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이자장사'에 대한 경고 뿐 아니라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취약차주의 리스크도 은행들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융권 안팎에선 정부의 관치금융으로 운신 폭이 좁아진 가운데 퍼주기 정책에 대한 부담도 고스란히 져야 한다는 점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금융당국은 정부의 취약계층 금융지원으로 금융권도 일부 혜택을 본다고 일축했지만 리스크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퍼주기 논란…이유는
금융위원회는 지난 14일 '금융부문 민생안정 추진과제 및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논란 뿐 아니라 퍼주기 정책이라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됐다.
120조원이 넘는 금융지원 정책중 문제가 되는 부분은 소상공인과 개인 채무지원과정에서 원금을 일부 탕감해 준다는 내용이다. 금융당국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빌린 부채 규모가 너무 크다는 판단 아래 30조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매입해 채무조정에 나서기로 했는데, 연체가 90일 이상 발생한 부실차주는 최대 90%의 원금을 감면해주는 방안을 담았다.
또 저신용 청년 채무 이자부담을 최대 50% 경감하고 연체 이자는 감면하는 등 '빚투(빚내서 투자)족' 지원 방안도 마련했다.
이번 대책 발표에 앞서 지난 1일에는 서울회생법원이 코인과 주식 등에 '빚투'한 이들이 개인회생을 신청하면 투자 손실금에 대해 변제금 산정시 반영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바 있다. 무리한 투자로 손실본 금액에 대해서도 탕감해준다는 것이어서 성실히 빚을 갚아온 사람들과의 형평성 논란이 제기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금융 지원 정책이 논란에 불을 붙인 셈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직접 나서며 원금 일부 탕감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김주현 위원장은 "정상적으로 채무상환이 어려운 차주에 대한 대책도 있지만 일반 국민에 대한 대책도 포함돼 있다"며 "취약계층에 대해선 정상적으로 부채를 상환할 수 있도록 채무조정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필요한 지원책"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퍼주기' 진화 나선 금융위원장 "생동감 있게 하려다…"(7월18일)
'첩첩산중' 부담 커지는 은행
이같은 퍼주기 정책 논란은 은행권 리스크 확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금융사들은 그동안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한 저금리시기에 대출자산을 빠르게 늘렸고, 작년 하반기부터는 기준금리가 인상되면서 역대 최고 수준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이자수익에만 집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던 게 사실이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은행들에게 "지나친 이자장사에 대한 비판이 크다"고 경고했고, 금리공시 제도개선을 통해 은행들을 압박했다.
금융 소비자 입장에선 은행들이 대출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금융권에선 관치금융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자유로운 시장 경제를 강조하며 출범한 윤석열 정부인만큼 기대가 컸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여기에 금융 지원책중 상당 부분을 은행들이 떠안아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더 커졌다. 금융당국은 민간 금융사 참여를 유도해 오는 9월 코로나19 금융지원(만기연장‧이자상환유예 등)이 종료돼도 주거래 금융기관이 책임과를 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만기가 종료되는 대출 가운데 90~95% 가량은 지원 조치를 추가하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은행권에선 금융지원 종료 시점에 자체적으로 차주들에 대한 재신용평가 등을 통해 만기 연장이나 채무상환 조정 등을 결정해야 하지만 금융당국이 직접 나서 90~95%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에 대해 김주현 위원장은 "취약계층뿐 아니라 일반 계층에 대해서도 부담을 줄이는 조치가 있어 금융기관들이 혜택을 보는 부분도 있다"며 "금융권과 대화를 통해 풀어나갈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큰 틀만 제시한 상태라 구체적인 지원책이 나와야 리스크가 어느 정도 수준일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가 제시한 숫자는 과거 경기가 좋을 때도 반영된 채무조정 비율을 근거로 한 숫자라 현 시점에선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코로나 금융지원으로 은행들의 대출자산이 급격히 늘어나는 등 수혜를 본 부분이 있어 정부 압박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금리에 이어 금융지원까지 압박 강도가 갈수록 세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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