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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취임 2년]①믿었던 반도체마저…초격차는 '부재중'

  • 2024.10.29(화) 06:50

DS부문 3Q 영업익 4조~5조 전망, SK하이닉스에 못 미쳐
HBM에 파운드리까지 첩첩산중…위기에도 '침묵' 지켜

/그래픽=비즈워치

지난 27일 취임 2년을 맞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앞길이 깜깜하다.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는 초격차 기술력 확보에 실패하며 위기론에 휩싸였고, 미래를 이끌 신성장동력도 눈에 띄지 않는 상태다. 관료화된 조직문화는 경쟁력을 잃었고, 9년째 이어진 사법리스크도 이 회장의 발목을 잡는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든 것을 바꾸라" 했던 혁신을 넘어설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능가함)' 전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취임 3년차가 된 이 회장의 앞에 놓인 과제를 되짚어본다.[편집자주]

한순간 결정이 불러온 후폭풍

지난 8일 삼성전자가 3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하자 시장은 충격에 휩싸였다. 낮아진 시장 기대치에도 미치지 못한 성적표여서다. 삼성전자가 공개한 3분기 연결 기준 잠정 매출은 79조원, 영업이익은 9조1000억원이었다. 전 분기와 비교했을 때 매출은 6.6% 증가한 최대 매출이었지만, 영업이익은 12.8% 줄어든 '어닝 쇼크'였다. 풍문으로 돌던 '위기설'이 실체화되는 순간이었다.

/그래픽=비즈워치

삼성전자는 잠정 실적 발표 시 사업부문별 세부 실적을 공개하지 않는다. 오는 31일 확정 실적 발표에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있겠지만, 증권가에서는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 솔루션)부문의 실적이 4조~5조원 수준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메모리 사업만을 영위하는 SK하이닉스보다 낮은 수준이다. SK하이닉스는 올 3분기 7조3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슈퍼 호황기였던 2018년의 기록도 뛰어넘었다.

삼성전자는 연간 성적표로도 SK하이닉스에 뒤질 가능성이 큰 상태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DS부문의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는 평균 18조원대다. 이에 비해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는 23조원대에 달한다.

명실상부 메모리 업계 1위였던 삼성전자가 홀로 암흑기를 맞은 건 AI(인공지능) 반도체의 대표격인 HBM(고대역폭메모리)에 대응이 늦은 탓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당시 HBM의 수익성이 높지 않고, 성장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관련 조직을 사실상 해체했다. 미래 가능성보다는 당장의 손익을 따진 결정이었지만, 이 결정이 불러온 여파는 너무나 컸다. 

HBM 시장 개화와 동시에 SK하이닉스가 시장을 선점하며 입지를 굳힐 동안, 후발주자로 시장에 뛰어든 삼성전자는 점차 주도권을 잃어갔다.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시장을 독식하는 엔비디아에 사실상 HBM을 독점 공급하는 데 비해, 삼성전자는 아직 엔비디아에 납품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1위 공언했는데…현실은 암흑 속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도 녹록지 않다. 삼성파운드리는 지난해 2조원이 넘는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 역시 수조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업계에서는 엔비디아, AMD, 퀄컴, 애플 등 '빅테크'들이 삼성파운드리에 주문을 한 건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파운드리의 수율(웨이퍼당 결함이 없는 합격품이 나오는 비율)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에 1위 기업인 대만 TSMC와의 격차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파운드리 매출 점유율은 TSMC가 59%, 삼성전자는 10%에 불과했다. 나아가 올해는 TSMC의 점유율이 더욱 높아져 격차가 더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파운드리 사업을 둘러싼 대외적 불확실성도 확산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반도체 지원법을 폐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어서다.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를 통해 반도체 지원법에 대해 "정말 나쁜 거래"라며 정면 비판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행된 반도체법은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삼성전자는 64억 달러(약 9조원), SK하이닉스는 4억5000만 달러(약 6200억원)의 보조금과 각종 세제 혜택을 받기로 돼 있다.

하지만 내달 5일 열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반도체법이 폐기되거나 수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유세에서 바이든 정부의 핵심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줄곧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경계현 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테일러 팹 공사 현장./사진=경계현 전 사장 인스타그램 캡처

만약 반도체법에 변화가 생길 경우, 삼성전자의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가동 시점은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약 23조6000억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는데, 보조금 발표 이후 이를 450억 달러(약 62조2000억원) 규모로 확충한 바 있다.

특히 고객사 확보가 늦어지며 삼성전자는 테일러 공장의 완공 시점을 이미 한 차례 미룬 바 있다. 기존까지는 올해 말 가동 예정이었으나, 2026년에 생산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만약 비용 부담이 지금보다 더해진다면, 공장 완공 시점은 더 지연될 수 있다.

초격차 기술력은 어디로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의 위기는 그간 이재용 회장이 '기술 경영'을 지속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 아쉬운 지점이다. 그는 지난 2020년 6월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반도체 연구소 간담회에서 "미래 기술을 얼마나 빨리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에 생존이 달려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 2021년 1월 삼성리서치 사장단 회의에서는 "미래 기술 확보는 생존의 문제"라며 "변화를 읽어 미래를 선점하자"고 당부했다. 이어 2022년 유럽 출장 후 귀국한 자리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첫 번째는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 같다"며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픽=비즈워치

최근까지도 이러한 기조는 이어졌다. 올 1월 서울 R&D(연구개발) 캠퍼스를 찾은 이 회장은 "새로운 기술 확보에 우리의 생존과 미래가 달려있다"며 "더 과감하고 더 치열하게 도전하자"고 강조했다.

파운드리 사업에 대한 욕심도 있다. 이 회장은 2019년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선언하며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위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최근에는 로이터통신을 통해 "우리는 (파운드리) 사업의 성장을 갈망(Hungry)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재용 회장이 승격 2주년인 27일에 기념행사를 생략한 것도 삼성을 둘러싼 위기감이 전방위적으로 고조되는 최근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별다른 공개 메시지도 없었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를 둘러싼 위기론이 확산되는 만큼, 이 회장의 경영 메시지로 분위기를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침묵'에도 의미가 있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공개 메시지 대신 내실을 다지는 데 더 힘쓰고, 위기 극복 방안을 빠르게 모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특히 반도체 사업의 경우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이 잠정 실적 발표 당시 사과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전 부회장은 사과 성명을 통해 "삼성은 늘 위기를 기회로 만든 도전과 혁신, 그리고 극복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자신하며 "저희가 처한 엄중한 상황도 꼭 재도약의 계기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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