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도한 흔들림으로 논란이 됐던 'KTX-이음'이 새롭게 태어났다. KTX-이음은 현대로템이 개발한 국내 최초의 동력 분산식 고속철도 차량이다. 지난 2021년 1월 첫 선을 보인 이후 강릉선을 비롯해 중앙선, 중부내륙선 등에서 운영됐지만 소음과 함께 진동이 심하다는 민원이 이어졌다.
이에 현대로템은 진동과 소음, 승차감을 개선한 2세대 KTX-이음을 새롭게 선보였다. 빠르게 신규 열차를 도입해 고객 편의를 높이고자 본래 납기일보다 약 4개월 앞서 코레일(한국철도공사)에 조기 인도하는 성과도 냈다. 지난 24일 현대로템의 '2세대 KTX-이음 고속차량 시승회에 참석해 개선된 승차감을 직접 경험했다.

승차감·소음 대폭 개선
처음 마주한 2세대 KTX-이음은 이전 열차와 큰 차이점을 느끼기 어려웠다. 외관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내부에는 소소한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객실창이었다. 2개열이 하나의 창문을 공유해 가림막을 내릴 때 눈치를 봐야했던 이전 모델과 달리, KTX-청룡처럼 개인창을 도입했다. 또 도착역을 확인할 수 있는 객실 모니터 역시 기존 4개에서 6개로 늘어 고객 편의성이 높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2세대 KTX-이음만의 특징이 확연히 나타난 건 열차 출발 후였다. 2세대 KTX-이음의 가장 큰 특징은 노면으로부터 차체 충격을 경감시켜 승차감을 향상시켰다는 것이다. 차체의 주행과 제동 기능을 갖춘 대차 부문에 성능이 개선된 서스펜션(완충 장치)을 설치하고 차체 하부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보강재를 추가했다는 게 사측 설명이다.

이에 2세대 KTX-이음의 승차감은 기존 2.5에서 20% 개선된 2.0까지 낮아졌다. 국제철도협회(UIC)는 승차감 지수(국제기준)를 △1 미만(매우 안락함) △1~2(안락함) △2~4(보통) △4~5(안락하지 않음) △5 초과(매우 안락하지 않음)로 구분하고 있다.
객실 내 소음도 줄였다. 차량에 전기를 공급하는 팬토그래프(집전장치) 주변에 설치되는 스테인리스 강 소재 흡음재의 면적을 늘렸고, 천장에는 외부 소음을 막아주는 차음막을 추가했다. 차량의 천장 상부에 흡음 목적으로 들어가는 평챔버의 비율을 확대함과 동시에 배기되는 차음 기능이 강화된 고장음판을 추가로 깔거나 확장했다.
공명상 고속&SE실 상무는 "이전 모델의 경우 객실 중앙 승객 기준 소음이 70db(데시벨) 수준이었는데 바닥과 천정의 차음, 흡음 등을 많이 보강해 이제 68db 수준으로 기존 차량 대비 20% 이상 개선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날 오후 12시50분 서울역을 출발해 영등포, 천안아산역 등을 거쳐 3시7분 광주송정역까지 가는 구간을 탑승했는데, 중간중간 고속으로 달리는 구간에서도 흔들림이나 소음이 심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시속 255㎞로 달리는 순간에도 열차 흔들림으로 인한 불편함은 없었다.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에서 설명회를 했음에도 소음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다.

