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라하는 중견기업이라면 가업 승계는 늘 세간의 주목을 받는 지배구조 이슈 중 하나다. 후계자에게는 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게 마련이고, 대물림의 시계가 빨라질수록 더 강렬해지고, 그 빛만큼이나 그림자도 진해진다.
중견 시멘트·제지그룹 아세아의 대물림 진화 과정을 되짚어 본 김에, 2대 사주(社主) 이병무(84) 명예회장에 이어 3세 체제의 주역인 두 아들 이훈범(56) 회장과 이인범(54) 부회장의 짙은 그늘에 가려있던 오너 3세를 양지로 불러내 봤다.
이 명예회장의 막냇동생 이윤무(79) 명예회장의 1남1녀 중 장남 이현범(46) 우신벤처투자 전무다. 그렇다고 허투루 볼 존재는 아니다. 그룹의 유일한 금융사를 사실상 책임지고 있어서다.

3대 회장 이훈범 이사직 물려받아
이현범 전무는 현재 아세아㈜를 꼭짓점으로 모태사업의 중추 아세아시멘트․한라시멘트와 제지 부문 주력사 아세아제지 등 15개 지주 체제 계열사 중 아세아제지 주식만을 소유하고 있다. 지분도 0.08%가 전부다. 2008년 10월 장내에서 2500만원가량에 산 주식이다.
부친이 형을 도와 아세아그룹을 동반 경영했지만 ‘만년 2인자’에 머물렀듯이 이 전무 또한 3세 후계구도에서 일찌감치 논외 대상이었다는 징표다. 게다가 주력 계열사 경영에는 일절 발을 들이지 않았다. 반면 우신벤처투자로 시선을 돌려보면 이 전무의 존재감은 사뭇 달라진다.
1986년 11월 설립된 우신개발금융을 전신(前身)으로 한 벤처캐피탈이다. 2009년 3월 현 사명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아세아그룹 사옥 아세아타워에 본점이 위치한다. 자본금은 100억원이다. 아세아시멘트가 1대주주로서 83.33%의 지분을 소유 중이다. 이외 16.67%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보유하고 있다.
비록 줄곧 전문경영인 대표 체제로 운영하고 있지만 오너 일가 또한 대(代)를 이어 이사회 멤버로 이름을 올려 경영에 참여해 왔던 곳이다. 2003년 3월 이병무 명예회장, 2011년 3월 이윤무 명예회장이 이사회에서 물러난 뒤로는 이훈범 회장이 2013년 5월까지 사내이사로 활동했다.


영업수익 3년 새 1/5 토막…2년 연속 적자
다음 타자가 이현범 전무다. 2014년 3월 우신벤처투자 투자본부 입사와 함께 이사회로 직행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경영대학원 와튼스쿨 경영학석사(MBA) 출신으로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간,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앤컴퍼니 등에서 커리어를 쌓은 뒤다.
현재 이 전무는 삼성생명 및 삼성벤처투자를 거쳐 2008년 6월 영입된 ‘삼성맨’ 이상두 대표와 호흡을 맞춰 우신벤처투자를 이끌고 있다, 아울러 3명의 이사진 중 유일한 오너 일가라는 점에서 보면, 3대 경영자 이훈범 회장이 금융 계열사 경영은 IB맨인 사촌에게 맡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는 ‘[거버넌스워치] 아세아 ⑥편’에서 상세히 얘기했지만, 이윤무 명예회장이 일찌감치 알짜배기 부국레미콘이란 ‘딴 주머니’를 차고 있었던 것처럼, 장차 우신벤처투자 또한 아들인 이 전무 몫이 안 되리란 법은 없어 보인다.
이 전무는 점점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우신벤처투자가 12억원(현 지분 12.3%)을 출자해 발기인으로 참여한 유안타13호스팩의 대표를 맡고 있다. 앞서 2021년 5월 제주맥주(현 한울앤제주) 상장 전 우신벤처투자가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2021년 3월~작년 3월 제주맥주의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경영자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다만 근래 경영 성과는 좋지 않다. 우신벤처투자의 운용자산은 731억원(2024년 말) 수준이다. 2021년 영업수익 366억원에 순이익 273억원을 찍은 뒤 줄곧 뒷걸음질치고 있다. 작년 영업수익이 78억원으로 5분의 1 토막 났다. 특히 2023년 순손실 11억원으로 2014년(19억원) 이후 9년만에 적자로 돌아선 뒤 지난해에는 적자폭이 91억원으로 불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