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 이후 끊이지 않고 있는 보험사 '고무줄 회계' 논란을 끊는다.
보험사 임의로 잡은 무·저해지보험 해지율 가정을 보수적으로 하향시키는 게 골자다. 이를 적용하면 앞으로 무·저해지보험을 팔 때 돌려줄 보험금이 지금보다 더 많이 계산돼 그만큼 부채(책임준비금)를 높여 쌓아야 한다.
보험료도 올려 받아야 할 가능성이 높은데, 시기가 공교롭다. 내년 4월 상품개정 때 예정이율(고객이 낸 보험료를 운용해 거둘 수 있는 예상수익률) 인하까지 겹쳐 보험료 인상 폭이 더 가팔라질 수 있다. 금융당국이 역대급 절판마케팅 판을 깔아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4차 보험개혁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IFRS17 주요 계리가정 가이드라인'을 논의했다고 7일 밝혔다.
보험사가 무·저해지보험 해지율 추정을 더 보수적으로 잡는 게 핵심 안건이다. 완납시점 해지율이 0%에 수렴하는 모형 중 '로그-선형모형(실무상 수렴점 0.1%)'을 강하게 권고했다. 적용 시점은 올해 말 결산부터다.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칼댄다
로그-선형모형을 쓰면 경험통계 반영이 끝나고 예측모형이 적용되는 구간에 지금보다 급격한 해지율 하락이 생긴다. 해지율이 낮아지면 보험사는 그만큼 미래에 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높여 계산해야 한다.
이는 보험부채를 키우고 가용자본 감소에 따른 지급여력비율(K-ICS) 하락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새 수익성 지표인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 등 이익 측면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무·저해지보험은 보험계약을 중간에 해지할 때 지급하는 해지환급금이 아예 없거나 절반 수준으로 낮춘 상품이다. 대신 보험료가 기존 대비 10~40%가량 싸다.
금융당국은 현재 다수 보험사가 무·저해지보험 해지율을 지나치게 높게 예측해 CSM을 부풀리고, 보험료를 싸게 계산해 과당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본다. 실제 올 상반기 기준 보험업계 전체 무·저해지보험 신계약(보장성 초회보험료) 비중이 63.8%에 달했다.▷관련기사 : 당국, 무·저해지보험 해지율 메스…결국 보험료만 오른다(11월4일)
역대급 '절판' 온다
올 연말 결산에서 가이드라인에 맞춰 무·저해지보험 해지율을 낮춘 뒤가 문제다. 당국은 해지율 하락에 따라 높아진 보험료를 내년 4월 상품개정에 반영토록 할 방침인데, 비슷한 시기 예정이율 인하가 예견돼 공교롭다. 보험료 인상 요인이 중첩되는 셈이다.
예정이율은 보험사가 소비자로부터 받은 보험료로 보험금 지급 때까지의 운용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수익률을 의미한다. 본격적인 금리 인하기에 접어들면서 예정이율도 하락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보험사들은 예정이율이 낮아지면 부족분을 메우고자 보험료를 올리게 된다.
쉽게 말해 '보험료가 내년 4월부터 크게 오른다'는 식으로 절판마케팅을 시도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보험료 인상을 무기로 내세워 서둘러 보험을 판매할 수 있는 만큼 불완전판매 우려도 제기된다. 회계 왜곡을 고쳐보겠다는 당국 취지가 악용되는 것이다.
다만 금융당국은 아직 신중한 입장이다. 단기적인 가격 상승 요인이 있지만 보험사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상품을 제공케 하는 게 소비자에게 더 좋은 것으로 판단한다.
당국 관계자는 "보험료는 해지율 외에도 손해율, 사업비율, 이자율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며 "마진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신계약 확대를 노리는 가격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