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87위. 반도체·2차전지 장비 제조그룹 원익(WONIK)이 올해 5월 자산 5조원 이상 준(準)대기업 명단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오너 이용한(70) 회장이 창업한 지 43년만이다.
2대(代) 세습이 분수령을 맞고 있다. 우 창업주가 올해를 기점으로 3남매를 계열 지배구조의 맨 꼭대기에 포진시켰다. 가업 경영에도 한 발짝 더 전진 배치했다. 대(代)물림의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삼성전자 성장과 궤 같이 하며 사세 확장
원익그룹은 이 회장이 1981년 10월 창업한 무역업체 원익통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경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27살 때다. 조명·의료기기 및 산업원료를 수입해 판매하는 사업을 벌였다.
1985년 10월 전기(轉機)를 마련했다. 반도체 소재 석영유리(쿼츠웨어) 제조사 한국큐엠이를 인수해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쿼츠웨어를 국산화해 사업 기반을 잡았다. 1997년 7월 증시 상장으로 이어졌다. 1년 뒤인 이듬해 7월에는 모태사인 원익통상을 흡수해 원익석영에서 지금의 ㈜원익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증시 입성을 계기로 기세를 올렸다. 1999년 11월 아이피에스(IPS), 2005년 12월 ㈜아토 등 반도체 장비업체들을 잇달아 사들였다. 메모리 반도체 메이저 삼성전자의 성장과 궤를 같이하며 핵심적인 장비·소재 협력사로 자리를 잡았다.
2020년 12월 2차전지 시장에 진출하는 발판이 됐다. 배터리 장비업체 피앤이(PNE)솔루션을 인수했다. 이듬해 11월에는 2차전지 공정 자동화를 주력으로 하는 ㈜엔에스(NS)를 계열 편입했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은 원익그룹의 거침없는 인수합병(M&A)이 성공을 거뒀다는 방증이다. 작년 총자산 5조31억원에 매출이 2조6600억원이다. 계열사는 87개(국내 54개·해외 33개)사다. 이 중 상장사도 9개사나 된다. 사업 분야는 반도체·2차전지 뿐만 아니라 헬스케어·금융·레저 등에 까지 뻗어 있다.
올 들어 (유)호라이즌 지렛대로 2세 지분승계
원익이 준대기업 반열에 오른 올해는 때마침 이 창업주가 고희(古稀·70)를 맞은 해이기도 하다. 이 회장이 40여년에 걸쳐 키운 가업을 대물림하기 위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강력한 오너십을 유지하는 ‘키’로 활용해왔던 ㈜원익→원익홀딩스 ‘옥상옥(屋上屋)’ 지배체제를 고스란히 2세들에게 물려줬다. 부인 양화영(67) 원익엘앤디(L&D) 감사와의 사이의 장남 이규엽(41) 원익QnC 전무, 차남 이규민(37) 원익IPS 상무, 장녀 이민경(35) 케어랩스 상무다.
이 회장이 개인 금융컨설팅·자산평가 유한회사인 호라이즌을 물려주고, (유)호라이즌에는 1대주주로 있던 ㈜원익 지분을 전량 넘겨줬다. 3남매(100%)→(유)호라이즌(46.33%)→㈜원익(30%·이외 (유)호라이즌 직접지분 1.07%)→원익홀딩스 출자고리를 통해 2세들을 계열 지배구조의 정점에 올려놓았다.
경영 승계 또한 올해를 기점으로 한층 속도를 내고 있다. 장남을 반도체 소재 석영유리(쿼츠웨어) 제조업체인 원익QnC 전무 승진과 함께 글로벌운영센터장(GOC․Global Operation Center)으로 끌어올렸다. 원익QnC는 원익 계열 중 매출 볼륨이나 수익이 압도적인 계열사다.
2016년 3월부터 미래 성장동력인 원익로보틱스의 이사회 멤버로 활동 중인 차남을 주력 ‘5인방’ 중 하나인 반도체·디스플레이·태양 전지(Solar Cell) 제조 장비업체 원익IPS로 이동시켜 사업기획팀장을 맡긴 것도 올해다.
장녀 또한 헬스케어 분야에서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모바일 헬스케어·뷰티케어 플랫폼 케어랩스의 최고전략책임자(CSO)로서 올해 3월에는 병의원 정보시스템 업체 엠디아이티엠와 병원과컴퓨터 2개사의 대표를 맡아 계열 경영일선에 등장했다.
이 창업주의 강력한 오너십 형성 과정과 2세 후계구도를 짚어볼 때가 됐다. ‘가신(家臣)’과 삼성맨으로 이원화 된 전문경영인 체제와 계열사 곳곳에 몸담고 있는 친인척들 또한 원익그룹의 지배구조를 관통하는 기류다. (▶ [거버넌스워치] 원익 ②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