조1141억원 늘어나며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가운데 두 번째로 증가 폭이 컸다. 기업대출이 가장 많이 늘어난 신한은행(19조9955억원)과의 차이도 크지 않다.

한 때 은행권에선 우리은행이 기업대출 자산을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영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그때마다 우리은행은 대기업·우량기업을 중심으로 자산을 늘리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기업금융 명가를 선언하며 공격적으로 영업에 나선지 1년 반도 되지 않아 전략을 수정한 셈이다.

명분은 기업가치제고를 목적으로 한 주주환원을 위해서다. 국내 상장 금융지주들은 금융당국의 밸류업 정책 발표 후 가장 적극적으로 주주환원에 나서고 있다.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위해선 안정적인 자본비율이 필수다. 금융지주들은 보통주자본비율(CET1비율)을 근거로 삼고 있다. 

우리금융 CET1비율은 상장 금융지주 가운데 가장 낮다. 타 금융지주들이 배당 확대를 위한 CET1비율 목표치를 13% 이상으로 설정하고 실제 3분기 말 기준 13%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금융 CET1비율은 12%에 그친다. CET1비율을 개선하려면 위험가중자산(RWA)을 줄여야 하는 탓에 대출자산 증대보다 관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경쟁사들의 주주환원을 따라가기 위해 무리한 결정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가계대출 상황도 다르지 않다. 우리은행은 금융감독당국에 올해 가계대출 목표치로 2000억원을 제출했다. 다른 시중은행과 비교하면 10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 수요가 급증했던 지난 7~8월, 다른 은행이 주담대 수요 조절을 위해 대출금리를 인상할 때 대응이 늦었던 우리은행으로 수요가 집중됐다. 이 기간 우리은행 가계대출이 급격히 증가했다. 

애초 목표치를 지나치게 작게 잡은 탓에 우리은행은 이를 맞추기 위해 부랴부랴 대출을 줄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신용대출 온라인 갈아타기 금리를 인상해 사실 상 대환대출을 막고, 중도상환수수료 면제로 차주들의 상환을 유도하고 있다. 이 역시 궁여지책이다. ▷관련기사: '2000억'의 굴레…우리은행 가계대출 관리 '총력'(10월25일)

이는 고스란히 영업 일선의 부담으로 돌아오고 소비자들에겐 혼란을 준다.

은행의 대출 자산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설정하는 것은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그런 만큼 수 많은 상황을 가정하고 예측한 결과물이라는 게 은행권 설명이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은행의 최근 행보는 국내 금융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5대 시중은행 가운데 한 곳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이란 지적이 나온다. 특히 갑작스런 경영 전략과 KPI 기준 변경은 일선 영업점들의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쌓았던 영업 기반이 흔들릴 경우 우리은행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게 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관리나 기업대출 전략 변경은 그 동안 은행권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직원들의 혼란과 경영진에 대한 불신 뿐 아니라 기업대출 시장은 한 번 놓치면 회복이 어렵다는 점에서 대출을 사실상 중단한 후 어떻게 대응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주먹구구식 경영에 대한 책임은 경영진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와 대출전략 실패는 모두 내부에서 불거진 문제다. 그들이 자초한 우리은행의 수난사,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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