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기업을 대표하는 유한양행이 본격적으로 바이오 분야에 뛰어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유한양행은 최근 경기도 군포시에 바이오연구소 및 의약품품질관리(Chemical Manufacturing & Control, CMC)센터 건립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그간 다수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인천 송도에 몰린 것과 다른 행보입니다. 유한양행은 왜 나홀로 경기도 군포시에 터전을 마련하고 있는 걸까요?
합성의약품 중심에서 벗어나 바이오의약품 '도전'
유한양행은 그동안 합성의약품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전통 제약기업입니다. 전통 제약기업 중에는 매출 1위를 수년간 이어오고 있는데요. 의약품 산업 전반에서 후발주자였던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바이오기업들이 급성장하면서 연매출도 전통 제약사들을 앞지르고 있습니다. 바이오의약품은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빠르게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데요.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의약품 시장에서 지난 2020년 바이오의약품 비중이 30% 수준에서 오는 2026년에는 37%에 달할 전망입니다. 특히 매출 상위 100대 제품의 57%가 바이오의약품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죠.
바이오의약품 시대가 열리면서 한미약품, GC녹십자, 동아에스티, 종근당 등 상위 전통 제약기업들도 속속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공시자료에 공개된 전통 제약기업들의 연구개발 파이프라인을 살펴보면 지난해 2분기 기준으로 한미약품의 경우 바이오의약품이 15개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HK이노엔(구 씨제이헬스케어) 11개, 녹십자 7개, 동아에스티 5개, 유한양행과 종근당이 각각 3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시자료 보다 더 많은 바이오의약품을 연구개발 중입니다. 유한양행에 따르면 지난해 연구개발 중인 바이오신약 파이프라인은 총 16개에 달합니다. 여기에 올해 추가로 1개 품목을 추가하면서 총 30개 신약 파이프라인 중 바이오신약이 약 5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공시자료와 실제 R&D 파이프라인이 다른 이유는 유한양행의 경우 변동이 큰 전임상은 공시자료에 공개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이오벤처서 3개 바이오신약 후보물질 도입
유한양행이 연구개발 중인 바이오의약품은 대부분 다른 바이오벤처로부터 도입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이오벤처의 유망 후보물질을 도입해 개발을 진행하는 것이 시간 단축과 비용절감 등 더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첫걸음을 시작한 전통제약기업으로서는 성공확률이 낮고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초기 후보물질 발굴보다는 이미 발굴된 후보물질을 도중에 기술도입해 개발하면서 경험을 쌓기 위한 전략적인 측면도 있었을 겁니다.
대표적인 게 공시에 공개된 3개 품목인데요. 가장 처음으로 도입한 바이오신약 물질은 지난 2009년 바이오벤처 엔솔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도입한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 'YH14618'입니다. 국내에서 임상 1‧2a상에서 안전성과 효능을 확인했지만 임상 2b상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하며 도중에 개발이 중단됐고, 한동안 유한양행의 바이오 사업은 잠잠한 듯 했습니다.
사실 내부적으로는 계속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혁신)에 도전하고 있었죠. 그 결과 무려 9년 만인 2018년 스파인바이오파마에 국내를 제외한 전 세계 판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YH14618'을 기술수출하는 성과를 거둡니다. 전체 기술수출 규모만 2억1815만 달러(한화 약 2600억원)에 달하고 지난해 3분기까지 65만 달러(약 8억원)를 수취했으며, 현재 미국에서 임상시험계획(IND)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국내 바이오벤처기업 제넥신으로부터 2015년에 비알콜성지방간염(NASH) 치료제 'YH25724'를 도입, 지난 2019년 7월 베링거인겔하임에 8억7000만 달러(약 1조370억원)에 기술수출했고 지난해 3분기까지 수취한 금액은 4000만 달러(약 477억원)에 달합니다. 만성자발성두드러기 치료제 'YH35324'는 지난 2020년 지아이이노베이션으로부터 도입했습니다. 'YH25724'는 유럽에서 임상1상, 'YH35324'는 국내에서 임상1상을 진행 중입니다. 이밖에도 아임뉴런, 에이프릴바이오 등 총 10개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신약 공동개발 등을 위해 협력하고 있습니다.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 한계…연구시설 설립해 사업 본격화
유한양행이 바이오신약에 첫발을 내딛은 지 올해로 13년을 맞았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바이오의약품 전문 연구시설이 없어 연구개발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죠. 결국 이번 유한양행의 바이오연구소 신규 설립은 본격적으로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셈입니다.
유한양행의 본사는 서울 동작구, 중앙연구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생산공장은 충북 청주시 오창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설립하는 경기도 군포부지는 오래전부터 유한양행이 보유하고 있던 땅으로, 유한양행의 100% 자회사인 유한메디카가 위치한 곳입니다.
특히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유한양행의 부지를 포함한 군포지역 일대를 '노후공업지역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하면서 군포시에서 바이오, IT(정보통신) 등 첨단융복합단지로 개발할 계획인데요. 앞서 군포시는 지난2010년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해 첨단산업이 중심이 되는 지식산업센터 건립을 추진했지만 10년이 넘도록 지지부진했습니다. 여기에 유한양행이 첫 깃발을 꽂으면서 기대감이 높습니다.
유한양행은 이번 바이오연구소 설립에 800억원을 투자, 바이오신약 연구개발 전주기적 역량을 더욱 공고히 하고 향후 유한 바이오 R&D 허브(Hub)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인데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부지였던 만큼 유한양행은 건설 투자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입주하는 바이오벤처들과 오픈이노베이션 등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유한양행의 바이오연구소 설립이 시발점이 돼 군포가 인천 송도와 충북 오송, 대구 등에 이은 차기 바이오클러스터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