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이 현역에서 물러난 지 2년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서 회장은 향후 2년 동안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미국 진출과 신약 개발 등 사업 전반을 진두지취할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서 회장 복귀를 반기는 분위기다.
CMO→바이오시밀러 성공 신화
서 회장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역사를 새로 쓴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1983년 삼성전기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한국생산성본부에서 대우자동차를 컨설팅하다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눈에 들어 대우자동차 기획재무 고문을 맡았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직장을 나온 서 회장은 2000년 대우자동차 기획실 동료 10여 명과 벤처기업 넥솔을 창업했다. 이때 생명공학 분야가 국가의 미래먹거리가 될 것이라 판단, 셀트리온 설립에 돌입했다.
그는 셀트리온을 설립 10여 년 만에 코스닥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키웠다. 창업 초기 미국 벡스젠과 협력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백신 연구에 주력했지만, 2004년 AIDS 백신 임상3상 실패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2005년 3월 인천 송도에 5만리터 규모의 생산 공장을 완공하고 위탁생산(CMO)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CMO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자 서 회장은 '남의 것을 만드는 대신 내 것을 만들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2009년 CMO 사업을 중단하고 항체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나섰다. 셀트리온이 개발한 자가면역질환 치료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성분명 인플릭시맙)는 2012년 7월 세계 최초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획득했고 이듬해 유럽의약품청(EMA), 201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까지 받았다.
이어 셀트리온은 유방암·위암 치료제 바이오시밀러 '허쥬마'(성분명 트라스투주맙), 혈액암 치료제 바이오시밀러 '트룩시마'(성분명 리툭시맙) 등을 시장에 선보이며 항체 바이오시밀러 분야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다. 그는 코로나19가 창궐한 2021년 2월 국산 치료제 개발에 성공하며 기업 가치를 다시 한번 크게 끌어올렸다. 이후 같은 해 3월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회장직을 내려놨다.
돌아온 서정진, 어떻게 바뀔까
서 회장은 지난달 셀트리온그룹 상장 3사(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셀트리온제약)와 지주사 셀트리온홀딩스의 사내이사 겸 공동의장으로 선임됐다. 그는 2021년 3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그룹을 둘러싼 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면 현직에 복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서 회장은 셀트리온을 다국적 제약사(빅파마)와 어깨를 겨루는 혁신 신약 개발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구체적으로 바이오시밀러 60%, 신약 40% 수준으로 매출 구조를 바꿔나갈 예정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와 의약외품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이밖에 대규모 M&A, 셀트리온그룹 3사 합병 등에 대한 계획도 제시했다.
시장에서는 그의 복귀를 반기는 분위기다. 지난 1년간 하락세를 보였던 셀트리온 주가는 서 회장 복귀 소식이 알려지자 반등했다. 특유의 리더십으로 글로벌 시장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지난달 초 14만원대를 유지해 오던 셀트리온 주가는 서 회장 복귀 이후 이달 13일 종가 기준 17만9800원까지 올랐다.
실제 그는 이번 정기 주주총회에서 "다시 돌아온 이상 웬만한 파도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 배를 만들어 놓고 떠나겠다"면서 "세계 각국의 재정 적자가 심해지면서 약가 인하에 대한 압박이 매우 심한 상황이지만 내가 직접 나서서 고위 결정자를 만나면 약가 인하 요구에 휘둘리지 않고 협상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한 달의 3분의 2는 해외 영업 현장을 뛰고 나머지 3분의 1은 제품 연구개발 관리에 매달릴 것"이라며 경영 전반을 전두지휘하겠다는 강한 의지도 드러냈다.
셀트리온그룹 역시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셀트리온 측은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서 오너의 신속한 의사 결정이 위기 돌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서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에 동행해 미국 내 네트워크 구축과 사업 확대 등의 현안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