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중간 지주사로의 전환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은 SK 그룹의 오랜 숙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이 모인다. 왜 이 시점에서 지배구조 틀 자체를 바꾸려고 하는 것인지, 이를 통해 회사의 방향성은 어떻게 될 지를 짚어본다. [편집자]
SK텔레콤의 지배구조 개편 방식으로 유력한 것이 인적분할이다. 회사를 통신사업 중심의 사업회사와 중간지주사로 나누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를 통해 통신사업 회사에는 이동통신(MNO) 등 주력 통신 관련 계열사를 자회사로 편입하고, 중간지주사에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해 11번가와 웨이브·원스토어·티맵모빌리티·SK플래닛·ADT캡스 등을 배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신은 통신끼리 묶어 사업 시너지를 내고 비(非)통신 사업들은 독립적인 투자 및 인수합병(M&A) 결정과 함께 기업공개(IPO) 등으로 기업가치를 한층 끌어올린다는 그림이다. 이 과정에서 인적분할을 계기로 존속법인인 통신사업 회사가 보유 중인 자사주를 매각, 투자 재원 등에 활용할지 등에 관심이 모인다.
◇'脫통신' 의지…ICT 자회사 살아난다
SK텔레콤이 대대적인 새판짜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다. 현재 SK텔레콤의 시가총액이 23조원이며, 지분 20%를 들고 있는 자회사인 SK하이닉스의 몸값은 100조원에 달하는데 비해 시장에서의 평가는 그에 못 미친다고 보고 있다.
증권가에선 지배구조 개편 이후 SK텔레콤의 기업가치가 현재보다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NH투자증권은 SK텔레콤의 현 시가총액이 분할 이후 약 15% 가량 늘어난 27조원(SKT+SKT홀딩스)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신설법인인 SKT홀딩스가 그룹 내 사업 포트폴리오를 산업 트렌드에 맞춰 지속적으로 조정하는 '투자형 지주사' 역할을 해낼 것이란 가정에서다. 기업분할과 주가의 관계는 '분할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데 SK텔레콤은 '탈(脫)통신'을 내걸고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성장성이 높은 보안(ADT캡스)을 비롯해 커머스(11번가), 미디어(웨이브) 등을 서비스하고 있으나 통신업으로 분류되면서 그동안 시장에서 제대로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중간 지주사 전환을 통해 이동통신 그늘에 가려졌던 비(非)통신 사업의 매력이 선명하게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간지주사로의 전환은 SK텔레콤이 '뉴(New) ICT 사업'이라고 부르는 보안과 커머스, 미디어 등의 역량을 강화시켜 각 계열사의 몸값이 자연스럽게 올라갈 전망이다.
인적분할 이후 중간지주사이자 신설법인 SKT홀딩스의 초대 대표를 박정호 사장이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중간지주사 산하 계열사로 편입되기 때문에 현재 SK하이닉스 부회장직을 겸임한 박 사장의 선임이 자연스럽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존속법인이자 주력 통신사업 회사는 유영상 현 MNO 사업 대표가 수장을 맡을 전망이다.
박 사장은 그간 자회사 IPO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내왔다. SK텔레콤은 ▲ADT캡스 2022년 ▲원스토어 및 11번가 2023년 ▲콘텐츠웨이브 2024년 ▲티맵모빌리티 2025년 등 자회사의 순차적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상태다.
◇공정위 '눈치'...합병은 2~3년 뒤 예상
업계에 따르면 이번 지배구조 개편으로 신설할 중간지주사는 SK그룹 지주사인 SK와 당분간 합병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인적분할 과정에서 오너의 지배 구조 강화 등으로 논란이 됐던 그룹 지주사 SK와 신설법인의 합병을 당분간 보류키로 한 결정이다.
당초 증권가에선 SKT홀딩스에 편입된 SK하이닉스를 손자회사에서 자회사로 격상시키기 위해 SK와 SKT홀딩스와의 합병을 진행할 것이며, 이를 위해 SKT홀딩스의 주가를 의도적으로 떨어트릴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를 의식해 주주친화정책에 초점을 맞춤에 따라 합병 시점을 2~3년 후로 미룰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공정위는 SK의 기업 심사 3건을 진행하면서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SK텔레콤 주주들의 반발이 심하다면 중간지주사 전환 자체가 어려울 것이란 계산도 있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SK와의 합병 가능성은 단기간에 나타나기 힘들 것"이라며 "SK의 최대주주인 최태원 회장의 지분율이 18.4%밖에 되지 않아 SKT홀딩스와의 합병을 추진할 경우 지분율이 11%까지 떨어질 수 있고 이혼소송, 후계자 승계까지 많이 남아있는 시간을 고려할 때 당장 추진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1조6천억' 자사주 통신사업 활용 전망
SK텔레콤이 기존 보유한 자사주의 향방에도 관심이 모인다. SK텔레콤은 작년말 기준 자사주 942만주를 들고 있다. 전체 발행주식 8075만주의 11.6% 수준이다. 인적분할을 하면 이 자사주는 어떻게 될까.
우선 존속법인인 SKT 소유로 넘어간다. 아울러 이 자사주 만큼인 신설법인 SKT홀딩스의 신주가 SKT에 할당된다. SKT가 신설법인 SKT홀딩스의 11.6%의 주주가 된다는 것이다. SKT는 분할 후 자사주 11.6%도 그대로 보유하게 된다. 즉 존속법인 SKT는 자사주 11.6% 외에도 신설법인 SKT홀딩스 지분 11.6%를 갖게 된다는 얘기다.
증권 업계는 SKT홀딩스 지분 11.6%의 가치가 약 1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SKT홀딩스가 보유한 SK하이닉스, ADT캡스, 원스토어, 콘텐츠웨이브, 티맵모빌리티 등 자회사의 기업가치 총합을 약 14조원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인적분할 이후 SKT는 장기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SKT홀딩스의 지분 11.6%를 처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상호출자 우려 해소를 위함이다. 분할 후 SK는 SKT와 SKT홀딩스 지분을 각각 26.8%씩 갖는다. 향후 SK와 SKT홀딩스가 합병한다면 기존 SKT홀딩스 주주들(최태원, SKT MNO 등)이 합병하 SK 신주를 받게 되면서 상호출자 고리가 만들어진다.
SK는 존속법인인 SKT의 주가를 부양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분할 후 SKT는 변경 상장, SKT홀딩스는 신규 상장한다. 증권업계에서는 규제산업인 통신업의 한계 등으로 SKT홀딩스의 주가가 SKT를 치고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K텔레콤의 기존 배당 여력을 감안한다면 SK로써는 SKT 주가를 방치할 수 없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의 MNO 사업부는 그간 안정적인 현금창출을 하는 '곳간' 역할을 해왔다"며 "SK텔레콤은 자사주인 SKT홀딩스의 지분 가치를 극대화한 뒤 매각 절차를 밟아 신사업 재원 등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편 지주사의 경우 공정거래법에 따라 상장 자회사의 지분 20%, 비상장 자회사의 지분 40%를 보유해야 한다. SKT홀딩스는 비상장 자회사인 웨이브의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어 이 기준에 따르면 10%포인트가 모자란다.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SK텔레콤이 웨이브에 대한 1000억원의 추가 출자를 결의함에 따라 이 부분이 해소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