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의 기업 구조조정이 또 한 번 꼬였다. 기업 구조조정 관련 최대 과제인 HMM 경영권 매각 딜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이 매각 속도전을 강조했던 만큼 더 뼈아플 수밖에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태영건설 워크아웃 부담도 떠안은 상황이다. 산업은행은 태영건설 워크아웃을 위한 기업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 돌발변수가 없다면 무난하게 진행될 것이란 예상이 많지만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시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예견됐던 HMM 경영권 매각 딜 무산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지난해 12월18일 HMM 경영권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팬오션·JKL컨소시엄(하림그룹)을 선했다. 이후 약 2개월 간 본협상을 진행했지만 지난 7일 매각 최종 결렬을 발표했다.
HMM 매각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워낙 높은 몸값으로 입찰 참여 기업들의 자금동원능력에 의구심이 컸던 까닭이다. 당시 입찰 참여 기업들이 HMM 경영권을 인수하면 '고래 삼킨 새우'가 될 것이란 비판적 시선이 많았다.
지분 매각 후에도 산업은행과 해진공이 주식전환이 가능한 영구채를 보유하고 있어 주식으로 전환 시 경영권을 인수한 기업과 지분율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도 변수로 꼽혔다. 실제 협상 과정에서 산업은행과 하림그룹 측은 경영 주도권을 두고 이견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HMM이 유일한 국적 해운사인 만큼 매각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컸다. 지난해 10월 진행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은 "적격 인수자가 없어도 이번 입찰에서 반드시 매각할 것인가"라고 강석훈 회장에게 물었고, 강 회장은 "적격 인수자가 없다면 매각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당시 산업은행은 입찰에 참여한 기업들이 적합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선협상대상자와 협상이 결렬되면서 우려는 현실이 됐다.
강석훈 회장은 지난해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HMM 경영권 조기 매각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산업은행이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선 자본비율의 안정적인 유지가 필요한데 HMM 주가 변동성이 부담이라는 이유에서다.
강 회장은 "HMM 주가가 1000원 하락하면 산업은행 BIS비율(국제결제은행 기준 자본비율)은 0.07%포인트 하락하고 이로 인해 1조8000억원의 자금공급 여력이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번 매각 딜 무산과 함께 해운업황 부진도 겹치면서 시장에선 당분간 HMM 경영권 매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산업은행 역시 향후 구체적인 재매각 일정은 잡지 않은 상태다.
산업은행 입장에선 HMM 경영권 매각에 실패하면서 자본비율 부담이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3분기말 기준 산업은행 BIS비율은 13.66%로 전 분기(14.11%)보다 0.45%포인트 하락했다. BIS비율 하락 원인으로는 산업은행이 최대주주이자 현재 매각을 진행하고 있는 HMM 주가 부진과 달러·원 환율 상승에 따른 외화대출자산 증가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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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건설도 부담인데…아시아나항공 유일한 위안
HMM 매각이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산업은행 기업 구조조정 현안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지난 2022년 옛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경영권을 한화그룹에 매각하면서 1순위 과제를 해결했지만 이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KDB생명은 지난해 하나금융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하나금융이 인수를 포기하면서 매각 딜이 무산됐다. 한화오션 후 최대 현안이던 HMM 경영권 매각 마저 물거품되면서 꼬인 실타래를 전혀 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영권 매각 딜 무산은 강석훈 회장 취임 후 두 번째다.
여기에 태영건설도 부담이다. 부동산 PF 부실 진앙지였던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우여곡절 끝에 워크아웃이 개시됐다. 현재 태영건설 금융채권자협의회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주도로 기업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상화 가능성 등이 인정되면 채권자협회회는 기업개선계획을 수립해 의결 절차를 진행한다. 기업개선계획에는 태영그룹의 자구계획과 채권자의 채무조정 방안, 신규 자금조달 방안 등이 포함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기업개선계획이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주채권은행으로서 당분간 태영건설 관리를 주도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위안거리는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의 합병 승인 절차가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화물사업부 매각을 승인하면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양사의 합병을 '조건부 승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서 경쟁당국인 일본도 양사 합병을 승인하면서 앞으로 미국만 승인하면 아시아나항공 공과 대한항공 합병은 마무리 절차에 돌입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