안전 장치 개선…국산화 확대
현대로템은 이번 2세대 모델에서 승객뿐 아니라 자사의 고객사인 코레일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안전 장치도 개선했다. 낙상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차량 지붕 전면에 미끄럼방지도막을 도포한 게 대표적이다.
또 센서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차량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최적의 정비 시기를 판단하는 상태기반유지보수(CBM) 장치를 2세대 KTX-이음에 최초로 도입했다. 자동차에서 타이어의 바람이 빠지면 공기압 경고등이 뜨는 것처럼, 열차에 이상이 생겼을 때 자동으로 알려주는 기능이다. 해당 기능은 향후 현대로템이 개발하는 차량에 기본적으로 탑재될 예정이다.
현대로템은 기존 KTX-이음에서 적용하지 않았던 SIL 인증도 추진했다. SIL(Safety Integrity Level) 인증은 철도, 원자력 발전, 의학용 기기 등 산업분야 장비의 안전성과 신뢰성 등급을 측정하는 것으로 4단계가 최고 수준이다.
공 상무는 "열차 신호 장치인 열차자동방호장치(ATP)를 비롯 제동 장치, 비상 방송 등 5개 장치에 대해 SIL 2단계 혹은 4단계를 적용함으로써 안전을 크게 강화시켰다"고 설명했다.
특히 2세대 KTX-이음에 적용된 ATP는 새롭게 적용된 '국산' 장치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ATP는 철도 차량의 위치를 실시간 파악해 차량 간 간격을 조정하는 열차제어시스템을 구성하는 핵심 장치 중 하나다. 속도가 빠른 차량일수록 ATP의 성능은 승객들의 안전과 수송력 증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앞서 현대로템은 국토교통부 주관 한국형 열차제어시스템(KTCS-2) 연구개발 국책 과제에 참여해 국산화에 성공한 바 있다. KTCS-2는 해외 기술에 의존했던 기존 철도신호시스템 체계에서 벗어난다는 데 의미가 크다.
또 세계 최초로 LTE-R(철도전용 4세대 무선통신망)을 적용해 더욱 빠른 속도로 차량과 관제실 간 데이터 전송이 가능하다. 1만년에서 10만년 사이 한 번 고장이 발생할 정도로 높은 안전 수준을 지닌다는 SIL 최고 등급(4레벨)을 획득하기도 했다. 다만 이날 시승은 시운전으로 평소보다 고속으로 운행돼 ATP 대신 ATC(열차자동제어장치)를 설치해 ATP의 성능 체험은 어려웠다.
하반기 서울~강릉 달린다
현재 현대로템은 코레일에 2세대 KTX-이음 초도 편성분을 본래 납기(10월31일)보다 130일 빠르게 납품 완료한 상태다. 납품에 속도를 낼 수 있던 건 수십 년간 쌓아온 고속차량 제작 실적과 생산 공정의 효율화 덕이다. 또 고속차량 특성상 기술적으로 복잡한 설계와 높은 안전 수준이 요구되지만 발주처와의 긴밀한 조율과 협업을 통해 빠른 성능 개선과 납품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었다는 게 사측 설명이다.
공 상무는 "300여개 부품업체와 공급망 관리, 프로젝트 매니징, 빠른 의사 결정, 긴밀한 소통으로 시험 검증에 시간을 많이 벌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현대로템은 이번 초도분을 시작으로 코레일에 납품하기로 한 14편성을 순차 납품 예정이다. KTX-이음은 하반기 강릉선을 시작으로 서해선, 동해선, 경강선(원주·판교) 등에서 운행될 전망이다.
한편, KTX-이음은 지난해 국산 고속차량의 첫 해외 수출에 성사된 우즈베키스탄 고속차량의 기반이 되는 모델이기도 하다. KTX-청룡(EMU-320)도 KTX-이음을 바탕으로 한 최신형 모델이다. 현대로템은 이번 2세대 KTX-이음 모델이 향후 해외 수출에 가장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정훈 현대로템 레일솔루션사업본부 전무는 "대한민국 철도 기술은 프랑스 알스톰 기술 장벽을 넘어 KTX-산천, KTX-이음, 그리고 KTX-이음 2세대까지 이어오며 K-철도의 자부심이 됐다"며 "현대로템은 국내 철도 기술의 자존심을 지키고 쾌적하고 안락한 고속철도를 납기 지연 없이 공급하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