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 서초구 '알짜 땅'으로 꼽히는 서리풀지구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GB)을 풀어 신규 택지를 조성한다. 미니 신도시급인 2만가구를 공급하고 이중 절반은 신혼부부 장기전세주택으로 배정한다.
인근에서 과천 주암지구, 양재 ICT 특정개발진흥지구 등 다수의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일대가 탈바꿈할 전망이다. 하지만 교통 체증 심화, 토지 보상 등 변수에 따른 공급 지연 우려는 풀어야 할 숙제다.
절반은 신혼부부에게…'아이 낳을 결심'?
국토교통부는 5일 수도권 신규택지 4곳을 지정하고 총 5만4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8·8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의 후속 조치로, 이중 40%인 2만가구는 서울 서초구 서리풀지구에 조성한다.
정부는 앞서 GB 가운데 △이미 훼손된 곳 △대중교통 및 인프라가 확충된 곳 △재원 투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곳을 해제 지역으로 선정키로 했다. 서울시는 서리풀지구가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봤다.
서리풀지구는 서울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강남 생활권인 서초구에 위치한다. 원지동, 신원동, 염곡동, 내곡동, 우면동 일대 221만㎡ 부지다. 서울 중심부(서울시청)에서 약 15km, 강남 도심(강남역)에서 약 5km 거리다.
서울시 동남측에 위치해 성남시, 과천시 경계와 접해 있다. 과천주암 지구는 대규모 도시 개발을 진행 중이다. 지난달엔 양재동 일대의 '양재 ICT 특정개발진흥지구 진흥계획'이 승인돼 인근 개발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지구는 지하철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을 중심으로 경부고속도로 좌우로 기다랗게 조성된다. 식유촌과 선암나들목(IC) 근처에 따로 떨어진 부지도 있다. 청계산입구역과 양재시민의숲역이 가깝고 4호선 선바위역, GTX-C(예정) 양재역 등도 이용할 수 있다. 신분당선 추가 역 신설도 검토키로 했다.
서울시는 서리풀지구를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단지를 육아 친화적으로 설계하고 공급도 신혼부부에게 절반 이상 배정하기로 했다. 서리풀지구 2만가구 가운데 1만1000가구(55%)를 신혼부부 장기전세주택2(미리 내 집)로 공급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주택 가격 안정, 공급 물량 확대, 저출생 문제 극복 등을 반영해 신혼부부에게 절반의 물량을 배분했다"며 "특히 서울시가 오랫동안 견지했던 GB 해제라는 결단을 내리는 데는 대국민 설득이 가능한 명분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저출생 대책과 연관 지어 물량을 배분했다"고 설명했다.
오 시장은 "소수 기업이나 개인이 개발 이익을 사유화하지 않도록 공공주택 중심으로 개발하겠다"며 "높은 주거비로 인해 자녀 계획을 망설이는 신혼부부가 아이 낳을 결심을 하도록 돕겠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의 미리 내 집을 예로 들며 "어린이집, 서울형 키즈카페, 미니 워터 파크 등 육아 환경을 갖춘 아파트로 기획해서 설계에 반영할 것"이라며 "대중교통도 최대한 확보해서 안정된 주거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교통 체증·토지 보상 어쩌나
서울시는 이번 서리풀지구 조성으로 12년 만에 서울에서 대규모 GB를 해제하게 됐다.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에서 서초구 내곡동, 강남구 세곡동 위주로 GB를 해제해 보금자리주택 용지를 공급한 바 있다.
GB를 해제해 공급하는 주택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는다. 미리 내 집의 경우 최장 20년 거주한 뒤 분양전환을 할 때 자녀가 두 명 이상이면 시세의 90%, 세 명 이상이면 시세의 80%로 분양받을 수 있다.
이에 강남권에서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수요자들의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국토부는 서리풀지구를 포함한 4개 수도권 신규택지를 2029년부터 분양해 2031년엔 입주를 시작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교통 체증 심화, 고밀 개발, 토지 보상 등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지금도 양재 쪽은 차량 혼잡도가 높은데 서리풀지구를 비롯해 일대 여러 개발이 이뤄지게 되면 향후 교통 체증이 더 심화할 수 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서리풀지구는 배후 주거가 부족한 지역이라 택지 조성지로 적합해 보인다"면서도 "다만 일대에서 개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교통난이 더 심해질 수 있고 향후 주택 공급이 몰릴 수도 있다"고 봤다.
신분당선에 추가 역 신설을 검토하기로 했지만 위치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반발이 나올 여지도 있다. 현재로선 양재시민의숲역과 청계산입구역 사이에 정차역을 신설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렇게 되면 역 간 간격이 상대적으로 좁아져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
고밀 개발 우려도 나온다. 서리풀지구는 221만㎡에 2만가구를 공급할 계획인데 땅의 크기에 비해 주택 공급량이 많다는 지적이 있다. 고양대곡지구의 경우 199만㎡ 부지에 9400가구를 공급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고밀 개발을 해야 하는데 인근에 청계산이 있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규정상 GB 해제 시 용적률이 250%지만 필요한 경우 더 올릴 수 있다"면서도 "어느 정도 할지는 전체 사업 계획을 짜면서 배치 등을 봐야 한다"고 했다.
토지 보상이 순조롭게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주택 사업에서 보상이 밀리면 공급 계획도 밀리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에 발표한 후보지들은 대부분 농지로 사용되고 지장물이 적어 다른 지구 대비 (보상이) 빨리 될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